- 리투아니아에 기갑여단 영구 주둔…2차 대전 이후 처음
- 군비 확장 본격화…징병제 부활 물론 '여성 징집'도 검토

독일과 러시아(舊 소련)는 역사적으로 동맹과 적대, 협력과 갈등을 반복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이 구소련을 침공해 동부전선에서 대규모 전투를 벌였으며, 전후에는 구소련이 독일 점령 지역을 직접 통치하며 동독을 설립하기도 했다.
구소련 붕괴 이후 독일은 러시아와 경제·에너지 협력을 강화하며 비교적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독일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와 금수 조치를 가하면서 양국 관계는 험악해졌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넘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에 대한 위협을 가시화하면서 독일은 러시아와의 준전시 상태에 들어간 모양새다. 실제 독일은 최근 '국방력 강화'를 위한 가속 페달을 밟고,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장거리 무기의 현지 공동생산을 검토할 만큼 대러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지난달 29일 일간 라이니셰포스트 주최로 열린 토론 행사에서 "조금 충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한 문장으로 말하겠다. 우리는 전쟁 중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평화 상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메르츠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조만간 끝날 것 같지 않다며 거듭 비관론을 폈다. 그는 역사에서 보듯 전쟁은 군사적 패배 또는 경제적 고갈로 끝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재 두 가지 모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자국 예산을 끊으면서 지금은 독일이 세계 최대의 우크라이나 지원국이 됐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과 구소련의 전쟁사를 수시로 언급하며 독일을 사실상 적국으로 간주하고 있다. 독일과 러시아 간 직접 충돌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이다.
특히 독일은 러시아산 가스 송유관인 노드스트림(1·2) 복구·재가동 반대 기조를 유럽 차원에서 공유하고, 제도적 봉인 논의도 병행하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지난 9월 25일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에서 유럽연합(EU)이 동결한 러시아 자산 1940억 유로를 활용해 우크라이나에 무이자 대출을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EU 내 만장일치가 어렵다면 다수결로 추진하자는 입장도 밝혔다. 러시아를 재정적 측면에서도 강력히 압박하자는 것이다.

특히 독일은 군비 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올해 독일 의회는 2025년 예산안을 통과시켜 지난해 520억 유로(82조원)였던 국방비를 올해 624억 유로(98조4000억원)로 늘렸다.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2.4%로 상향한 것으로 2029년에는 GDP 대비 3.5%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아울러 인프라 기금과 1000억 유로 규모의 국방특별기금을 활용해 국방 관련 총지출과 차입을 확대하기로 했다. 이 같은 조치로 인해 독일은 통일 이후 처음으로 유럽 내 국방비 지출 1위를 기록했다. 특히 독일은 기본법(헌법) 개정을 통해 국방비에 부채 한도의 예외를 적용해 중장기 증액 여지를 확보했다. 사실상 국방비를 무제한으로 풀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독일의 움직임은 ‘러시아의 전진 억지와 독일 본토 방호’ 의 병렬적 구축이 핵심이다. 실제 독일은 올해 5월 나토 동부전선에 해당하는 리투아니아에 제45기갑여단을 상시 주둔시켰다. 이 여단은 2027년 약 5000명 규모의 완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주둔지는 러시아 맹방인 벨라루스 국경에서 불과 20㎞ 떨어진 사실상의 접경지다.
제45기갑여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의 첫 해외 영구 주둔 부대로 러시아에 대한 억지 메시지를 보여준다. 본토에는 올해 4월 1일부로 영토 방어 전담 사단을 신설했다. 또한 예비 전력과 기반시설 방호를 일원화하고, 철도·항만 등 나토 증원군 수용 허브 기능을 체계화했다.
독일 내 병력은 2035년까지 18만2000명에서 26만명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고, 예비군은 2029년까지 4만9000명에서 20만명으로 늘리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유사시 징병제 부활을 주요 골자로 한 병역법 개정안을 의결했으며, 특히 메르츠 총리는 여성 징집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군비 확충도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독일은 지난 2022년 약 100억 유로 규모의 F-35A 35대 도입을 확정해 핵공유 임무의 차세대 플랫폼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노후 CH-53을 대체할 중수송헬기(CH-47F)도 약 85억 달러 규모로 60대 도입한다. 약 40억 유로를 들여 애로우-3 상층요격체계 도입을 준비 중이며, 바이에른주에는 패트리엇 미사일 유럽 생산 거점을 구축한다.
러시아를 직접적으로 압박하는 우크라이나 지원은 장거리 무기 현지 공동생산으로 질적 전환을 꾀하고 있다. 독일과 우크라이나는 지난 5월 28일 베를린 정상회담에서 산업적 공동 생산에 합의했으며, 메르츠 총리는 이 합의에서 우크라이나에 제공되는 미사일에 '사거리 제한이 없음'을 강조했다.

또한 일회성 공여를 넘어 우크라이나 자체 생산 기반을 키워 러시아 후방 표적 억지 능력을 지속 가능하게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2026년 생산 개시를 목표로 부품·재정·인프라 지원도 병행된다.
이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에 대한 핵 억지를 위해 독일은 미국의 B61 전술핵(약 20기) 배치를 통해 핵공유 체제를 유지하면서 프랑스·영국와의 ‘핵 공유’ 논의도 확대하고 있다. 메르츠 총리는 이미 유럽의 자체 억지력 강화를 위해 미국 의존도를 단계적으로 낮춰야 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파이낸셜타임스도 올해 3월 독일 당국자들 사이에서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독자 핵무기 보유 검토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비공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전한바 있다.
한마디로 독일의 대러시아 전략은 경제·금융 제재 , 군비 강화, 핵 공조 확대를 축으로 한 3각 구조를 형성하는 것으로 요약된다. 커지는 러시아의 위협에 대응해 ‘형식적 평화’에서 ‘실질적 대비’로 신속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메르츠 총리는 유럽에 묶인 러시아 자산을 활용하면 우크라이나를 3∼5년 간 군사적으로 지원할 수 있다며 "그러면 러시아도 언젠가 이 전쟁을 계속하는 게 무의미함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완곡한 화법이지만 독일과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다시 충돌하는 상황도 완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연태웅 기자 abraham.yeon@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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