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사실상 보이콧한 G20 정상회의에서 中 '다자주의' 부각
- 대만 유사시 집단 자위권 발동 日 총리 발언에 일정한 거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주요 다자회의를 외면하고,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발언을 계기로 불거진 중일 갈등에도 관여를 자제하면서 미국의 전략적 경쟁 상대국인 중국이 '반사이익'을 거두게 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경주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10월 29∼30일 방한했지만 본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이달 22∼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도 불참했다.
그나마 동맹국인 한국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의 경우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본회의에 트럼프 대통령을 대신해 참석했지만, 미국과 껄끄러운 관계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는 사실상 보이콧했다.
중국은 관례에 따라 서열 1위인 시진핑 국가주석이 APEC 정상회의, 2위인 리창 국무원 총리가 G20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아울러 브라질 벨렝에서 열린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30)는 미국이 불참한 가운데 22일 화석연료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 없는 합의문을 가까스로 도출한 채 막을 내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외면한 이들 다자회의 가운데 중국의 반사이익이 특히 두드러졌던 것은 G20 정상회의였다. 미국이 정상선언 채택에 반대하는 와중에 회의 첫날 채택된 정상선언은 "G20이 다자주의 정신에 기반해 합의에 따라 운영되고, 모든 회원국이 국제적 의무에 따라 정상회의를 포함한 모든 행사에 동등한 입장에서 참여하는 데 대한 우리의 약속을 재확인한다"는 문구를 넣었다.
다자주의는 미국 일극체제를 다극체제로 바꾸길 원하는 중국이 양자외교, 다자외교에서 빼놓지 않고 강조하는 용어다. 미국이 빠진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드라이브와 기후변화 부정 등에서 보이는 일방주의 및 미국 우선주의와 대척점에 있는 용어인 다자주의가 강조된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내 백인들의 처우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이뤄진 트럼프 대통령의 G20 정상회의 보이콧이 결국 중국의 외교적 승리로 연결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외치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대외 군사 개입을 최대한 자제할 것으로 예상됐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미군의 이란 핵시설 공격을 지시하며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는 무력을 사용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 전쟁 등의 중재를 비롯해 자신의 노력을 통해 공을 독차지할 수 있는 사안을 중심으로 성과 지향적 외교를 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다자회의의 일원으로 참석해 뚜렷한 결과 없이 애매한 절충의 결과물을 내는 APEC이나 G20 정상회의 같은 다자회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체질적으로 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다자회의 비선호는 결과적으로 중국에 자국의 주장에 대한 동의와 공감대를 확산할 기회를 주는 양상이다.
중국 역시 경제력을 앞세워 타국에 강압적으로 자국의 의사를 관철하려고 시도하는 등 일방주의적 행태를 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관세를 통해 무역 불균형 해소뿐 아니라 외교 현안 해결, 더 나아가 타국의 내정 개입까지 시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주의가 워낙 강력한 까닭에 중국의 다자주의 주장은 미국의 관세 압박 앞에 '동병상련'을 느끼는 각국에 더 잘 스며들 여지가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대만 유사시 집단 자위권을 발동해 개입할 수 있다는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최근 발언을 계기로 중일 간 갈등이 심화하는 상황에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일 방영된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발언과 관련해 '참수'를 거론한 중국 외교관의 극언에 대해 질문받자 "중국보다 우리의 동맹국들이 무역에서 우리를 더 이용했다"고 답한 뒤로는 이 문제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를 보면서 트럼프 1기 행정부때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를 이유로 중국이 한국에 대해 각종 보복을 할 때 미국이 별달리 개입하지 않았던 상황을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미국 국무부의 토미 피곳 수석 부대변인이 지난 20일 소셜미디어(SNS) 게시물을 통해 "일본이 관할하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포함, 미일 동맹과 일본 방위에 대한 우리의 공약은 확고하다"며 "대만해협·동중국해·남중국해에서 무력이나 강압 등을 통해 현상을 변경하려 하는 어떠한 일방적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반대한다"고 밝히긴 했지만 정상이나 국무·국방장관 등의 발언 만큼 무게가 실리지 않았다.
지난달 30일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과 무역전쟁의 '휴전'을 연장하기로 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중국과의 관계를 다시 흔들고 싶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인 측면, 즉 트럼프 대통령의 전반적인 강대국 외교 기조에서 원인을 찾는 이들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엄청난 '관리 비용'이 드는 미국 일극체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대만 침공과 같은 현상 변경 시도만 없다면 중국, 러시아 등 다른 강대국의 영역을 인정하는 가운데 상호 공존하는 쪽으로 강대국 외교의 방향을 설정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한동안 미국 외교가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았던 'G2'(미국과 중국)라는 표현을 SNS 등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심상치 않은 일이라고 일각에선 보고 있다.
"태평양은 미중 양국을 모두 포용할 만큼 충분히 넓은 공간"(2013년 미중 정상회담), "지구는 미중이 성공하기에 충분히 크다"(2023년 미중 정상회담) 등의 수사를 사용하며 미국에 영역 인정을 요구해온 시진핑 주석으로선 반길 일인 것이다./박동혁 기자 pdh@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