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에 직접적 보복 피한 채 이스라엘에 공격 집중하는 분위기
- 이스라엘과 '소모전' 벌이며 핵무기 제조에 박차 가할 가능성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미국의 이란 핵시설 폭격으로 중대한 갈림길에 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제 평화의 시기가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쟁을 멈출지 여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달린 문제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당장 이란이 보복을 경고하고 있고, 이스라엘도 전쟁을 멈출 의향을 보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정점으로 하는 이란 신정(神政)이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 핵무기 개발 능력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가장 신속한 종전 시나리오로 꼽힌다.
하지만 이는 가장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로 꼽힌다는 것이 글로벌 안보 전문가나 현지 언론들의 진단이다. 가뜩이나 미국의 제재로 악화한 경제난과 각종 실정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숙적' 이스라엘과 미국에 일방적으로 난타당하다 굴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권 붕괴로 이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이번 핵시설 공습이 '단발성' 개입임을 시사했고, 2003년 이라크 전쟁처럼 미국이 지상군을 대거 투입할 가능성도 사실상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이란 정권이 이스라엘의 공습을 버텨내며 국면 전환을 노릴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다.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대학의 필립스 오브라이언 교수는 22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 현재 이란 지도자들의 최우선 과제를 정권 유지로 봤다.
오브라이언 교수는 "이란 정권으로서는 최소 한번은 미국과 이스라엘에 강력한 보복을 하는 게 절실히 필요하다고 여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이란은 미국의 국익을 겨냥한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으며,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자국민에게 긴 전쟁에 대비할 것을 당부했다.
향후 전개를 결정할 핵심 변수로는 이란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강력한 보복을 감행할지가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확실하게 보복하면서도 미국과의 전면전은 피해야 하는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이란 정권은 공격 수위를 신중하게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확전을 불사하고 이라크와 카타르, 바레인 등 주변국의 미군기지 등에 대대적 탄도미사일 공격을 감행한다면 미국이 입장을 바꿔 전면 개입하면서 정권이 붕괴하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최근 선례를 볼 때 이란이 이번 사태를 다시 한번 미국과의 '약속대련'으로 봉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020년 미국이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IRGC) 쿠드스군 사령관을 표적 공습으로 제거했을 때처럼 실질적 피해가 없는 상징적인 수준의 공격으로 미국에 대한 보복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얘기다.
실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이 미국에 대한 직접적 보복을 피한 채 이스라엘에만 공격을 집중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가 취재한 이란 정권 내부 인사는 "우리는 미국과의 큰 전쟁에 돌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내부 인사는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것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보복이 될 것"이라면서 "미국을 이란과의 전쟁에 끌어들인 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인 만큼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란이 미국을 전쟁에서 배제할 경우 이란이 이스라엘과 출구 없는 소모전을 벌이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은 연일 이란 각지를 폭격 중이지만 전쟁을 끝낼 '결정적 한 방'을 갖고 있지는 못한 실정이다.
그런 만큼 이란 정권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 본토에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가하는 동시에 지금껏 비축한 고농축 우라늄으로 핵무기 제조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이 있다.
향후 전쟁 경로를 둘러싼 근본적인 변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폭격으로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가 여부다. WSJ은 큰 타격이 없다면 조만간 핵무기를 만들 수 있지만 피해가 심각하다면 과거 시리아나 이라크에서처럼 핵무기 완성 전에 정권이 무너지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