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한용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대우교수/한국핵안보전략포럼 편집기획부위원장

오늘의 한국 안보 환경은 냉전 종식 이후 가장 복잡하고 불확실하다.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미·중 전략경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야기한 군사·에너지·공급망 변동, 그리고 중동의 핵 불확실성이 겹치며 전통적인 억지 체계가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은 더 이상 주변부 담론이 아니다. 다만 핵무장은 단순한 기술 개발 과제가 아니라 정치적 결단과 실행 능력의 문제이며, 그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는 국가 리더십이다.

최근 필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이 세계 정치 질서를 재편하는 방식을 주목하고 있다. 그의 저서『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 제시된 11가지 원칙 가운데 “크게 생각하라(Think Big)”, “지렛대를 사용하고 언론을 활용하라(Use the Leverage and Media)”, “신념을 위해 끝까지 저항하라(Stand Up for Your Beliefs)”는 한국의 핵개발 리더십을 설계하는 데도 깊은 함의를 준다.

흥미롭게도, 이 세 가지 원칙은 6·25전쟁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 전략과 놀랍도록 맞아떨어진다. 특히 정전협정과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한미 간 힘의 비대칭을 역으로 활용하는 지렛대 외교를 구사했다. 그는 휴전 반대라는 강경 입장을 고수하며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였고, 국내외 언론을 적극 활용해 한국의 입장을 국제 여론의 전면에 부각시켰다. 그 결과 대한민국의 생존과 안보를 제도적으로 담보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성사시켰다.

크게 생각하라: 지렛대와 언론, 그리고 신념의 결합

당시 미국과 유엔은 전쟁 종결을 위해 강력한 휴전 압력을 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방위조약 없이는 휴전 수용 불가”라는 입장을 끝까지 견지했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장기적 안보 보장을 위한 최소 조건을 명확히 한 전략적 비전 선언이었다. 그는 휴전이 초래할 군사·정치적 공백을 예견했고, 이를 메울 유일한 장치가 미국과의 제도적 동맹임을 꿰뚫고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이라는 불리한 국제 흐름을 역으로 활용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정전협정 협상 구조를 한국의 협상 지렛대로 전환해, 한국을 배제하거나 소극적으로 다루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는 트루먼 대통령에게 상호방위조약 체결 없이는 한국 군대와 국민들에게 휴전 수용을 설득할 수 없다고 통보했고, 한미 군사동맹, 전후 경제 지원, 한국군 20개 사단 증강, 미 해·공군의 한국 주둔 등을 요구했다.

1952년 12월 3일,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 방한 시에도 이승만은 무력통일의 당위성, 일본 수준의 군사력 확보, 조속한 방위조약 체결을 거듭 촉구했다. 1953년 4월에는 “중공군의 한반도 잔류를 허용하는 휴전이라면, 한국군을 유엔 지휘권에서 철수시키고 단독 북진하겠다”는 강경 메시지와 함께 “미국이 휴전을 하려면 중공군과 유엔군이 동시에 철수하고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에 완충지대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과 행동으로 만든 협상력: ‘빅딜’로 얻어낸 한미상호방위조약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5월 30일 아이젠하워에게 보낸 서한과 6월 4일 NBC 방송 인터뷰에서 “휴전은 한국에 대한 사형선고”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한국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정치·언론 결합 전략이었다.

결정적 전환점은 1953년 6월 18일의 반공포로 2만7천여 명 전격 석방이었다. 이는 휴전협정의 전제를 뒤흔드는 조치로, 미국과 유엔군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그러나 이승만은 이를 단순한 도발이 아닌 고도의 협상 전술로 활용했다. 반공포로 석방은 한국이 휴전의 수동적 수용자가 아님을 보여주었고, 미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협상 필수 변수로 재인식하게 만들었다. 이는 트럼프의 ‘지렛대 활용’ 원칙에 부합하는 사례이자,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신념을 관철한 결단이었다.

미국은 결국 이승만의 강경 노선을 무시할 수 없었고, 로버트슨 국무차관보를 특사로 파견해 집중 협상에 나섰다. 협상에서 이승만은 조약 체결이라는 추상적 내용 대신, 한국군 20개 사단 증강, 10억 달러의 군사·경제 원조, 그리고 이 조약에 따라 ‘한국과 그 부근에(in and around Korea)’ 미군 주둔 보장 등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조건으로 체결했다. 이는 감정적 반발이 아닌, 철저히 계산된 ‘빅딜’ 제안이었다. 그 결과 1953년 10월 1일, 대한민국의 안보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되었다.

오늘의 교훈: 21세기형 전략 빅딜

이 사례는 오늘날 한국이 직면한 핵무장 논의에도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미국과 핵 관련 ‘빅딜’을 성사시키려면 단순한 기술적 가능성을 넘어, 국가 생존을 담보할 제도적·전략적 조건을 명확히 설정하고 이를 관철할 수 있는 외교·정치 역량이 필요하다.

즉, 한미 간 핵공유, 공동개발, 확장억지 강화 같은 현실적 옵션들을 병행 준비하면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 착수 조건과 시점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동시에 핵무장을 ‘전쟁 위험’이 아니라 ‘자율적 억지력’ 강화와 ‘협상력 복원’의 프레임으로 재정의하고, 미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의 대안까지 분명히 해야 한다.

이승만이 휴전이라는 불리한 국제 환경 속에서 제도적 동맹을 확보했듯, 오늘날의 한국 지도자 역시 복잡한 국제 질서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과 전략적 빅딜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해치는 자만이 나의 원수가 아니라,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포기하는 자 또한 나의 원수이다. 내 마음속에, 나라를 구하는 것을 기피할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 마음 또한 나의 원수이다.”

이 말은 오늘날 핵무장을 포함한 국가 생존 전략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위협 앞에서 주저하거나 스스로 가능성을 포기하는 순간, 이미 패배가 시작된다.

2025년 핵질서의 전환기에서, 이승만이 보여준 신념과 결단은 독자적 핵무장을 포함한 장기 생존 전략을 현실화하는 데 가장 강력하고 실현 가능한 길임을 시사한다.

* 저자 소개 *

정한용 대전대학교 군사학과 대우교수는 전 맹호부대 26여단장(대령) 출신으로, 충남대에서 군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20년 넘게 드골 대통령의 전략과 리더십을 연구하며, 이를 바탕으로 위대한 대한민국의 미래에 드골식 전략과 리더십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북핵 시대 남북 핵균형을 통한 군축과 비핵화 가능성을 믿으며, 한국의 핵무장 추진에 헌신하고 있다. 

지금까지 핵안보와 리더십 분야에서 3권의 저서와 49편의 글을 샌드타임즈 및 월간군사저널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하고 있다. 

현재 한국핵안보전략포럼 운영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저작권자 © 샌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