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초와 수산물로 시작…이젠 광물·트럭·중장비까지 넘나들어”
- 中, 김정은 방중 이후 사실상 제재 회피 묵인하고 있다는 분석

최근 양강도 혜산에서 BYD 전기차·트랙터 등 중국산 차량 수백 대가 무면허·무번호 상태로 대거 밀반입된 정황이 파악됐다./이미지=GPT4o
최근 양강도 혜산에서 BYD 전기차·트랙터 등 중국산 차량 수백 대가 무면허·무번호 상태로 대거 밀반입된 정황이 파악됐다./이미지=GPT4o

북중 국경에서 밀무역이 지난해 4월부터 본격적으로 살아나며 그 규모와 품목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초창기에는 약초·수산물 등 비교적 가벼운 품목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광물·차량·중장비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대상 품목까지 광범위하게 오가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중 관계 복원 이후 중국이 사실상 제재 회피를 묵인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제기된다.

대북 소식통들에 따르면 북중 국경 밀수는 지난해 4월 북한이 코로나19 사태로 닫았던 국경을 부분적으로 풀면서 4년 만에 재개됐다. 초기에는 약초·수산물 등 민간 상인들의 소규모 거래가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북한산 광물, 희유금속, 심지어 대형 트럭과 중장비까지 오가며 밀수 규모가 커지고 있다.

양강도 혜산과 함경북도 무산·회령 등 접경지에서는 매일 밤 수십 톤의 수산물·약초가 중국으로 넘어가고, 일부 물품에는 마약까지 숨겨 거래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보위성·39호실 산하 외화벌이 무역회사들도 ‘국가 밀수’ 형식으로 본격 가담하면서 물량은 더 커졌다.

한 조선족 무역상은 “지난해 3월 말부터 국가보위성과 39호실 무역회사들이 무역 허가권 없이 밀무역에 들어갔다”며 “광물·도자기·그림 등을 중국에 넘기고 사치품을 들여갔다”고 말했다.

일본의 아시아프레스가 지난 13~14일 북중 접경지역을 촬영해 보도한 내용은 이런 흐름을 뒷받침한다.

혜산과 김정숙군 일대에서는 압록강의 얕은 여울목을 트레일러로 그대로 건너거나, 임시 교량까지 설치해 차량·중장비를 북한으로 반입하는 정황이 포착됐다. 안보리 제재는 ‘모든 운송 수단·산업용 기계’를 대북 수출 금지 품목으로 규정하지만, 중국산 굴착기·불도저·트랙터 등이 대량으로 북한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프레스가 9월에 촬영한 사진엔 중국 건설장비 업체 ‘로볼(LOVOL)’ 마크가 선명한 굴착기 여러 대가 화물열차에 실린 모습도 확인됐다. 지난 8월에는 BYD 중고 전기차, 각종 트럭, 트랙터 수십 대가 북한으로 넘어갔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 때문에 혜산 시내에서는 보기 드문 ‘주차난’까지 벌어지는 상황이다. 시내 운동장과 공터 7곳이 사실상 밀수 차량 집결지로 활용되며 대형 컨테이너 차량까지 빼곡히 들어차 있는 모습도 포착됐다.

밀수는 북한으로의 반입만이 아니다. 북한산 광물·희유금속·잣 등 ‘외화벌이 물자’가 중국으로 대량 넘어가는 흐름도 감지된다. 혜산 소식통은 “희유금속, 광석을 트럭으로 싣고 중국 측으로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접경 지역인 자강도 만포에서는 만포제련소에서 생산된 아연괴·동괴를 실은 쪽배 20여 척이 매일 밤 중국 림강현 당석촌 방향으로 이동한다는 증언도 나왔다. 배 한 척이 3톤 이상을 싣는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만 60톤 규모의 제재 금수품이 중국으로 유입되는 셈이다.

중국 현지 소식통들은 중국 국경수비대가 “순찰 시간을 미리 알려주고 있다”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밀수품에 중국이 필요한 품목이 많다 보니 당국이 사실상 눈감아 주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아시아프레스가 분석한 구글어스 위성사진(7월·9월 촬영)에서도 밀수 흔적은 선명하다. 혜산~김정숙군 약 80㎞ 구간에서 24곳의 밀무역 지점이 포착됐고, 이 중 최소 5곳에서 대형 차량이 오가는 대규모 밀수 정황이 확인됐다.

김정숙군 인근 압록강 하구의 하중도(河中島)는 ‘가장 과감한 밀수 거점’으로 꼽힌다. 섬과 북한 본토를 잇는 임시 교량이 설치됐고, 철책 바로 앞 농장 밭이 주차장으로 개조돼 차량 60여 대가 대기 중인 모습도 관측됐다.

밀수가 다시 활기를 띠는 배경에는 북중 관계 복원이 자리한다는 분석이 적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로 중단됐던 북중 인적 교류는 지난해 김성남 북한 노동당 국제부장의 방중, 자오러지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장의 방북으로 양국 고위급 교류의 물꼬를 텄다.

중국은 지난해 러시아와 가까워지는 북한을 견제하는 한편, 자국이 필요로 하는 동광산·아연괴 등 자원의 밀수에 대해서는 사실상 눈을 감아왔다.

북중 국경 소식통은 “북한 무역 일꾼들이 지난해 겨울부터 중국에서 중고 굴착기 등 중장비를 소형 배나 떼목에 실어 들여왔다”며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장비 밀수는 소규모에 그쳤다”고 전했다. 북한이 '지방발전 20×10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규모 건설장비가 요구됐지만, 중국의 견제와 자금난으로 밀수 물량을 크게 늘리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9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방중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소식통은 “김정은 방중을 계기로 중장비 밀수 규모가 눈에 띄게 커졌다”며 “임시 다리까지 가설해 중고 차량과 중장비를 중국에서 북한으로 들여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국의 9월 대북 수출액은 2억2810만 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30.7%, 전월 대비 54.5%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관계자는 “중국이 밀수만 묵인해도 안보리 제재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진다”며 “양국 관계가 냉각됐을 때는 단속이 강화됐지만, 최근 분위기 속에서 다시 밀수 통로가 열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북중 국경은 지금 공식 무역의 문이 열리기 전 ‘비공식 거래’가 먼저 급증하는 전형적 과도기 상황"이라며 "제재의 빈틈을 파고드는 양국의 조용한 합의, 그리고 지역 당국의 묵인이 맞물리며 밀수 규모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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