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범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 (사)미래학회 기획이사

굳건한 동맹 기반 위에 전략적 자율성을 설계할 때

지난 9월 30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콴티코에 집결한 미군 지휘부를 향해 “국방부의 시대는 끝났다. 전쟁부에 온 것을 환영한다”라고 선언했다. ‘최대 치명성(maximum lethality)’을 추구하는 ‘전사 기풍’을 강조한 그의 발언과 군사력을 국내 문제 해결에까지 확장하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은 동맹국들에게 깊은 전략적 고뇌를 안겨주었다.

이러한 ‘대내지향적 전환(domestic-oriented shift)’을 동맹 약화의 신호로 해석하고 성급한 ‘홀로서기’를 외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콴티코 선언은 동맹의 종언이 아닌, 진화를 촉발하는 전략적 변곡점으로 분석해야 한다. 미국은 이제 더 유능하고, 더 많은 책임을 분담하며, 전쟁 승리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동맹을 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해법은 고립적 자강이 아닌, 굳건한 한미동맹의 기반 위에서 점진적으로 전략적 자율성을 확대하고, 재편되는 동맹 구조 내에서 스스로를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 자리매김하는 것이다.

도전 속 기회: 동맹 심화와 역할 재정립

물론 도전은 명확하다. 미국이 일본의 통합작전사령부(JJOC) 창설에 발맞춰 주일미군사령부(USFJ)를 ‘작전 허브’로 격상시키는 동안, 한미동맹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정해진 운명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미국의 ‘효율성’과 ‘치명성’에 대한 요구는 한국이 동맹 내에서 기술 및 산업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할 기회를 제공한다.

한미동맹은 수사적 변동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 깊은 제도적 뿌리를 가지고 있다. ‘프리덤 실드’와 같은 정례화된 연합훈련은 양국 군의 상호운용성을 최고 수준으로 유지하고 있으며, 한미 핵협의그룹(NCG)은 확장억제 실행력 강화의 핵심축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미국의 핵전력과 한국의 첨단 재래식 전력을 통합 운용하는 ‘재래식-핵 통합(CNI)’ 개념의 공식화는, 한국이 확장억제 기획과 실행에 참여하는 능동적 주체로 변모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굳건한 동맹은 우리가 의존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전략적 자율성을 키워나갈 가장 확실한 기반이다.

새로운 자강: 동맹 기반의 전략적 자율성

진정한 자강은 동맹으로부터의 독립이 아니라, 동맹 내에서 한국을 대체 불가능한 파트너로 만드는 독자적인 핵심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다. 글로벌파이어파워(GFP) 순위와 같은 양적 지표에 기반한 ‘세계 5위 군사력’이라는 수사는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우리의 안보 현실을 외면한 위험한 착시다. GFP 지수는 핵, 사이버 전력, 동맹의 존재 등 전쟁 승패의 핵심 변수를 반영하지 못하는 명백한 한계를 지닌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비대칭성 기반의 한국형 군사혁신(Asymmetric K-RMA)’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 강군’ 건설은 올바른 방향이다. 내년도 국방예산을 7년 만에 최대폭인 8.2% 증액한 약 66조 원으로 편성하고, AI 기반 유・무인 복합전투체계(MUM-T)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것은 고무적이다. 여기에 더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같은 신뢰성 있는 제2격 능력, 압도적인 감시정찰(ISR) 및 지휘통제(C4I) 능력 등 동맹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비대칭 핵심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  

결론: ‘티타늄 동맹’을 향한 길

콴티코 선언은 동맹에 대한 미국의 기대치가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미국은 더 유능하고 책임감 있는 동맹을 원한다. 우리의 길은 동맹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제도적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자강의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동맹에 필수적인 핵심 역량을 제공하는 ‘이중 트랙(dual-track)’ 전략이어야 한다.

이 두 길이 맞물릴 때, 굳건한 ‘철갑(ironclad)’ 동맹은 강하면서도 유연한 ‘티타늄(titanium)’ 동맹으로 진화할 것이다. 콴티코의 도전은 냉엄하지만, 이는 굳건한 한미동맹에 기반한 한미일 안보협력 메커니즘 속에서 더 강한 대한민국을 만들어나갈 새로운 항해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 필자 소개 *

신치범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서, 사단법인 미래학회 기획이사와 미래군사학회 사이버/네트워크 상임이사를 겸하고 있다. 『비대칭성 기반의 한국형 군사혁신』, 『한미일 안보협력 메커니즘 중층적 구조의 기원』 등 저술. 『국방환경과 군사혁신의 미래』 공저. 한미일 안보협력,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RMA), 미래 전쟁과 대한민국의 미래 담론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와 정책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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