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괴뢰말' 쓰면 강력 처벌…키보드 배열도 한국과 달라
- 전문 용어는 소통 불가 수준…소통에 첨단기술 동원해야

남북한은 같은 뿌리와 언어, 문화를 가진 한민족이다. 그러나 북한 언론의 보도자료나 북한 서적을 읽다 보면 이게 뭔가 싶은 말들이 한 둘이 아니다.
몇 가지 예를 보면 이렇다. 영어 'tyre'의 경우 한국에서는 ‘타이어’, 북한에서는 ‘다이야’다. 낙지와 오징어는 남북한에서 서로 가리키는 해산물이 반대다. 한국의 ‘6.25 전쟁’은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이다. 한국의 ‘백혈구’는 북한에서는 ‘흰피알’이다.
이는 남북한 언어 간의 이질화 증거다. 그리고 이런 이질화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사실 한 언어가 인문지리적 여건으로 이질화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현재 세계의 언어 중 지리적 사용 범위가 가장 넓은 언어인 영어의 경우 그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영어는 원래 영국의 언어였지만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일랜드, 인도 등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여러 나라들의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나라에 영어가 전파된 지 수백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영어는 모두 발음과 강세, 어휘 면에서 제각각이 됐다. 미국인이 영국에 가서 영국인의 영어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얘기도 있을 정도다.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언어인 중국어 역시 북부의 북경어와 남부의 광동어는 발음에서부터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한반도와 같은 작은 땅에서도 각 지역별 사투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어를 두고 벌어진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는 북한 당국의 정책적 요구에 의한 인위적 이질화에 더 가깝다는 데 문제가 있다.
북한은 해방과 분단 직후인 1946년부터 문맹퇴치 운동과 말다듬기 운동에 들어갔다. 이 말다듬기 운동의 주된 내용은 일본어의 잔재를 청산하는 한편, 어려운 한자 어휘를 순우리말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는 한국의 국어순화운동과 맥을 함께 했지만 한국은 민간단체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반면, 북한은 당국의 적극적이고 일관된 의지를 통해 정책적으로 수행됐다. 이 때문에 말다듬기 운동은 국어순화운동보다 큰 효과를 거뒀다.
북한 언어의 이질화는 1960년대 들어 더욱 심해진다. 김일성 주석은 1964년 1월 3일 '조선어를 발전시키기 위한 몇 가지 문제'라는 교시와 1966년 5월 14일 '조선어의 민족적 특성을 옳게 살려나갈데 대하여'라는 교시를 발표했다.
김일성 주석의 이 같은 두 교시는 북한의 언어 정책 및 어문 규범에 새로운 전기를 제시했다. 아울러 북한이 분단 이후 추구해온 말다듬기 운동의 결과를 북한 표준어, 즉 '문화어'로 채택하게끔 해 주었다.
문화어라는 표현도 앞서 김일성 주석의 1966년 교시에서 처음 나왔다. 그는 “문화어는 혁명의 수도이며 요람지인 평양의 언어인 평양 말을 기준으로 언어의 민족적 특성을 보존하고 발전시킨 우리 말”이라는 요지의 정의를 내렸다. 그 이전까지는 북한의 표준어도 서울 말을 기준으로 삼았다.
이러한 김일성 주석의 발언에는 북한이 한국과는 다르며, 심지어 더욱 뛰어난 국가임을 언어를 통해 드러내야 한다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이로서 북한의 언어에는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성, 그리고 북한의 지배 이념인 공산주의와 주체사상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게 됐다.
이러한 기조는 갈수록 극단적이 된다. 심지어 김일성 주석의 손자인 김정은 국무위원장 시대인 2023년에는 ‘평양문화어보호법’을 내놓았다. 이 법에서는 한국의 언어를 “어휘, 문법, 억양 등이 서양화, 일본화, 한자화되여 조선어의 근본을 완전히 상실한 잡탕 말인 괴뢰말”로 규정하면서 이를 사용하는 북한 주민을 최고 공개 사형까지 처할 수 있게 규정했다.
하지만 이 법에서 구체적으로 명시한 괴뢰말의 사례는 혈육 관계가 아닌 청춘남녀들 사이에 '오빠'라고 부르거나 직무 뒤에 '님'을 붙여부르는 것 말고는 없다.
애당초 기본적으로는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남북한이다. 그런 와중에 너무나 자의적인 적용이 가능한 이 법은 국민 통제를 위한 악법인 셈이다. 정작 김정은 위원장조차 공석에서 괴뢰말을 사용해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80년 동안 크게 이질화된 남북한 언어의 구체적 사례를 일일이 들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이 문제는 단순히 “통일돼서 같이 살다 보면 어떻게 되겠지” 식으로 풀릴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현재 탈북민들도 한국어에 적응 곤란을 겪을 지경이다.
일상용어에 비해 각 분야 전문용어는 더욱 심하게 이질화돼 현재 남북의 각 분야 전문가들은 공동작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이다. 2016년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의 조사에서 남북 일상용어 중 서로 다른 것은 38%, 전문용어는 66%가 달랐다. 전문용어 10개 중 3개만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일례로 곤충을 분류하는 412개 과 중에서 316개 과의 이름이 다를 정도다.
산업 분야 중에는 의학, 건축, 항공 등 인간의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분야도 있다. 외국의 사례이기는 하지만 관제사와 조종사간에 말이 통하지 않아 항공 사고를 낸 경우도 부지기수다. 만약 지금 당장 통일이 된다면 그런 류의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심지어 남북한은 한글 키보드의 배열조차 다를 정도다. 영어 키보드 배열이 국가에 상관없이 통일돼 있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이질화된 것이다. 이러한 심각한 이질화는 통일을 위한 남북간의 공감대 형성은 물론 통일 이후 사회 통합에도 지장을 줄 수 있다. 더 나아가 정서적 단절과 민족 동질성도 약화할 수 있다.
남북한과 같은 언어 이질화는 같은 분단 국가였던 동독과 서독 간에서도 비슷한 원인과 양상으로 나타난 적이 있다. 그러나 동독과 서독은 분단 시절에도 방송 청취와 인원 왕래가 가능할 정도로 상호 개방돼 있었다. 통일이 서독체제가 동독체제를 흡수 통일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통일 이후 언어 장벽 역시 동독인들에게 ‘서독어’를 교육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그에 비해 분단 80년이 지난 현재까지 방송 청취는 물론 인원 왕래도 사실상 불가능한 남북한은 통일 이후 발생할 언어 장벽 혼란에 대응할 준비가 거의 되어 있지 않은 셈이다. 그런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이 준비는 통일 이전부터 진행해야 한다.
구체적인 준비로는 △남북한 공동 언어 사전 편찬 △상호 문화 교류 및 언어 교육 확대 △언어 정책의 통합 및 조정 등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모두의 전제 조건은 남북간의 신뢰와 대화다.
일례로 남북은 공동 언어 사전인 겨레말 큰사전을 발간하기로 합의하고, 제작을 위해 25차례의 회의 끝에 목표량 30만7000단어 중 12만 단어에 대한 합의안을 정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진행은 2015년 남북관계 경색 이후 현재까지 10년이나 답보 상태다.
이에 대한 해답은 뜻밖에 첨단기술이 제공할지도 모른다. 한동대학교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공동연구팀은 지난해 인공지능(AI) 기반 남북한 언어 번역 모델을 개발했다. 이들은 KISTI NK테크와 통일부 북한자료센터의 문헌을 바탕으로 구축한 최초의 남북한 병렬 문장쌍 데이터셋과 트랜스포머 번역 모델로 남북한 언어의 번역을 시도했다.
이 연구는 지난해 12월 일본 도쿄외국어대학교(TUFS)에서 열린 제38회 태평양 아시아 언어, 정보 및 계산 학술대회에서 발표돼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같은 민족 간의 언어를 해석하기 위해 인공지능까지 동원돼야 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한반도의 언어는 이제 명칭까지 이질화됐다. 한국은 자신들의 언어를 ‘한국어’로, 북한은 ‘조선어’로 부른다. 이에 이웃나라 일본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일본에는 한국 또는 북한과 관련이 있는 한반도인들이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일각에서는 한반도의 언어를 가리키는 중립적인 표현으로 ‘코리아어(Korea語)’라는 명칭을 쓰기도 한다. 분단이 낳은 현실이다./이동훈 기자 ldh@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