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세계 이산화탄소 3분의 1 가둬…지구 온난화 막아
- 폴란드와 핀란드서 논의 활발…현지 농민들은 반발

유럽 여러 나라가 늪지 복원을 통해 유사시 러시아의 침공을 막고, 지구 온난화도 막는 윈윈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러우전)을 통해 실효성이 입증됐다. 러우전 개전 초기인 2022년 2월, 우크라이나군은 수도 키이우 북동쪽 이르핀 강을 막고 있던 댐을 폭파해 저수지 물을 방류, 오랫동안 사라졌던 강 하류의 늪지를 복원했다. 이로써 러시아 전차들은 해당 늪지를 지나갈 수 없게 됐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댄 여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은 이 실전 사례에 주목했다. 유럽연합(EU) 국가들은 보유한 늪지의 절반을 말려 농지로 개간한 바 있다. 이 중 러시아 국경의 늪지를 복원하면 러시아군의 진격도 막을 수 있는데다,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데도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늪지에 빠진 동식물의 사체는 분해되면 이탄(泥炭)이라고 불리우는 탄소가 풍부한 흙으로 바뀐다. 이 때문에 늪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효과적인 이산화탄소 저장소다. 늪지는 지구 표면의 3%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이산화탄소의 3분의 1을 가두고 있다. 숲에 가둬진 양의 2배다. 하지만 개간을 위해 배수해 말린 늪지는 그동안 저장해 둔 이산화탄소를 방출, 지구 온난화를 부추긴다.
이에 현재 폴란드, 핀란드 등 유럽 여러 나라들은 늪지 복원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마침 유럽에서는 여러 늪지 복원 계획이 진행중이다. EU의 새로운 자연 복원법에 따라 회원국들은 2030년까지 훼손된 늪지의 30%를, 2050년까지는 50%를 복원해야 한다.
과학자들 역시 나토 동쪽의 늪지를 복원하면 EU의 자연보호 및 국방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비교적 저렴하고 간단한 조치라고 주장한다. 러우전 이전에도 늪지를 사용해 적의 진격을 막은 전투 사례는 많으며, 현지의 환경 운동가, 국방 전략가, 그리고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늪지 복원에 찬성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핀란드 여당 국민연합당의 국회의원 파울리 알토 세텔래는 지난해 국경을 보호하고 기후 변화에 맞서기 위해 늪지를 복원할 것을 촉구하는 의회 동의안을 제출했다. 핀란드 국방부와 환경부는 올 가을에 늪지 복원 시범사업 시작 여부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폴란드의 늪지 복원 논의는 핀란드보다 먼저 시작됐다. 폴란드 환경 운동가들과 과학자들은 이미 수년전부터 늪지 복원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 결과 폴란드 학계와 국방부, 환경부 사이에서 관련 논의가 현재 진행 중이다.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정부는 현재까지 이 건에 대해 큰 관심을 보이지 않지만, 이 세 나라도 국토 면적의 10%가 늪지였거나 현재 늪지인 이탄지다. 또한 러시아로부터 안보 위협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늪지 복원에 관심을 보일 여건은 충분하다.
다만 늪지 복원 사업에는 늪지를 개간해 농사를 짓고 있던 현지 농민들의 저항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따른다./이동훈 기자 ldh@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