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수상/세계일보
2004년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수상/세계일보

2025년 10월 24일,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내각총리대신이 취임 후 첫 소신표명 연설에서 납치문제를 "내각의 최중요과제"로 규정했다. 28일에는 방일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요코타 사키에를 비롯한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면담하며 해결 의지를 재차 표명했다. 트럼프는 "일본인 납북 피해자 문제는 항상 내 마음속에 있다"며 "미국은 끝까지 함께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한 다카이치가 납치 문제 해결에 어떤 행보를 보일지 국제사회가 주목하고 있다.

12명은 어디에 있는가? 북한은 8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납치문제대책본부 공식 입장은 명확하다. "북한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한, 안부를 알 수 없는 납치 피해자는 모두 생존해 있다는 전제로 대응한다."

요코타 메구미에 대해 북한은 1994년 3월 13일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2004년 11월에는 화장된 유골이라며 유해를 제공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의 DNA 감정 결과 다른 사람의 것으로 밝혀졌다. 타구치 야에코는 교통사고로, 이치카와 슈이치와 마스모토 루미코는 심장마비로, 이시오카 도루와 마츠키 가오루는 가스 사고로, 하라 타다아키는 간경화로 사망했다는 것이 북한의 주장이다. 일본 정부는 이 모든 설명을 증거 불충분으로 거부한다.

4명(쿠메 유타카, 마츠모토 교코, 타나카 미노루, 소가 미요시)에 대해서는 북한이 "입국 사실이 없다"고 주장한다. 소가 미요시는 귀환자 소가 히토미의 어머니로, 딸과 함께 1978년 8월 12일 납치됐다. 소가 히토미는 어머니와 함께 있었다고 증언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입국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외무성 공식 자료는 17명의 납치 시기, 장소, 나이를 구체적으로 명시한다. 가장 어렸던 피해자는 메구미(13세)였고, 가장 나이가 많았던 이는 쿠메 유타카(52세)였다.

유럽에서 납치된 이들도 있다. 타나카 미노루(1978년 6월), 이시오카 도루와 마츠키 가오루(1980년 5월), 아리모토 게이코(1983년 7월)는 유럽에서 실종됐다. 가장 마지막 납치는 1983년 7월 아리모토 게이코 사건이었다.

2014년 5월 스톡홀름 합의는 마지막 희망이었다. 스웨덴에서 열린 북일 정부 간 협의에서 북한은 "납치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일본인에 관한 포괄적이고 전면적인 조사"를 약속했다. 일본은 북한의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시점에 제재 일부를 해제하기로 했다. 2014년 7월 4일 북한은 조사 개시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약속도 2년을 못 넘겼다. 2016년 2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일본이 새 제재를 가하자, 북한은 일방적으로 조사 중단과 특별조사위원회 해체를 선언했다.

그 이후 8년간 공식 조사는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2018년과 2019년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서 아베 총리의 요청으로 납치 문제를 제기했지만, 구체적 진전은 없었다. 2023년 5월 기시다 총리는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하며 김정은과의 정상회담 의사를 밝혔다. 북한 관리는 납치 문제를 "시간 낭비"라고 일축했다. 2024년 1월 5일,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 왔다. 노토반도 지진 이후 김정은이 기시다 총리에게 조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북한 지도자가 일본 총리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은 전례 없는 일이었다. 2월 15일에는 김여정이 "북한과 일본이 더 가까워질 수 없는 이유가 없다"며 기시다의 평양 방문 가능성을 시사했다. 단, 납치문제를 "이미 해결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그러나 3월 26일 북한은 모든 문을 닫았다. 김여정은 "북한은 일본과의 어떤 접촉이나 협상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3월 29일 최선희 외무상도 "일본과의 논의는 최소한의 중요성도 없다" 고 못을 박았다. 2개월간의 짧은 기회의 창은 이렇게 닫혔고, 현재까지 재개되지 않고 있다. 전임 이시바 총리의 대처2024년 10월 1일 이시바 시게루가 제102대 총리로 취임했다.

그는 2002년 설립된 납치 문제 의원연맹의 초대 회장이었다. 10월 4일 국회 첫 시정연설에서 그는 납치 문제를 "정권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규정하며 "피해자와 가족의 고령화로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인도적 문제이자 국가 주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10월 17일 피해자 가족과의 첫 면담에서 이시바는 더 절박한 어조를 보였다. "고작 1~2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그의 발언은 부모 세대의 생존 시간을 지칭한 것이었다. 실제로 2025년 2월 아리모토 아키히로(96세, 아리모토 게이코의 아버지)가 사망하면서, 생존한 피해자 부모는 요코타 사키에(89세) 단 한 명만 남게 됐다.

이시바는 "2002년 요코타 사키에가 '메구미는 살아있어요'라고 울던 모습이 납치 문제에 대한 내 감정의 가장 강한 원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과의 직접 대화 의사를 밝히며 "다른 사람의 행동을 비난만 하고 만나지도 보지도 않으면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11월 23일 국민대회 연설에서는 APEC과 G20에서 한미중 정상에게 협력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시바의 평양-도쿄 연락사무소 설치 제안은 가족회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요코타 타쿠야(메구미의 남동생, 현 가족회 대표)는 "북한에 시간만 벌어줄 것"이라며 반대했다. 11월 24일 이 제안은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을 지켜보기 위해 보류됐다. 2025년 2월 이시바- 트럼프 첫 정상회담에서 트럼프는 "즉각 해결을 위한 전면 지지"를 확약했다. 

2024년 2~3월 가족회는 운동 방침을 변경했다. 새로 추가된 메시지는 충격적이었다. "부모 세대가 살아있는 동안 모든 납치 피해자가 귀환한다면, 일본의 인도적 지원과 독자 제재 해제에 반대하지 않겠다." 가족회는 이를 "고육지책"(극도로 괴롭고 힘든 결정)이라고 표현했다. 요코타 타쿠야는 2024년 3월 설명했다. "부모님이 오늘 건강해도 내일은 아닐 수 있다. 부모가 돌아가신 후 납치 피해자가 돌아온다면 우리는 분노로 폭발할 것이다." 이 새 방침은 22년간의 무조건적 압박 노선에서 조건부 타협으로의 전환을 의미했다. 4월 29일~5월 3일 가족회는 미국을 방문해 크리텐브링크 국무부 차관보와 해거티 상원의원을 만나 새 방침을 설명했다.

미국 관리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가족회는 1997년 3월 25일 설립 이후 꾸준히 활동해왔다. 2023년 5월 27일, 11월 26일 도쿄에서 대규모 국민 집회를 열었고, 2024년 6월 27일에는 UN 온라인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일본, 호주, 한국, 미국, EU가 공동 주최한 이 행사에서 이이즈카 고이치로 가족회 사무총장은 김정은에게 "새롭고 건설적인 미래로 나아가는 현명하고 담대한 결정"을 촉구했다. 매년 12월 10~16일은 법으로 정한 "북한 인권 침해 문제 계몽 주간"이다. 이 기간 동안 블루리본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주요 건물들이 파란색으로 조명된다.

2024년 12월 14일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납치문제담당대신 겸임)은 정부 심포지엄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협력을 요청한다고 밝혔다.470명인가, 17명인가 정부 공식 인정은 17명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에는 훨씬 더 많은 피해자가 있다는 믿음이 퍼져있다. 470명이라는 숫자는 민간단체인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COMJAN)의 추정이다. 이 단체는 2003년 1월 설립됐으며, "북한 납치일 가능성이 있다"는 가족의 신고를 받아 독자 조사를 진행한다. 정부는 다른 수치를 사용한다. 경찰청은 "납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실종자"로 871명을 분류했다(2021년 10월 기준).

2014년 스톡홀름 합의 당시 일본은 약 860명의 명단을 북한에 제공하며 조사를 요청했다. 납치문제대책본부 공식 설명에 따르면, "특정실종자란 민간단체가 독자적으로 조사 대상으로 삼는 실종자"이며 정부 인정과는 별개다. UN 북한인권조사위원회는 2014년 보고서에서 "최소 100명의 일본인이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신문 보도에서도 이 숫자들이 혼재된다.

산케이신문은 특정실종자 470명을 공식 피해자와 함께 자주 언급하며 "수백 명 규모"를 강조한다. 요미우리는 정부 인정 17명을 우선하되 특정실종자를 맥락에서 언급한다. 아사히와 니케이는 정부 공식 수치를 중심으로 보도하며 미확인 숫자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핵심은 증거의 문제다. 17명은 정부가 공식 조사를 통해 북한 소행으로 확인한 사례다. 12건의 납치 사건에 17명이 연루됐다. 마지막 공식 인정은 2006년 11월 마츠모토 교코가 17번째로 추가되며 확정됐다.

나머지 수백 명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표현이 사용되지만, 북한 소행이라는 확정적 증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왜 해결되지 않는가근본적인 사실 인식의 차이가 해결을 막는다. 일본은 12명이 살아있다고 믿고, 북한은 8명이 사망했고 4명은 입국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DNA 감정 결과의 신뢰성도 논쟁적이다. 요코타 메구미의 유골 감정에서 일본은 "다른 사람"이라고 결론냈지만, Nature 저널은 감정을 수행한 연구자가 화장된 유골 분석 경험이 전혀 없었다고 비판했다. 북한은 2023년 외무성 성명에서 납치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되돌릴 수 없이"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2024년 3월 모든 접촉을 거부한 이후, 공식 대화 채널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은 일본이 자신들의 설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어떤 논의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일본은 신빙성 있는 증거 없이 북한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시간은 일본에 불리하게 흐른다. 1997년 가족회를 이끌던 부모들은 대부분 세상을 떠났다. 요코타 사키에만이 89세로 생존해 있다. 납치 피해자들도 나이를 먹는다. 메구미는 2023년 기준 59세가 됐다. 가장 나이가 어렸던 소가 히토미도 2025년 66세다.

가족회는 "지금 아니면 영원히 기회가 없다"고 절박함을 호소하지만, 북한은 응답하지 않는다. 국제 협력도 한계를 보인다. UN 인권이사회는 16년 연속, UN 총회는 19년 연속 납치 문제를 언급한 결의안을 채택했다(2024년 기준). 2023년 8월 UN 안보리에서 6년 만에 북한 인권 공개회의가 열렸고 52개국이 납치 문제를 언급한 공동성명에 참여했다. 그러나 이런 국제 압력이 북한의 태도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김현중(연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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