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원 효율 증진 및 美 안보 부담 감소가 장점
- 이질성 높은 동아시아…과연 단결 가능할까

미국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에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집단 방위'를 이례적으로 언급해 해당 발언의 의미와 무게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차관은 지난 21일 사회관계망서비스 엑스(X·옛 트위터)에 ‘한국이 방어 역량을 최고로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미뇬 휴스턴 국무부 부대변인의 발언을 거론하며 “이는 한국과 같은 아시아 동맹국의 국방비 지출과 집단 방위 노력 강화의 중요함을 밝힌 중대한 발언”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그동안 나토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집단 방위’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으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지역 동맹국에 대해서는 ‘상호 방위’라는 표현을 사용해 왔다. 집단 방위는 여러 국가가 연합해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한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전체 동맹이 공동 대응하는 구조다.
콜비 차관은 이어 “미국 국방부의 누구도 동맹국에 백지 수표를 요구하지 않는다”며 “미국과 동맹국 모두가 서로에게 기여 수준의 기대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는 우리가 나토나 한국에 대해 갖고 있는 것과 유사한 접근 방식”이라고도 했다.
이 같은 발언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추진하는 새로운 대중(對中) 안보 전략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치 나토의 유사시 계획처럼 중국의 대만 침공 등 인도태평양 지역 분쟁 시에도 한국, 일본 등의 동맹국들이 미국을 따라 군사적 대응에 나서 달라는 것이다.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될 미국의 새 국방전략(NDS)에도 이 같은 방향이 구체화될 수 있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갑자기 집단 방위를 언급한 것은 집단 방위체제가 주는 실익 때문이다. 우선 자원 효율성 증진 및 미국의 안보 부담 감소가 있다. 집단 방위체제를 구성하면 한 국가가 부담하기에는 너무 비싼 장비 도입이나 훈련 등도 여러 나라가 비용을 공동 부담해 진행할 수 있다. 또 회원국간 정보 공유, 상호 운용성 강화 등을 통해 군사력을 더욱 효과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특히 지난 세기 명실공히 범접할 수 없는 초강대국이었던 미국의 위상이 경쟁 국가들의 급성장 등으로 예전같지 않게 되면서 미국은 동아시아 안보 태세를 동맹국들에게 더 크게 의존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달 나토 정상회의에서 나토 회원국 국내총생산(GDP)의 5%를 국방비에 사용하도록 합의한 것도 그런 행보의 일환이다.
현재 한국의 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2.3%선이다. 미국은 한국 등 아시아 지역 동맹국들에게도 이를 5%로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만약 한국이 동아시아 집단 방위체제에 가입한다면 이러한 미국의 요구를 관철하기도 쉬워진다. 이는 가급적 국방비에 돈을 덜 쓰려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 추세와도 궤를 같이 한다.
또한 집단 방위체제는 한반도와 동중국해, 남중국해를 하나의 전장으로 묶어 다루려는 미국의 이른바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도 더욱 쉽게 실현할 수 있다. 여러 나라가 힘을 모음으로서 생기는 전쟁 억제력 강화, 안정성 증진, 외교적 영향력 확대 등도 집단 방위체제의 장점으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동아시아판 나토’ 체제에는 단점도 상당히 많다. 가장 먼저 들 수 있는 것은 신냉전의 심화다. 앞서도 말했듯이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집단 방위체제의 궁극적 목적은 중국과 북한 견제임이 명약관화하다. 중국과 북한, 더 나아가 러시아까지도 이에 반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자칫 양 진영간 군비 경쟁을 가속할 수도 있다.
둘째로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엄청난 이질성이다. 이는 오랜 기간 나토 체제가 작동해 왔던 서유럽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서유럽 국가들의 경우 인종과 민족은 다르지만 모두 기독교를 믿고, 라틴 알파벳을 문자로 사용하며, 고도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꽃피운 데서 오는 문화적 동질감이 있다. 또한 옛 소련을 위시한 동유럽 공산국가들에 대한 무역 의존도는 매우 낮았다. 이 때문에 공산권에 대해 단결해서 각을 세우기가 비교적 쉬웠다.
그러나 동아시아는 나라마다 주류 종교와 문자가 달라 문화적 동질감이 희박하다. 서유럽에 비해 과거사 문제와 국경 분쟁도 심한 편이다. 정치경제적 이질성도 심하다.
그리고 무역을 중국에 크게 의존하는 나라도 있다. 이 때문에 중국과 대립하는 집단 방위체제에 선뜻 가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동아시아 국가들이 미국과 맺은 기존 양자 동맹체제(한미, 미일 등) 처리 문제도 있다. 집단 방위체제가 기존 체제를 대체할지, 보완할지를 정해야 한다. 군비 부담이나 작전계획 등 주요 사안에 대한 회원국 간 불화 및 회원국 주권 침해 등 집단 방위체제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 한계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나토의 경우에도 최전방이던 서독 영토에서의 전시 작전계획을 놓고 서독과 다른 나라들 간에 의견 불일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서유럽에 나토가 생긴 지 80년이 다 된 현재까지도 동아시아판 나토는 없었던 것이다./이동훈 기자 ldh@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