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정 불안으로 대중 강경 노선 탔다는 분석
- 美, 대만 문제 입장 모호…거래적 태도 보여

'친미·독립' 성향의 라이칭더(賴清德) 대만 총통이 오는 20일 취임 1주년을 맞는다.
그는 천수이볜(陳水扁), 차이잉원(蔡英文)에 이어 대만 민주진보당(민진당)이 배출한 세 번째 총통이다. 또한 당내 핵심 세력이자 독립 성향 '신조류파' 소속이다. 그는 지난해 총통 선거에서 40.05%의 득표율로 친중성향인 중국국민당(국민당)의 허우유이(侯友宜) 후보를 약 7%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당선됐다
그러나 득표율이 차이잉원 전 총통의 앞선 두 차례 대선(2016년 56.12%·2020년 57.13%)에 크게 못 미친 데다 다수당 지위마저 국민당에 내주었다. 게다가 양안관계 경색,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만에 대한 모호한 태도까지 겹쳐 첫 1년간 '3중고'를 겪었다고 평가된다.
"중국은 적대 세력"…대중 강경 노선으로 양안 관계 악화
라이 총통은 지난해 5월 취임사에서 "중화민국(대만)과 중화인민공화국(중국)은 서로 예속되지 않는다"며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고, 현상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중국은 라이 총통이 '국가간 상호 불예속'이라는 논리로 사실상 '독립'을 주장한 것이라고 비난하며 취임 사흘 만에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이는 등 압박을 가했다.
대만 관세 감면을 중단하는 경제 공세와 대만의 수교국(12개)을 더 줄이려는 외교적 고립 전략도 구사했다. 대만은 1971년 유엔에서 축출당한 이래 수교국 수가 급속히 줄었다.
라이 총통은 이후 대중 강경파를 안보 책임자로 기용하고,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과의 관계를 강화했다. 지난 3월에는 중국 세력이 대만 군부와 사회에 침투해 있다며 중국을 역외 적대 세력으로 규정하고, 양안 교류 통제와 대만 내부 감시 강화를 골자로 하는 '대만이 당면한 5대 국가안보·통일전선 위협 및 17개항 대응 전략'(라이 17조)을 발표했다.
대만 총통이 직접 중국을 '적대 세력'이라고 부른 것은 대만의 대중국 노선에서 근본적 변화로 평가되며, 과거 천수이볜과 차이잉원 총통 시절보다도 더한 반중 노선 표출이다.
중국은 이에 지난 4월 1일 대규모 대만 포위 훈련으로 응수했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2027년까지 대만 침공 준비를 완료할 것을 중국군에 지시하는 등 각을 세우고 있다.
'여소야대' 정국…野 의원 파면·총통 탄핵
이같은 대중 강경 노선을 선택한 것은 대만의 여소야대 정국 때문이라는 관측이 있다. 여당 민진당은 지난해 1월 대선과 함께 치른 총선에서 입법원 전체 113석 중 51석을 얻었다. 제1야당 국민당은 민진당보다 많은 52석을 얻었고, 제2야당인 민중당이 8석을 얻어 캐스팅보트를 행사한다. 이 때문에 라이 총통 정책의 상당 부분은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입법원·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의 권한을 확대, 의회의 정부 견제 기능을 강화하는 의회개혁법(일명 총통견제법) 통과를 계기로 여야가 충돌, 지난해 12월까지도 난투극과 시위가 이어졌다.
민진당은 야권이 정부 예산안을 삭감하자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야당 의원 파면(주민소환) 운동을 추진했고, 이에 맞선 야권은 올해 들어 내각 총사퇴와 라이 총통 파면 가능성까지 거론하는 등 정치적 혼란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총통 신임도 역시 떨어졌다. 대만 인터넷 매체 미려도전자보(美麗島電子報)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월 53.0%였던 총통 신임도는 지난달 집권 후 최저인 48.6%로 떨어졌다. 불신임 응답은 43.0%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집권 만족도는 지난달 처음으로 불만족(47.3%)이 만족(47.1%) 응답을 넘어섰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대중 강경 노선은 라이 총통이 대중적 지지 기반을 다지고, 반대파들을 '친중'으로 몰아 공격하려는 포석일 수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야권 의원 파면 운동으로 의석 구도가 변동, 민진당이 원내 단독 과반을 차지하면 다음 대선·총선(2028년 1월) 전에 여소야대 구도가 뒤집힐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 공전과 사회적 갈등의 부작용은 이미 현실이다.
대만에 '전략적 모호성'으로 임하는 트럼프 행정부
트럼프 대통령의 불확실한 대만 정책도 문제다. 전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중 다섯 번 공개적으로 대만 방어를 약속했던 것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 문제도 특유의 거래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그는 대만에 안보 제공을 약속하지 않으면서 자체 방어 능력을 갖추고 무역흑자까지 줄일 것을 요구했다.
대만은 이에 미국산 무기와 에너지 등의 수입 확대를 준비 중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기업 TSMC는 미국에 1000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렇게 미국의 비위를 맞춰 줘도 미국은 대만에 대한 태도를 확실히 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월 각료 회의에서 대만 방어에 대한 취재진 질문이 나오자 답변을 거부했다.
정현욱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대만 문제에서 민주주의 가치 수호 등 '전략적 명료성'을 기조로 삼았던 바이든 행정부와 달리 트럼프 행정부는 '전략적 모호성'을 심화하면서 대만으로부터 이익을 끌어내는 동시에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굴지의 무역 항로인 대만해협과 세계 굴지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지닌 대만의 지도자와 안보가 안개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이동훈 기자 ldh@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