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국방부 문건에서 밝혀…대만에도 군비 증액 요구
- 유럽 방위도 유럽 손에…美 고위직 행보, 문건 뒷받침

 

지난 30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왼쪽)이 일본을 방문해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미국은 본토와 대만 방위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동맹국들에게 이를 위한 추가 지출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연합 
지난 30일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왼쪽)이 일본을 방문해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악수를 하고 있다. 미국은 본토와 대만 방위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두고, 동맹국들에게 이를 위한 추가 지출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연합 

최근 폭로된 미국 정부의 비밀 내부 지침 문건에 따르면 장차 미군의 최우선 목표는 중국의 대만 침공 억제와 미국 본토 방위 강화인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이 목표를 위해 인도ㆍ태평양 지역을 제외한 유럽 등 다른 지역에서의 위험은 감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국 등 미국 동맹국들의 군비 부담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임시 국방 전략 지침’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문건은 지난 3월 중순 미국 국방부 내에 배포됐으며, 헤그세스 장관의 서명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그린란드 및 파나마 등 미국에서 가까운 외국으로부터의 위협에서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여기고 있다. 이 문건은 그 대강의 실행 계획을 다루고 있다. 또한 미군에 밀입국 및 마약 밀수 저지 작전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맡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이미 중국은 트럼프 제1기 행정부 때부터 미국 최대의 가상적국이었다. 그러나 이 문건에서는 중국의 대만 침공을 가장 큰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막기 위해 인도ㆍ태평양 지역에 초점을 맞춘 미군의 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의 대만 침공 억제가 우선순위로 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대만 해협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해상 교통로 중 하나다. 중국, 일본, 한국 등 태평양 지역 국가들을 모두 연결하는 해상 교통 요충이다. 또한 대만은 세계 제2위의 반도체 생산국이다. 대만을 중국에 뺏길 경우 미국은 막대한 경제적·군사적 타격을 입게 된다. 

미군은 이를 막기 위해 유럽, 중동, 동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인원과 자원까지 어느 정도 빼내어 인도ㆍ태평양 지역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동맹국들에게 더 많은 안보 부담을 요구하겠다는 것도 이 문건에 적혀 있다.

특히 대만은 국방력이 미약하다며 앞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0%에 달하는 국방비 지출을 요구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현재 대만 국방비는 GDP의 2.5%다. 동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이자 대만과 이웃한 우리나라 역시 중국의 대만 침공은 물론 북한과 러시아의 위협까지 막기 위한 국방비 지출 증가를 요구받을 수 있다.

지난해 10월 4일 한미 양국은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타결했다. 이 협정에 따르면 2026년 한국이 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2025년 대비 8.3% 증가한 1조5192억원이다. 2027~2030년 분담금은 매년 전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만큼 인상되며, 매년 5%를 초과해 인상할 수 없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한국을 '머니 머신'이라고 부르며, 방위비 분담금을 현행 금액의 약 10배에 달하는 100억 달러(약 15조원)씩 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특별협정은 조약이 아닌 행정협정이므로 대통령이 무효를 주장한다면 재협상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번 문건의 기조를 따라 움직일 경우 제12차 SMA는 무효화되고, 미국의 요구에 맞게 방위비 분담금 액수가 대폭 인상될 수 있다.

인도ㆍ태평양과 멀리 떨어진 미국의 동맹국들 역시 사정은 비슷할 것으로 보인다. 해당 문건에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이 러시아의 유럽 침공 억제의 주체가 돼야 하며, 미국은 핵우산, 그리고 미국 본토와 대만을 방위하고 남는 재래식 전력으로만 유럽을 도와야 한다고 나와 있다. 즉, 유럽 국가들 역시 줄어든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메꾸기 위해 더 많은 국방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문건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과 의지를 갖춘 세력에 맞선 대테러 임무에 주안점을 둘 것을 밝히고 있다. 이는 현지의 안보를 악화시키기는 하지만 미국을 타격할 수는 없는 중동과 아프리카의 무장세력에는 신경을 덜 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의원 보좌관에 따르면 이 문건을 접한 미국 의회 국방위원회 의원들은 소속을 막론하고 매우 혼란스러워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중동의 예멘 후티 반군과 이란에 맞서 억제력을 시현해왔다. 그러나 인도ㆍ태평양에만 집중하고 다른 곳에서는 힘을 빼겠다는 이 문건의 내용은 그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해당 보좌관은 앞으로 미국 정부가 전략 수립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봤다.

워싱턴포스트의 분석에 따르면 이 문건의 논조는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 헤리티지 재단이 지난해 8월에 발간한 보고서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헤리티지 재단의 해당 보고서 역시 대만 침공 억제와 본토 방위, 동맹국들에게 안보 부담 전가 등을 골자로 삼고 있었다.

현재 헤그세스 장관은 인도ㆍ태평양 지역을 순방하며 이 문건 내용에 힘을 싣고 있다. 괌 주둔 미군을 가리켜 ‘창끝 부대’라고까지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파나마 운하 등을 미국에 병합하고 싶다고 밝힌 것도 이 문건 내용과 궤를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 국방부와 헤리티지 재단은 이번에 드러난 문건 내용에 대해 현재까지 아무 논평도 하고 있지 않다./이동훈 기자 ldh@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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