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만남 자체가 목적이 되는 회담은 더 이상 의미 없어” 냉소
- 외교 이벤트 안달 난 트럼프 선제 조치 보며 대응 나설 가능성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올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나고 싶다”고 밝히면서 한반도 정세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을 추진하자고 권유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슬기로운 제안”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워싱턴과 서울이 한 목소리로 평양을 향해 구애를 보내는 모습이지만 김정은 정권의 속내는 단순하지 않다. 북한은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세 차례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지만 체제 보장이나 제재 완화라는 실질적 결실을 얻지 못했다. 이 때문에 평양 내부에는 “만남 자체가 목적이 되는 회담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냉소가 자리잡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7월 두 차례 담화를 통해 “지금은 2018년이나 2019년이 아니다”라고 못박았다. 이는 싱가포르·하노이 회담 시절의 기대와 낙관은 끝났음을 의미한다.

미국이 과거의 틀에 갇혀 김정은 위원장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내려 한다면 그 시도는 “미국의 희망”으로만 남을 것이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실제 지난 6월 미국이 뉴욕 외교 채널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에게 친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북한 외교관들이 이를 거부한 사실은 북한이 협상 주도권을 쥐고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다.

집권 13년 차에 접어들며 권력 안정을 다진 김정은 정권은 독자 외교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북러 항공편 재개, 국제기구 가입 확대, 금강산 세계유산 등재 등은 모두 '고립된 북한'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행보다. 현재 북한은 159개국과 수교하며 러시아·중국을 넘어 다양한 국가와의 관계 개선을 모색 중이다.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 개장을 통해 외국인 유치 가능성도 열어뒀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해소되지 않는 한 이 같은 외연 확대에도 구조적 한계가 따른다. 결국 경제적 활로는 한국, 일본, 그리고 궁극적으로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에서 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 정부의 대화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후 대북 방송 중단, 대북전단 제어 등 선제적 조치를 통해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려 애쓰고 있다. 북한은 남북대화 자체를 부정하며 “한국은 우리의 외교 상대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북한 특유의 통미봉남 전략이 다시 가동되는 대목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3년 반 남았다. 개헌을 통한 3연임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정권교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김정은을 만나고 싶다"고 말한 것도 시간 때문일 것이다.

2019년 하노이에서는 김정은 위원장이 시간을 얘기했다면 2025년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응대하기 보다 안달이 난 트럼프 대통령의 선제 조치를 지켜보며 다음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이 가장 중시하는 점은 핵보유국의 인정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체제 보장의 최종 안전판으로 간주한다. 최근 이란 핵시설을 겨냥한 미·이스라엘의 ‘한밤 중의 망치’ 작전은 북한이 핵보유 의지를 더욱 굳히게 했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김정은 위원장이 협상에 응하더라도 비핵화 협상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한반도 정세를 좌우할 변수는 세 가지다. 첫째,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중 갈등, 중동 분쟁 등 난제 속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어디까지 우선순위에 두느냐 여부다. 둘째, 체제 생존과 경제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북한이 협상 시점을 어떻게 계산하느냐다. 셋째, 직접 당사자인 한국이 북미 협상에서 어떤 방식으로 발언권을 확보하느냐가 관건이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북미 정상회담은 더 이상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실질적 제재 완화와 체제 보장이라는 보상이 없는 만남은 의미가 없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과의 만남은 정치적 이벤트이자 외교적 업적이 될 수 있다. 이 같은 불일치가 당분간 한반도 외교의 긴장과 교착을 지속시키는 핵심 요인이 될 전망이다./김명성 기자 kms@sa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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