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은, 경제 지향적 지도자…제재, 코로나로 군비강화 선회"
-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고려의 저울질 따라 대화 가능성 좌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8년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표명한 가운데, 미국이 북한에 경제적 유인책을 제시하고 비핵화가 아닌 핵동결 또는 핵군축을 반대급부로 제시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탈리아 국제정치연구소(ISPI)의 연구원 루도비카 파바로토는 해외 북한 분석 전문매체 38노스에 투고한 기고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김씨 일가 3대 지도자들이 북한 개발의 최우선 과제로 여긴 것이 서로 달랐다고 평가했다. 김일성 주석은 재래식 전력 강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무력 개발이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제일 관심사는 경제였다.

실제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4월, 경제 회복을 노동당의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2018년까지 그는 많은 학자들이 '개방 없는 개혁'이라고 묘사하는 경제 정책 의제를 실행했는데, 마치 1980년대 초 중국의 개혁 정책과도 비슷했다.

구체적으로 경제 관련 예산의 대폭 증가, 김정일 위원장 시절 내각총리를 지냈던 경제 전문가 박봉주를 내각총리로 다시 중용,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SERMS) 운용 등이 있다. SERMS를 통해 북한 기업들은 노동당의 감독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더 큰 자율성과 유연성을 부여받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김정일 위원장에 비해 더 과감하게 시장경제체제를 수용한 지도자로 평가된다.

이러한 경제 정책은 가시적 성과를 가져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6년 북한은 17년 만에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달성했으며, 국내총생산(GDP)은 3.9% 증가했다. 무역 규모는 6년 동안 27억 달러 이상 증가했다. 서울대학교가 2012~2020년 사이에 북한을 떠난 탈북민 1137명을 접견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북한 주민의 생활 수준과 소비 여건도 향상됐다.

하지만 북한의 마지막 핵실험이 있던 2017년 이후 강화된 대북제재, 그리고 코로나19 팬데믹은 북한 경제에 상당한 타격을 줬다. 대북제재로 외국인의 대북 투자는 차단됐고, 북한의 무역도 제한돼 2020년 무역액은 2017년 대비 46억4000만 달러 감소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김정은 위원장은 자력갱생 원칙으로 복귀를 선언했다. 그리고 이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주요 상품의 수입이 급감하자 국경 봉쇄 첫 해인 2020년 북한 GDP는 전해 대비 4.5% 감소했다. 이는 경제 개혁의 성공은 경제적 기회, 그리고 이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 요인에 직결돼 있음을 입증한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중국과 러시아를 위주로 한 선택적 교류, 엄격한 내부 통제, 군비 지출 우선 등의 정책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의 과거 행보를 살펴보면 장차 경제 발전에 더 유리한 여건이 조성될 경우 다시 민간경제 부문을 중시하는 정책으로 신속하게 전환할 수 있다고 파바로토는 보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집권 초기부터 '경제 지향적'인 지도자였다. 또한 2018년 핵개발의 특정 목표가 달성되자 그는 경제에만 집중했다. 2017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엔 총회 '화염과 분노' 연설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및 패럴림픽 참가와 본격적인 남북회담 시작을 결정하기까지에 불과 5개월이 걸렸다.

이는 김정은 위원장이 상황 변화에 따라 정책 방향을 신속하게 전환할 수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타국과의 협상을 통해 국익을 증진시킬 가능성이 보이면 외교와 경제를 우선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이후 북한과의 대화 재개 의지를 거듭 표명해 왔다. 이에 지난 7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한반도 비핵화에만 초점을 맞춘 외교 재개 의사를 일축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미국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새로운 대화 방식을 제시할 때에만 대화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를 모두 고려하면 미국은 긴장 완화와 동시에 대북 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 북한과 안정적인 공존을 구축하는 전략을 채택해야 한다고 파바로토는 밝혔다. 우선 김정은 위원장이 선호하면서도 북한 체제를 해치지 않을 경제적 유인책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파바로토는 보았다. 이는 북한과의 지속적인 교류 토대가 될 수 있다.

또한 미국은 유엔 대북제재의 점진적 해제를 제안할 수도 있다. 다만 그 반대급부로 북한은 미국 본토 타격 가능 ICBM 발사를 줄이거나 멈추는 등 핵동결을 의미하는 상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미국은 자국의 대북 금융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 외국인 직접투자(FDI)를 가능케 하는 안을 제안할 수도 있다. 단, FDI가 농업, 의료, 경공업 등 지역 주민의 삶을 개선하는 분야에 집중돼야 한다.

이러한 분야들에 국제 개발 프로젝트를 실시, 북한의 산업 역량을 강화한다는 제안도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입장에서도 경제 개발을 중국과 러시아, 불법 행위(사이버전 등)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각화 및 안정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만 집착하지 않고, 김정은 위원장이 원하는 경제적 유인책을 제시한다면 향후 북미간 대화 재개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파바로토는 보았다. 물론 이는 북한의 비핵화를 당장 이룰 수는 없지만, 양국간에 구체적인 행동을 서로 보여줌으로서 신뢰관계를 구축한다는 이점은 있다.

결국 북한이 대화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고려 사항 간의 저울질에 따라 향후 북미 대화의 시기와 가능성이 좌우되는 셈이라는 것이 파바로토의 결론이었다./이동훈 기자 ldh@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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