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대우교수(한국핵안보전략포럼 편집기획부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방위비를 충분히 지불하지 않는 나토(NATO) 회원국이 러시아의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이 보호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러시아가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하겠다’ 고 언급했다.

이 발언은 나토의 집단방위 원칙인 제5조(‘회원국 중 하나가 공격을 받으면, 모든 회원국이 그것을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공동으로 대응한다’)를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되어, 미국과 유럽의 안보를 위협하고 미군과 유럽군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나토 사무총장 옌스 스톨텐베르그도 ‘동맹국들이 서로를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어떤 암시도 우리 모두의 안보를 약화시키며, 미국과 유럽의 군인들을 더 큰 위험에 빠뜨린다"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하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이 우리 편에 없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 이 위험한 세상에서 구경꾼으로 남는 것은 미친 짓”이라며 “차기 독일 총리의 역사적 요청에 부응해 우리의 핵 억제력을 통해 유럽 대륙의 동맹국들을 보호하는 전략적 논의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또 핵무기에 대한 사용 권한은 프랑스 대통령이 가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 유럽에서 프랑스의 핵우산, 과연 미국 없이도 유럽 방위가 충분할까?

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현재 상황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핵전력은 미국의 확장 핵억제력을 보완하지만, 미국 핵전력이 갑자기 철수할 경우 실행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프랑스와 영국은 미국이 나토에서 하는 방식으로 확장된 핵억제 보장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개인적인 견해로 현재는 러시아의 유럽에 대한 위협과 맞물려, 프랑스로서는 자국의 전략적 위상을 강화하고 유럽 내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인다.

이는 1960년대 드골 대통령이 꿈꿨던 바와도 일치한다. 드골은 1950년대 유럽통합 문제에 있어, EU식의 초국가적 통합보다는 각국의 주권과 정체성을 존중하는 제도적 협력을 주장했다. 그가 지향했던 ‘유럽에 의한 유럽’—즉, 대서양 중심이 아닌 유럽 주도에 의한 유럽 건설—의 중심국가는 바로 프랑스이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정치철학이었던 것이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이 이러한 역사적 과업을 실현할 수 있을지 시험대에 올랐다. 실제로 마크롱은 드골을 정치적 롤모델로 삼아왔다. 그는 2017년 취임 직후 드골의 생가인 콜롱베레되제클리즈를 방문했고, 엘리제궁 집무실에는 드골의 사진을 비치했으며, 2020년에는 드골이 2차 대전 당시 역습을 지휘한 몽코르네 전투 8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다.

아울러 드골 탄생 130주년과 사망 50주년을 기념해 드골의 초상과 로렌 십자가(반나치, 반비시, 프랑스 민족 저항의 상징)가 새겨진 기념주화를 발행하기도 했다. 이는 마크롱이 드골의 정치적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이며, 그의 국제정치적 리더십을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드골의 핵전략은 프랑스가 독자적인 핵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자국에 가하는 어떤 국가든 치명적인 보복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는 행동할 수 없도록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는 핵억제 이론에서 말하는 ‘제한억제(limited deterrence)’에 해당한다. 즉, 대규모 핵공격이 아닌 선택적·비례적 보복 능력을 통해 핵전력을 전략적 억제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주목할 점은, 드골은 이러한 독자 핵전력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나토의 통합 지휘체계에서 벗어났지만, 대서양 동맹(미국 중심의 안보 구조)과 완전히 단절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의 핵우산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일정 부분 그 구조 안에 머물러 프랑스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이중전략’을 구사했다. 이는 동맹 속의 자율성을 추구한 매우 전략적인 선택이었다.

또한 드골은 서독과의 화해를 통해 독일의 비핵화를 유도했고, 이를 통해 프랑스의 핵무장에 대한 유럽 내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독일을 핵 경쟁에서 배제시키는 동시에, 유럽의 대표적인 핵보유국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전략은 프랑스 중심의 ‘유럽의 유럽’ 구상, 즉 유럽의 안보를 유럽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구상과 맞닿아 있었다. 프랑스의 독자적 핵전력은 이 구상을 실현하는 데 핵심 지렛대로 작용했다.

더 나아가 드골은 단순히 핵무장과 대결 구도에 머물지 않고, 소련과의 관계를 데탕트(긴장완화)에서 앙탕트(실질 협력관계)로 발전시키려는 외교적 노력을 병행했다. 이러한 태도는 중국과의 외교에도 적용되어, 프랑스는 서방국가 중 최초로 중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게 되었다.

이처럼 드골의 핵전략은 단순한 군사력 강화가 아니라, 전략적 자율성 확보, 유럽 내 주도권 강화, 대외정책의 다변화라는 세 축이 어우러진 복합적 구상이었다.

드골의 핵전력을 활용한 자주외교는 오늘날 프랑스가 다시 벤치마킹할 수 있는 전략적 자산이다. 특히 영국, 독일, 프랑스가 중심이 되어 유럽 차원의 핵우산 전략을 구상하고, 서유럽 국가들의 재정적 기여를 기반으로 한 방위협력체계를 구축한다면, 미국의 안보 공약 이탈 가능성에 대비한 유럽 독자 방위체계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프랑스 핵전력이 ‘유럽의 유럽’이라는 비전 속에서 갖는 의미를 오늘날 안보 지형 속에 다시 되살리는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프랑스의 핵전략은 오늘날 북핵시대, 한국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첫째, 미국 국방부는 한국이 스스로 자국 방어를 책임지고, 주한미군은 중국 견제를 중심으로 임무를 전환해야 한다는 기조를 내세우고 있다. 물론 최근 미국 국무부는 ‘미국과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강력히 지지하며, 조약에 따른 의무를 준수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2.0 시대와 그 이후에도 미국의 확장 핵억제가 절대적인 보장이 아닌 ‘조건부’ 억제라는 정책 기조로 점차 변화해갈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프랑스의 사례는, 자체 핵전력이야말로 최후의 억제수단이자 자주안보의 핵심 기반임을 보여준다.

둘째, 프랑스는 핵무장을 하면서도 나토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자 전략과 집단안보 체제를 병행하는 ‘다층적 안보 전략’을 통해, 자율성과 연대의 균형을 도모했다. 이는 한국이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자체 억제력을 준비하는 병행 전략의 정당성을 시사한다. 동맹 내 자율성 확대(complementary autonomy)는 단절이 아닌 보완을 지향하는 접근으로, 안보 불확실성이 커지는 시대에 한국이 채택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다.

결국, 완전한 동맹 이탈이나 일방적 독주가 아닌, ‘주권적 억제력 확보’와 ‘동맹의 보완적 역할’을 병행하는 전략은 2025년 북핵시대,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안보 패러다임이 되어야 한다. 드골이 그랬던 것처럼, 위협에 대한 독립적 대응 능력을 확보하면서도 국제 연대를 유지하는 ‘전략적 자율성과 유연성’이 오늘날 한국 핵안보의 핵심 가치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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