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여정, 훈련 실시할 경우 대화 나서지 않겠단 메시지
- 과거 훈련 중단…대화 끌어냈지만 北 '비핵화'엔 실패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연합군사훈련 '을지 프리덤 실드(UFS)' 훈련.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이 훈련 내용의 조정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의하겠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정동영 장관의 발언 배경으로는 같은 날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의 담화가 지목된다.
김여정 부부장은 조선중앙통신 담화를 통해 이재명 정부의 대북 정책과 관련해 처음으로 입장을 내고 “또 다시 우리의 남쪽 국경 너머에서는 침략적 성격의 대규모 합동군사연습의 연속적인 강행으로 초연이 걷힐 날이 없을 것”이라는 말로 한미연합군사훈련을 비난했다. 이 같은 비난의 이면에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할 경우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북한에게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상당한 부담이자 압박이다. 훈련이 시작되면 북한군에게는 전시 상황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선포된다. 특히 항공모함, 전략폭격기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준다. 북한 내부에서는 한미연합군사훈련 때문에 기름이나 물자를 군사 대응에 돌려 인민 경제가 더 어려워진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에 국방부는 UFS 훈련을 분산해 실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UFS 훈련에는 통상 30~40건의 야외기동훈련(FTX)이 포함돼 있다. 올해는 이 가운데 10여건이 9월로 연기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원인은 '폭염'이지만 숨겨진 원인은 북한의 '비난'인 것으로 보인다.
합동참모본부(합참) 관계자는 "합참과 한미연합군사령부(한미연합사)는 한미연합군사훈련 계획을 최종 발표하기 전까지는 항상 조율한다"며 "최종 발표하기 전까지는 계속 협의가 진행 중인 것"이라고 밝혔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문자 그대로 한국군과 미군이 연합으로 벌이는 군사훈련이다. 양국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기초해 안보동맹을 맺고 있다. 따라서 양국 군대는 한반도 유사시 한미연합사의 지휘하에 한미연합군으로 작전한다. 이를 위해 평시에 훈련을 통해 작전 능력을 유지ㆍ강화하고, 대북 억제력을 확보해야 한다.
한반도 무력 통일의 꿈이 미군 개입으로 저지된 경험을 가진 북한은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정당성을 절대 인정치 않고 “핵전쟁 연습”, “북침 연습” 등으로 줄곧 비난해 왔다.
과거 역사를 보면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을 통해 북한을 대화로 끌어낸 사례가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중단이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처음 중단된 것은 1990년이다. 국제적인 탈냉전 분위기에 힘입어 사상 첫 남북고위급회담 일정이 그해 9월로 잡히자 한국과 미국은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8월로 예정됐던 을지포커스렌즈(UFL) 연습을 중단했다.
1992년 10월까지 8차에 걸쳐 이어진 남북고위급 회담 중 1991년 12월 제5차 회담에서는 ‘남북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다. 같은 시기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도 서명됐다. 이어 1992년 1월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하고, 핵 사찰을 받았다. 또다른 한미연합군사훈련인 팀 스피리트 훈련도 이 해에 중단됐다.
1994년 3월 3일 한국 국방부는 북핵 문제의 성공적인 해결과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해 팀 스피리트 훈련의 조건부 중단을 공표했고, 팀 스피리트 훈련은 1993년을 마지막으로 다시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21일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체결했다. 북한의 핵 개발 동결 및 핵 사찰 수용의 반대 급부로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 제공 및 체제 안전 보장을 약속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2003년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NPT에서도 완전 탈퇴했다. 북한을 대화로 이끌어내 북핵 문제 해결을 꾀했던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이다.
팀 스피리트 훈련이 중지된 이후 한미연합군사훈련은 명칭과 체계를 달리해 계속 진행됐다. 그리고 북한은 2006년 첫 핵실험을 실시한 데 이어 2017년까지 6번의 핵실험을 벌였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뒤 북한은 매년 한미연합군사훈련 기간마다 미사일 발사 등 무력 도발을 진행했다.
남북 또는 북미 관계 개선을 꾀할 때마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이 중단되는 사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1기 집권기에도 반복됐다.
2018년 첫 북미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따라 그해 8월 예정이었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중단됐다. 이 때 남북 및 북미 간의 대화 분위기도 크게 조성됐다. 2018년에는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열렸고, 2019년 2월에는 두 번째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렸다.
하지만 북미 간 협상이 결렬되면서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을 계속했고, 결국 같은 해 10월 19일 화성 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발사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은 ‘핵무력 완성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 때도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은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기는 했지만 북한의 비핵화는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으로 조성된 대화 분위기를 북한 핵 능력을 고도화할 시간적 기회로만 이용당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리고 현재 북한 지도부는 비핵화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반면 한미 양국의 목표는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다.
그동안의 사례를 감안하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은 대화를 끌어내는 촉매제 역할을 했지만 결국엔 북한의 핵능력을 고도화해 주는 시간 벌기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조정이 이뤄진다고 해도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관측이 많은 상태다./이동훈 기자 ldh@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