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주국방과 핵잠수함...민감하지만 피할 수 없는 제안
- 한미관계의 새 모델, ‘협력적 자주’로 가야

30일 경주에서 열린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단순한 외교 행사 이상의 의미를 던졌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두 달 만의 재회는 ‘피스메이커 외교’의 재가동과 동시에, 한미동맹의 새로운 구조적 전환을 예고하는 자리였다. 한반도 평화 담론과 원자력 협정 개정, 그리고 자주 국방이라는 세 축이 한 자리에서 교차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만남이 불발되었지만 제안 자체로 한반도 평화의 온기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불발된 북미 회동을 ‘씨앗’으로 규정한 표현이다. 이는 한미 정상 간 회담이 단지 한반도 문제의 ‘관리’를 넘어, 여전히 ‘해결’의 가능성을 품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 또한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 계속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그에게 김정은과의 대화는 단순한 외교 이벤트가 아니다. 스스로 ‘8개의 전쟁을 끝낸 피스메이커’라 자부하는 트럼프에게 북미정상회담은 자신의 정치적 상징이자 노벨평화상으로 향한 마지막 여정이기도 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 자존심을 세워주는 발언을 연거푸 내놓은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결국 이번 회담의 핵심은 ‘이재명식 평화외교’가 트럼프의 ‘피스메이커 본능’과 만난 순간이었다는 점이다. 비록 김정은과의 대좌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 제안이 던진 외교적 온도는 한반도 정세의 냉기를 일부 녹여낸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모두발언 후반부에서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을 내려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요청했다. 단순히 기술 협력의 문제를 넘어, 사실상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연동된 민감한 제안이었다.
1974년 체결된 한미 원자력협정은 한국이 미국의 핵물질을 재처리하거나 고농축우라늄(HEU)을 활용하는 것을 엄격히 제한한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의 해양 안보 환경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북한과 중국의 잠수함 활동이 동해와 서해를 빈번히 넘나드는 현실에서, 디젤 잠수함만으로는 추적 능력에 한계가 뚜렷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은 자주국방의 논리를 넘어, ‘핵추진 잠수함 보유는 한미 동맹 강화에도 기여한다’는 역발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번 발언을 두고 “한국이 자주국방의 기술적 완결을 모색하는 신호”라는 평가와 “민감한 핵 논의를 공개석상에서 꺼낸 것은 위험한 접근”이라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한국의 안보 현실과 국제 위상이 1970년대의 종속적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다.
한편 트럼프의 ‘러브콜’에도 김정은 위원장은 침묵을 택했다. 북러 혈맹 복원과 북중 전략공조라는 새로운 축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미 “큰 선물 보따리가 아니면 나서지 않겠다”는 계산 아래 움직이고 있다. 트럼프가 “북한은 사실상 뉴클리어 파워(핵보유국)”라고 언급하며 유화적 신호를 보냈지만, 김정은 입장에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셈이다.
북한은 한미회담이 열리는 시점에 맞춰 함대지 미사일을 발사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는 ‘대화의 불발’을 협상력 강화로 전환시키려는 의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이재명 양측이 “평화를 위한 문은 열려 있다”는 기조를 유지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회담에서 무궁화대훈장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여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동시에 “우리의 자주적 방위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도 놓치지 않았다. 한미관계가 ‘보호와 종속’의 구도에서 ‘협력과 자주’의 관계로 옮겨가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히 드러난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그래서 ‘온건한 평화외교’와 ‘실질적 자강외교’가 교차한 상징적 무대였다. 트럼프의 정치적 본능과 이재명의 전략적 현실감각이 교차한 이 순간, 한반도 외교는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다./조상진 기자 zo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