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촬영서 밀린 노동자들 난동... 강경진압에 무단결근 응수
김정은 "규율없고 무질서" 호통... 1호 사진 사상 최악의 사고

북한의 지방 1급 기업소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기념촬영 당시 폭력·난투 사태가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당 간부들의 비리와 특혜로 촉발된 이 사건은 이후 노동자들의 집단생산 거부로 이어져 “1호사진(최고지도자와의 기념사진) 역사상 최악의 사고”라는 말까지 나왔다.
15일 평양시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김정은의 현지지도를 앞두고 해당 기업소는 노력혁신자·공로자·직장장·작업반장·기술자·기능공 등으로 기념사진 대상자를 미리 선발하고 이에 맞춰 '표딱지'(기념사진 출입증)를 나누어줬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일어났다. 당위원회 간부들과 자녀들, 친인척들, 후방과(기업소의 지원부서) 간부뿐 아니라 직장에 돈을 바치고 몰래 장사하는 '8·3노동자'처럼 1호 사진 촬영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대거 표딱지를 받았다. 성실하게 근무해 온 혁신자, 기술자, 노동자 상당수는 1호 사진 촬영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노동자들이 표딱지 명단에서 빠진 이유를 묻자 관리부서가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라고 얼버무렸다”며 “그날 밤부터 공장 분위기가 험악해졌다”고 전했다. 김정은의 현지지도 전날 밤에는 호위사령부 군인들이 공장 반경 1㎞ 안에 있는 모든 아파트의 옥상에 올라가 경계근무를 섰다. 전원이 자동보총(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권총까지 찬 채 삼엄한 경계를 폈다고 한다. 소식통은 “사실상 준계엄령 수준이었다”고 했다.
행사 당일 김정은의 1호차가 도착하고 공장을 둘러보며 설명을 듣는 동안 촬영대에서는 표를 가진 사람들을 세우며 최종 점검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비자격자들이 표딱지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공장과 마을 전체로 퍼지며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정문 앞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리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고 소리치거나 표딱지를 머리 위로 흔들며 달려들었다. 뒤에서 표를 낚아채는 사람들까지 나오며 현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여성들의 비명이 난무하는 가운데 앞뒤로 밀려 넘어지는 사람들이 뒤엉키며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혼란이 극심해지자 중무장한 호위사령부 군인들이 강제 진압에 나섰다. 현장에 있던 관계자는 “총탁(개머리판)으로 머리를 후려치고, 군홧발로 얼굴을 차는 등 폭력적인 진압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총탁에 맞아 머리가 터지고 군화에 차여 코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사람들, 군인들이 패대기쳐 바닥에 널부러진 사람들이 속출했다.
공장 당위원회 간부도 지인을 촬영대 앞으로 데려오려다 호위성원에게 맞아 코뼈와 눈 아래가 멍이 드는 봉변을 당했다. 소식통은 “당 위원회 간부가 구타를 당하는데 당 간부들이 이를 목격하고도 말 한마디 못 하고 서 있었다”며 “1호 행사 앞에서는 당 간부조차 인민과 다를 게 없었다”고 말했다.
사진 촬영이 끝난 뒤에는 더 큰 문제가 생겼다. 표딱지를 받지 못했거나, 현장에서 제압당해 사진을 못 찍은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출근을 거부하고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한 직장(공장을 구성하는 주요 부서)에서는 200명 중 120명 정도가 무단 결근했다. 직장장과 작업반장들이 집집마다 찾아가 출근을 독려했지만 일부 노동자들은 "너희들끼리 다 해먹으라. 우리는 안 간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공장 간부들은 "며칠만 쉬고 제발 공장에 나오라"며 출근을 애원하다시피했다.
이 사건으로 해당 기업소는 김정은으로부터 “규률이 없고 무질서하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소식통은 "이 사태의 책임을 져야 할 당책임비서는 빽(연줄)이 좋다는 이유로 살아남았고, 대신 조직비서가 해임돼 지도원으로 강등되는 선에서 수습됐다"며 "힘 없는 쪽만 잘렸다. 완전히 새우 잡듯 밀린 셈"이라고 했다.
문제의 기념사진은 관영 매체들의 보도에도 등장하지 않았다. 김정은과 찍은 1호 사진은 통상 6개월 내 전달되는 게 관례지만 문제의 사진은 촬영된 지 3년이 지난 뒤에야 당사자들에게 배포됐다고 한다. 액자와 유리 구입도 각자 부담이었다.
1호 사진은 최고지도자(김일성·김정일·김정은)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뜻한다. 북한에선 단순한 사진을 넘어 출세와 신분 상승을 보장하는 강력한 자산으로 기능한다. 일반 주민이 수령과 함께 사진에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진학과 승진, 경제적 혜택 등 각종 혜택이 뒤따른다. 실제로 간부 임용, 도·시급 직책 배정에서 1호 사진 보유 여부가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주민들이 1호 사진을 “인생역전의 티켓”, “출세의 보증수표”로 부르는 이유다.
북한 주민의 집에 들어서면 벽면을 장식한 초상화와 사진부터 눈에 들어온다. 김일성·김정일 초상화 옆에 1호 사진이 걸려 있다면, 그 집안의 사회적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결혼 중매 과정에서도 1호 사진 보유 여부가 고려된다는 말까지 나온다.
하지만 최근 1호 사진의 위상은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한다. 소식통은 “사람이 너무 많아 얼굴도 보이지 않고 사실상 ‘바라사진'(그냥 바라만 보는 사진)으로 부른다”며 "그래도 북한 주민들이 1호 사진에 매달리는 이유는 최고 지도자를 가까이서 뵙는다는 감격과 기분 때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