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본토 방어'로 전략 대전환…핵우산 신뢰 흔들려
- "비핵화 정책 실패 인정하고 현실적 대응 서둘러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톈안먼 망루에 선 장면은 국제사회에 ‘북중러 핵 동맹’의 실체를 각인시켰다.
그럼에도 미국 국방부가 새 국가방위전략(NDS) 초안에서 중국·러시아 견제보다 ‘본토 방어’를 최우선 과제로 삼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동맹국들에 충격파가 번지고 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이를 두고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립주의적 대전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며 ‘핵자강론’ 논의가 다시 불붙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에게 보고된 NDS 초안은 △본토 치안 지원 △서반구 마약 차단 △국경 통제 강화 등을 전략 최우선 과제로 올려놨다. 이는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의 NDS가 ‘중국·러시아의 도전’을 최대 위협으로 규정했던 것과는 정반대 흐름이다. 백악관과 국방부는 논평을 거부했다.
전략은 아직 초안 단계지만, 이미 변화 조짐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미군은 불법이민 시위 진압에 수천 명의 주방위군을 투입했고, 카리브해에는 ‘마약 차단’을 명분으로 항모전단과 F-35 전력을 전개했다. 베네수엘라 갱단 소탕작전까지 벌였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나르코 테러 응징”이라며 치켜세웠다.
문제는 그만큼 유럽·아시아 전선이 비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정책 라인의 검토에서는 유럽 주둔 미군 일부 철수, 발트해 보안 예산 삭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아시아 역시 일본·한국 방위 공약의 구체성이 빠져 있어 동맹국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중러 핵 동맹은 결속되는 양상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행사에서 66년 만에 이뤄진 북중러 정상회동에 동참한 데 이어 같은 날 북러 정상회담, 4일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 중러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은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특히 과거 방중 회담에서 빠지지 않던 ‘한반도 비핵화’ 언급이 이번에는 사라졌다. 김정은 위원장과 시진핑 주석의 회담, 푸틴 대통령과의 만남 모두 비핵화 발언이 빠지면서 북한의 핵보유 현실을 중러가 묵인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북중러 정상의 톈안먼 동반 등장 자체가 3개 핵보유국의 연대”라며 북한의 핵보유가 기정사실화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지적한다.
시드 사일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고문은 “김정은은 외교 지형이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확신하며, 한 국가씩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엘런 김 한미경제연구소(KEI) 학술국장은 “김정은은 중러 정상 옆에 서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연출했다”며 “이는 북한이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라고 지적했다.
중러의 묵인과 미국의 방관 속에서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는 북한의 제1 표적은 한국으로 비핵화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현실적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을 통해 우라늄 농축·재처리 제한을 풀고, 핵추진 잠수함 보유 등 자체적 핵 잠재력을 키울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핵자강론'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미국이 본토 중심 전략을 강화하면, 한국은 더 이상 핵우산을 그대로 신뢰하기 어렵다”며 “독자 핵무장 논의가 불가피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 전략 변화를 일시적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위험하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속에 안보 공백은 현실”이라고 경고했다.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도 “북한 비핵화 협상은 사실상 종언을 맞았다”며 “이재명 정부는 잠재적 핵능력 확보에 나서야 할 때”라고 했다. 그는 “미국 핵우산만으로는 불완전하다. 한국의 잠재적 핵 역량을 보완해야 핵 균형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북중러 연대가 한동안 이어지겠지만 본질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지적도 있다.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중국은 미국과의 전면 대결을 피하려 북한을 지렛대로만 활용할 뿐, 관계 악화를 감수하지는 않는다"며 "푸틴과 김정은 역시 트럼프 변수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동맹의 결속보다 미중, 미러 관계 변화가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것이며, 미북 정상회담 같은 새로운 국면 전환 가능성도 열려 있다"고 분석했다.
/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