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도이머이 정책 후 개방형 사회주의국가로 변신
한-베트남 교역액 800억 달러, 북-베트남 교역액 제로

2019년 2월 미북 정상회담 차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주석궁에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2019년 2월 미북 정상회담 차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주석궁에 들어가고 있다./연합뉴스 

1950년 1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베트남 민주공화국은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김일성과 호치민은 서로의 독립을 축하했고 사회주의 세계혁명이라는 공동의 이상 아래 '동지적 연대'를 맺었다. 그러나 75년이 지난 지금 양국 관계는 과거의 그림자를 간직한 채 형식적 외교관계만을 유지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응우옌 티 탐 베트남 사회과학원 박사는 최근 일본 '동아시아무역연구지'에 게재한 '북한과 베트남 관계 75주년 분석' 글에서 이 같이 밝혔다. 

논문에 따르면 냉전 초기 북한과 베트남은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상대로 함께 싸웠다. 

1957년 호치민 주석의 평양 방문과 1958년·1964년 김일성 주석의 하노이 방문은 양국 간 동맹의 정점을 상징하는 외교 이벤트였다.

북한은 베트남전쟁 당시 공군 조종사 300여 명을 파견, 미 공군과의 전투에 참전시켰다. 이들은 하노이 상공에서 미 전투기 26기를 격추시키는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의 북한군 파일럿들이 사망했고, 이들은 베트남이 마련해준 '조선열사묘역'에 안장됐었다. 북한은 2002년 베트남에 안장된 북한군 시신을 항공기로 북한에 옮겼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후 상황은 급변한다. 베트남은 실리를 택했고 북한은 고립을 자초했다. 베트남은 미국과 파리평화 협정에 임했지만 북한은 이를 '사회주의 원칙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했다.

결정적인 갈등은 캄보디아 문제였다. 북한은 중국과 함께 크메르 루주를 지지하며 베트남과 정반대 노선을 택했다. 이는 결국 양국 외교의 단절로 이어졌다.

1992년 베트남이 대한민국과 수교를 결정하자 북한은 즉각 반발하며 하노이 주재 대사를 소환했다. 양국 관계는 사실상 '냉각기'에 들어섰다.

1990년대 극심한 기근을 겪은 북한은 베트남에 쌀을 요청했고 2007년엔 베트남으로부터 2만 톤의 쌀을 수입했다. 당시 대북 쌀 수출 대금은 약 1800만 달러였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 원리금 상환을 지연하거나 중단했고 식량 외에도 다양한 소비재를 베트남에서 조달해왔다.

하지만 교역은 항상 중국을 중개한 간접 거래를 통해 이루어졌다. 직접 거래는 드물고 규모도 극히 제한적이다. 2014년 양국 교역액은 800만 달러, 2015년에는 1160만 달러 수준에 머물렀으며, 2016년 이후 북한의 대베트남 수출은 사실상 '0'에 가까웠다. 2017년 베트남의 대북 수출품 대부분은 과자류와 식료품이었다.

과거의 정치적 전통은 있지만 경제협력은 전무한 관계가 된 것이다.  무역 품목도 제한적이고 규모는 불안정하다. 북한이 기대하는 기술·농업 분야의 협력도 실제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2000년대 김정일 시대에 접어들며 양국은 관계 회복을 시도했다. 2002년 베트남 국가주석이 방북해 해운·농업·투자보호·항공운송 등 5개 경제협정을 체결했고 이후에도 정상급 회담과 합동경제위원회 회의를 이어갔다.그러나 이들 협정은 대부분 서명에만 그쳤다.

하노이, 다낭, 호찌민 등에 세워졌던 북한 레스토랑들도 2017년 유엔의 대북제재 이후 모두 문을 닫았고, 현재 운영 중인 곳은 하노이의 평양관 뿐이다. 북한이 운영하던 합작 섬유공장도 1990년대 말 철수했고 베트남 내 북한 투자 프로젝트는 현재 전무한 상황이다. 

핵심은 체제의 선택이다. 베트남은 1986년 도이머이 개혁 개방 노선 이후 아세안 가입과 미국과의 수교, 한국과의 전략적 협력 등을 통해 개방형 사회주의 국가로 전환했다. 2023년 기준 한-베트남 교역은 800억 달러에 달한다.

반면 북한은 핵개발과 고립 외교를 지속하며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자 외톨이로 남았다. 그 결과 과거에는 자신 있게 무기와 조종사를 보내던 북한이 지금은 베트남으로부터 식량을 공급받으며 '제재 회피용 교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9년 2월 미북 정상회담을 위해 하노이를 방문했지만 양국 관계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다. 

응우옌 티 탐  박사는 “북한과 베트남의 외교는 아직 유지되고 있지만, 실제 협력은 거의 없으며 정치적 상징 이상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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