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부터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美 압박 카드 잇따라
- 한국 기업, 美 시장서 '불공정 경쟁'…시간은 트럼프 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은 기업의 의약품에 대해 내달부터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지 않은 기업의 의약품에 대해 내달부터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연합

한미 무역협상의 교착 상태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의약품에도 다음달 1일(현지시간)부터 10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해 'K바이오'에 비상이 걸렸다. 더군다나 모든 국가의 의약품에 100% 관세를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유럽연합(EU), 일본 등 이미 무역협정을 타결한 국가에 대해서는 15%의 관세만 매긴다는 방침이다. 한국의 제약업체들이 미국 시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치르게 된 셈이다.

미국은 무역합의 조건으로 천문학적 규모의 달러 현금을 요구하면서 자동차, 의약품, 반도체 등 관세 압박 카드를 쉬지 않고 내미는 탓에 한국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인 모양새다. 한국에는 중국의 희토류처럼 '대항 카드'도 없어 시간은 트럼프 대통령 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관련업계에서는 미국이 다음달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까지 협상을 끌 수 있다며 이마저도 미중 정상회담에 관심도가 밀릴 수 있다고 불안해 하고 있다. 한마디로 무역협정에 최종 서명하기 전까지는 기존의 고관세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기업이 미국에 의약품 제조공장을 건설하고 있지 않다면 10월 1일부터 모든 브랜드 또는 특허 의약품에 대해 10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미 무역협상을 타결한 EU와 일본 등은 예외된다. 

로이터 통신의 지난 26일 보도에 따르면 백악관 관계자는 EU와 일본처럼 무역협상을 타결한 국가에 의약품 관세를 부과할지에 관한 질문에 “무역협정의 일부로서 15% 상한을 준수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EU는 지난달 무역협상 타결 후 최혜국 대우(MFN) 관세와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에 따른 관세를 합산한 관세율이 15%를 초과하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도 의약품에 최혜국 대우를 받기로 했지만 아직 행정명령으로 명문화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무역협상이 타결된 점을 고려해 15%를 적용하겠다는 것이 백악관의 설명이다. 반면 무역협상이 아직 타결되지 않은 한국 등은 당장 100%의 관세율을 적용받을 처지에 놓였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 기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반도체 관세 도입 역시 '초읽기'에 들어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수입 전자기기에 내장된 반도체의 가치에 비례해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노트북 한 대에 들어간 반도체의 가치가 150달러고, 해당 관세율이 25%라면 관세 37.5달러가 추가로 부과될 수 있다.

이 같은 계획이 시행되면 전동 칫솔부터 노트북까지 다양한 전자기기에 반도체 관세가 부과돼 가격이 뛸 수 있다. 한국의 주력 대미 수출 상품인 스마트폰, TV와 냉장고 등 생활가전, 컴퓨터 등에 적용돼 한국의 대미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며, 투자액이 높을수록 관세율이 낮아진다고 강조하고 있다. 일본이 5500억 달러 투자로 15%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점을 들어 한국에도 비슷한 수준의 투자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 7월 말 큰 틀에서 미국과 무역합의에 도달했지만 최종 문안 합의와 서명 절차가 남아 있는 상태다. 아울러 한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대규모 통화 스와프 체결을 요구하고 있지만 미국과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이처럼 한미의 무역협상이 장기 교착 국면에 빠지면서 국내 산업계 전반에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자동차·철강·반도체·제약 등 핵심 수출업종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역협상 타결이 지연되면 될수록 수출 구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은 대미 투자 규모, 국가별 협상력, 정상 간 외교력에 따라 관세율이 크게 달라지는 형태여서 한미 간 무역협상 타결의 ‘허들’을 넘기는 쉽지 않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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