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10] “통일은 역사적 당위…자존심 잃지 않는 한 반드시 온다”

    “한반도 통일은 가능하고, 반드시 이뤄질 수 밖에 없습니다.”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12일 광복80년 분단80년을 맞으며 본지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한반도 통일 전망을 묻는 질문에 단호하게 답했다. 조 대표는 통일을 ‘역사적 당위’로 규정하며, 남북 국력 격차와 국제 환경의 변화를 근거로 제시했다.그는 “남한은 지난 수십 년간 대통령 암살, 쿠데타, 군사 반란, 민중 봉기까지 겪으며 체제를 다졌다. 북한도 이런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며 “김일성 3대가 자연 수명만 다하며 체제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조 대표는 독일

    08-17 12:44
  •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9] 남북 언어도 '한국어'와 '조선어'로 분단…인위적 이질화 결과

    남북한은 같은 뿌리와 언어, 문화를 가진 한민족이다. 그러나 북한 언론의 보도자료나 북한 서적을 읽다 보면 이게 뭔가 싶은 말들이 한 둘이 아니다.몇 가지 예를 보면 이렇다. 영어 'tyre'의 경우 한국에서는 ‘타이어’, 북한에서는 ‘다이야’다. 낙지와 오징어는 남북한에서 서로 가리키는 해산물이 반대다. 한국의 ‘6.25 전쟁’은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이다. 한국의 ‘백혈구’는 북한에서는 ‘흰피알’이다.이는 남북한 언어 간의 이질화 증거다. 그리고 이런 이질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사실 한 언어가 인문지리적 여건으로 이질화

    08-15 12:25
  •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8] "지정학적 조건, 이념과 체제, 존엄이 南과 北의 운명 갈라"

    “북한은 내륙화, 한국은 해양화…80년 전 분단이 남북의 길을 갈라놨습니다.”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12일 광복과 분단 80년을 맞아 진행한 본지 인터뷰에서 “80년 간 분단 된 남북한의 차이를 만든 근본 원인은 지정학, 이념과 체제, 존엄”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체제 경쟁에서는 이미 우리가 이겼지만, 역사와 정통성 싸움에서 지면 그것이 진짜 패배”라고 경고했다.조갑제 대표는 먼저 ‘지정학적 조건’이 남북의 상반된 발전 경로를 결정했다고 분석했다. “분단 이후 북한은 바다로 나올 길이 막힌 내륙 국가로 남았고, 한국은 북

    08-14 11:35
  •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7] '혁명동지'가 하루아침에 ‘역적’으로…김일성의 끊임없는 정적 제거

    광복의 환희와 분단의 비극이 교차한 지 80년, 북한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 흐름을 짚어본다. 1953년 7월 27일 6.25 전쟁 정전협정 체결 후 당시 김일성이 휘두른 권력투쟁의 칼날은 동지들에게로 향했다. 북한 내부에서는 전쟁 책임을 둘러싼 격렬한 공방이 벌어졌는데, 김일성은 남침 실패의 원인을 남로당 탓으로 돌렸다. “남조선 인민 20만명이 궐기해 인민군을 맞이할 것이라는 말은 새빨간 거짓이었다.”김일성은 이렇게 박헌영 세력을 반당·간첩행위 집단으로 몰았다. 그 결과 1955년 12월, 박헌영·이강국·이승엽·임화 등 남로

    08-12 11:09
  •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6] 분단으로 인한 통합 실패로 경로 의존성 심화…통일이 ‘해법’

    광복과 분단 80주년을 맞는 오늘날까지 남북 분단에 따른 분단비용과 기회비용은 막대하다. 무엇보다 한국(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 및 저렴한 노동력이 결합하지 못함으로써 성장 잠재력이 크게 훼손됐다.국토 활용의 비효율성도 크다. 분단은 철도, 도로, 항만 등 한반도를 관통하는 교통망과 물류망의 구축을 가로막았다. 이는 유라시아 대륙으로의 육상 진출을 제약하는 결과도 낳았다.백두산, 금강산 등 북한지역의 우수한 자연 및 문화 관광자원을 개발하고 활용할 기회 역시 차단됐다. 분단으로 인한 남북의 통합 실패는 단순히

    08-11 11:08
  •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5] 8·15에 남북총선 제의하고… 불과 두 달 뒤 남침

    1950년 5월,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전선은 남북이 동시에 총선거를 치러 통일 입법기관을 세우자고 제의했다. 8·15 해방 5주년을 앞두고 ‘평화통일' 분위기를 조성한것이다. 그러나 불과 두 달 뒤인 6월 25일 새벽 북한군은 소련군 고문단이 작성한 작전계획에 따라 38선을 넘어 남침을 감행했다.사실 이 ‘평화 제의’는 이미 짜여진 전쟁 시나리오 속의 연막이었다. 1948년 2월 26일, 유엔은 한반도 분단 종식을 위한 총회를 열고 ‘한국임시위원단’을 파견, 가능한 지역에서 자유·민주 선거를 치러 통일정부를 세우기로 결의했다.그러나

    08-10 10:08
  •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4] 80년간의 군비경쟁…南北의 국력과 잠재력 갉아먹는 ‘족쇄’

    한국과 북한간 문제의 원인은 단순히 양국이 분단국가이기 때문은 아니다. 양국은 1953년 휴전체제 성립 이후 현재까지 다시 전쟁이 재개될 것을 전제로 군사적 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위한 군비경쟁은 발전을 원하는 양국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됐다.군대는 국가가 전쟁을 대비해 드는 보험이다. 즉, 군대를 유지하기 위한 돈인 국방비는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없이 버리는 돈이다. 이 때문에 군비경쟁에서 이기려면 상대 국가에 비해 더 큰 경제력을 지녀야 한다.이 같은 관점에서 봤을 때 북한은 1970년대를 기점으로 경제력으로나 국방비로나

    08-09 09:17
  •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3] 세습으론 해결할 수 없는 北의 경제 목표, '이밥에 고깃국'

    일제시대 한반도는 조선(朝鮮)으로 불리면서 남선(南鮮), 서선(西鮮), 북선(北鮮) 등으로 세분화된 지역 명칭도 갖고 있었다. 일제는 1931년 9월 만주와 중국을 침략한 이후 패망할 때까지 서선이라고 부른 평안남북도, 북선이라고 칭한 함경남북도를 병참기지로 만들기 위해 투자를 집중했다.특히 1936~1942년 7대 조선 총독을 지낸 미나미 지로(南次郞)는 "북선을 보지 않고 조선을 말하지 말라"고 할 만큼 북선 개발에 힘을 쏟았다. 북선의 시설 중 일부는 후발주자인 관계로 일본 본토의 시설보다 더 좋은 기능을 지닌 상태였다는 말도

    08-07 09:30
  •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2] "北, 욕하면서 南 배워…1960~70년대 박정희식 개발 모델 벤치마킹"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북한이 지금 경제 건설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최근 추진 중인 ‘지방공업 발전 20×10 정책’은 사실상 박정희 정부 시절 새마을공장 정책을 베낀 것”이라고 평가했다.정세현 전 장관은 최근 샌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은 매년 20개 시·군에 공장을 세워 10년 간 200개를 만들겠다는 계획인데, 이는 결국 열악한 물류 인프라를 지역 단위 자급체제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라며 “공장 몇 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체제 유지의 생존 전략”이라고 분석했다.그는 또 “북한 농촌의 주택 개량사업도 박정희 정부 시

    08-05 12:02
  • [광복과 분단 80주년 시리즈 1] 해방의 기쁨 속에 드리운 분단의 그림자

    오는 8월 15일,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된 지 80주년을 맞는다. 그러나 이 날은 광복의 기쁨과 함께 민족 분단의 비극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 남과 북은 이후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자유민주주의를 택한 남한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다. 반면 공산주의 체제를 채택한 북한은 3대 세습 독재체제를 유지하며 국제사회의 최빈국이자 인권탄압 국가로 전락했다. 광복 80주년, 분단 80주년을 맞아 한반도의 과거와 현재를 되짚어 본다.1945년 8월 14일, 일본은 연합국에 항복

    08-0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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