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노동신문이 최근 ‘노동당 80년사는 사회주의 집권 역사의 최장 기록’으로 자축하며 이를 '불멸의 위업'으로 포장하고 나섰다. 심지어 노동당의 집권 역사를 800년으로 이어가겠다며 김씨왕조 영구집권의 야망을 드러냈다.
북한은 노동당의 장기 집권을 주변 사회주의 국가들과 비교하며 ‘가장 오래, 가장 억세게, 줄기차게’ 이어지는 ‘승리의 대서사시’로 규정했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이나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들이 해체된 것을 교훈 삼아 ‘진정한 사회주의는 오직 우리식’이라며 우월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80년을 넘어 800년을 간다”는 말은 언뜻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정권이 안고 있는 위기의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사회 변화의 동력을 통제하고 외부 정보의 유입을 막으며 오직 과거의 혁명 유산만을 되뇔 수밖에 없는 북한 체제의 현재는 정체가 아니라 후퇴를 향하고 있다. 마치 동굴 속에서 벽화를 붙들고 살아가는 형국이다.
800년 집권 선언은 겉으로는 자신감 넘치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변화에 대한 공포와 시대와 단절된 고립된 체제의 자기위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북한은 한줌의 권력 엘리트와 주민 간의 삶의 괴리가 극에 달한 폐쇄적 체제다. 정치적 자유와 반대가 억압되고 정보는 차단된 극단적 통제국가다. 이는 세계 사회주의 정권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변화와 개혁의 길을 모색한 것과는 분명한 대조를 이룬다.
사회주의 원조인 소련은 집권 74년 만인 1991년 붕괴했다. 1980년대 중반 고르바초프의 ‘개혁(페레스트로이카)’과 ‘개방(글라스노스트)’ 정책에도 개혁을 뒷받침하는 구상과 계획은 치명적으로 낡았고, 경제적으로 결함이 있었으며 기존 경제와 정치체제를 내부로부터 파괴했다.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국가사회주의 경제시스템에서 자본주의 경제시스템으로 전환했고, 공산당은 더 이상 집권당이 아니다.
중국 공산당은 덩샤오핑 체제 이후 ‘정치는 통제, 경제는 시장’이라는 방식을 통해 생존을 택했다. 1978년 개혁개방 선언 이후 중국은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외자를 도입하며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했다. 오늘날 시진핑 체제는 다시 ‘중국식 사회주의’를 강조하며 당의 통제를 강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기본적인 시장 질서와 글로벌 무역의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변화'라는 단어를 거부하지 않았다.
베트남 공산당 역시 1986년 ‘도이머이(Doi Moi, 개혁개방)’를 통해 중앙계획경제에서 점진적으로 시장경제로 이행했다. 농업의 사적소유를 인정하고 외국인 직접투자를 허용하면서 베트남은 아세안 주요 경제국으로 부상했다. 정치적 다원성은 여전히 부재하지만 당의 정당성은 ‘성장’과 ‘국민 생활 향상’으로부터 일정 부분 정당화되고 있다. 베트남은 체제를 유지하되 변화의 흐름을 부정하지 않았다.
반면 북한 노동당은 어떠한가. 20세기 세계사적 체제전환기에 변화를 거부하다 경제 붕괴로 수백만의 인민을 굶주림에 내몬 실패한 정당이다. 한국같은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 같은 실책을 했다면 그 정당은 열번도 사라졌을 것이다. 중국의 마오쩌둥도 대약진 운동 실패 후 당 총서기와 국가주석직을 내려 놓았다. 물론 문화대혁명의 대동란을 일으켜 권력 회복을 꾀했지만 그 와중에서도 덩샤오핑을 제거하지 않고 개혁의 싹을 남겨두었다.
김정은 정권은 집권 초반 개혁 성향의 장성택을 처형하고 주변 세력까지 뿌리채 제거했다. 최근에는 ‘우리식 사회주의’를 강조하며 주민들의 생존 수단이 장마당까지 통제하에 흡수하고자 한다. 국영상업망 강화하고 장마당을 제한하며 내부적으로는 반제계급투쟁과 ‘주적관’을 강조한다. 북한이 말하는 ‘노동당 80년 장기 집권사’는 변화 없는 권력세습과 구조적 빈곤, 억압의 연속일 뿐이다.
이는 북한이 여전히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김씨 왕조 체제의 영속성을 위해 존재하는 헌정 구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800년을 이어가겠다는 주장은 그래서 더욱 공허하다. 진정한 통치의 정당성은 ‘시간’이 아니라 ‘내용’에서 나와야 한다.
북한 노동당이 사회주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집권당으로 자처하지만 이는 다시말하면 ‘가장 진화가 덜 된 구닥다리 정당’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노동당이 진정한 자부심을 원한다면 독재의 수족이 되어 인민을 억압하는 돌격대의 역할을 하기 보다 인민의 자유를 보장하고 삶을 변화시켰다는 실질적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80년을 넘어 800년 집권을 넘본다’는 망상보다 “어떻게 전근대적 시스템을 변화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답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