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대미 투자 수익의 90% 차지 고수…협의 교착 상태
- 주한미군 주둔비용과 전략적 유연성 문제도 풍파 예고

한미 무역협정 최종 합의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또다시 '상호관세'를 무기로 한국에 대한 압박에 나섰다. 한국의 대미 투자에 대한 수익 배분 등의 문제를 놓고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무역협정 타결은 장기화 국면에 들어갈 공산이 큰 상태다.
앞서 양국은 지난 7월 30일 새로운 무역협정에 큰 틀에서 합의했고, 지난달 25일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를 거듭 확인했다.
새로운 협정의 골자는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기로 한 25%의 상호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양국은 지난 8일 미국에서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 합동실무대표단, 그리고 미국 상무부 및 무역대표부(USTR) 관계자들이 협정 최종 타결을 위한 실무협의를 벌였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11일(현지시간) 미국과 큰 틀에서 합의한 대로 한국이 수용하거나 관세를 인하 합의 이전 수준으로 내야 한다고 말했다.
러트닉 장관은 이날 미국 CNBC 방송 인터뷰에서 "한국은 이재명 대통령이 워싱턴에 왔을 때 서명하지 않았다. 그가 백악관에 와서 무역에 관해 논의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건 문서에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러트닉 장관은 "나는 그들이 지금 일본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연함은 없다"며 "일본은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그 협정을 수용하거나 관세를 내야 한다. 명확하다. 관세를 내거나 협정을 수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트닉 장관의 언급은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의 구성과 방식, 투자 수익 배분 등을 미국의 요구대로 수용해 무역헙정에 최종 서명하지 않으면 한국에 대한 국가별 관세(상호관세)를 25%로 되돌리겠다는 위협으로 풀이된다.
또한 한국처럼 1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일본과는 이미 서명까지 이뤘기 때문에 한국이 이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최종 타결할 수 없다는 미국 입장을 "유연함은 없다"는 표현으로 확인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러트닉 장관은 일본의 5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금은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송유관 건설 같은 인프라 확충 등 미국이 원하는 대로 쓰일 것이며, 일본이 낸 5500억 달러를 회수할 때까지 수익을 50대 50으로 배분하되 이후에는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미일 협정을 구체적으로 소개했다. 이는 한미 협정도 비슷한 조건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무역협정 최종 서명에 대해 "좋으면 사인해야 하는데, 이익되지 않는 사인을 왜 하나"라며 미국의 현재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대로 미국이 요구하는 대미 투자 패키지 구상은 한국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미국은 이를 받지 않으면 관세를 되돌리겠다는 입장이어서 양국의 밀고 당기기는 상당 기간 이어질 전망이다.
아울러 한국이 부담할 주한미군 주둔비용(방위비 분담금) 문제, 인도태평양 지역 내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차원에서 거론되는 주한미군 감축 문제 등 안보 이슈 역시 협상 과정에서 한미관계에 풍파를 몰고 올 수 있는 요소로 거론된다.
로버트 랩슨 전 주한 미국대사대리는 "한미 안보 분야 이슈는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다"면서 "양국 관계에 매우 도전적인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내다봤다.
이재명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한미 간의 통상협상과 외교안보 분야 협상 과제들을 열거하면서 "내가 작은 고개 하나 넘었다고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앞으로도 넘어가야 될 고개가 퇴임하는 그 순간까지 수없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협상이 '산 넘어 산'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