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국, 새로운 유라시아 안보체제 구축의 토대 마련할 것”
- "北, 러의 동북아 방위 보루 및 패권 경쟁 전위대 될 수도"

러시아가 중국을 제치고 북한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이 돼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심지어 러시아는 북한을 벨라루스와 유사한 동양의 전략적 보루로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다니엘 스나이더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교수는 지난 29일 해외 북한 전문매체 '38 노스'를 통해 발표한 기고문에서 이 같이 밝혔다.
최근 북러 관계는 급속도로 가까워져 가고 있다. 이달 중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북한의 원산 갈마해안관광지구(원산지구)를 방문해 화려한 의전을 받으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회담을 벌였다. 양국간에는 철도, 도로, 항공 노선도 늘어났다. 러시아 관광객들이 원산지구를 방문하고, 북한 인공지능(AI) 연구자들도 러시아에 파견됐다.
이런 와중에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발언은 더욱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그는 지난 12일 원산지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북러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북러조약) 체결로 북러는 동맹국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지리적 근접성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도태평양에서의 미군 대응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 일치에 기반한 관계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러시아는 북한을 방위하고 역외 국가들의 패권적 야망에 공동으로 저항할 준비가 돼 있다”고도 밝혔다.
북한은 러우전을 벌이는 러시아를 위해 대량의 병력과 무기를 지원해 줬다. 하지만 이것만이 양국 관계의 전부가 아니다. 러시아는 북한에 대량의 석유와 식량을 보냈다. 북한은 대규모의 노동자를 러시아로 보내고, 이들이 받는 임금을 착취해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이 모두 유엔 대북제재 위반이다.
심지어 러시아의 정책을 보면 이것보다 더 큰 결과를 불러올 수 있는 변화도 있다. 이제는 러시아가 북한 핵개발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중국조차도 꺼리던 부분이다. 이 점은 라브로프 외무장관의 지난 12일 원산지구 기자회견 발언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우리는 북한의 (핵개발) 행위를 존중하며, 그들이 핵개발을 하는 이유를 이해한다”고 밝혔다. 물론 러시아가 북한에 핵기술까지 이전했다는 징후는 아직 없다. 그러나 북한의 ‘민간위성 개발 및 발사’에 필요한 기술 지원의 길은 열어놓았다. 이 기술들은 핵 탑재 탄도미사일 개발에 악용될 수 있다.
더욱 중요한 점은 러시아가 통일 및 남북대화 포기라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정책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원산지구를 다녀간 후 러시아의 한반도 연구가 게오르기 톨로라야 박사는 “김정은 위원장은 ‘적대적 2국가론’을 통해 한국 주도의 북한 흡수 통일 구상을 거부했다. 러시아는 이 같은 주장이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북러 관계는 새로운 유라시아 안보체제 구축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라고 평했다.
또한 러시아 전략가들은 이제 북한을 러시아의 오랜 군사·정치 동맹국인 벨라루스와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고 스나이더 교수는 지적했다. 즉, 러시아가 주도하는 반서방 안보 블록의 동쪽에 위치한 전략적 보루로 여기는 것이다.
벨라루스는 인종과 문화 면에서 러시아와 유사점이 많은 일종의 형제국이다. 또한 러시아와 폴란드 사이의 중간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유사시 서유럽의 러시아 침공을 막아 줄 방패의 위치인 것이다. 이 때문에 양국은 소련 붕괴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은 1996년에 국가연합체제를 수립하고, 2021년에는 양국간 합병에도 합의하는 등 고도의 동맹체제를 과시하고 있다.
북한이 한국과 통일되지 않고 계속 러시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경우 북한 역시 한일과 러시아 간 중간지대라는 지정학적 입지상 러시아의 동아시아 방위 보루로 여겨질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이후 북한은 미국과 한국에 대해 계속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의 남북대화 시도에는 강한 거부 의사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러시아와 중국이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지원을 해주려고 경쟁하고 있으며, 이 경쟁에서 러시아가 이기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군사적 지원 부분에서 러시아가 중국을 월등히 앞서기 때문이다. 미국 전쟁연구소(ISW)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그 이유는 러시아에 비해 중국이 한반도 안정 유지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아르티옴 루킨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교 교수 역시 지난 17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학술대회에서 “중국은 평양에 대규모 군사지원을 제공할 이유가 거의 없다. 그럼으로써 미국, 한국, 일본의 반감을 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북한에 대한 중국의 관심이 줄어들고 있으며, 심지어 한국을 선택해 북한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주석보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더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했다.
물론 북러 동맹의 미래를 어둡게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학교 교수는 최근 포린 어페어스지를 통해 “러우전이 종결되면 북러 양국간 무역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북한은 미국이나 한국 등과도 관계 개선을 모색할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가 김정은 위원장의 ‘적대적 2국가론’을 수용하고, 한반도 비핵화 지지를 철회한 것은 향후 북러 동맹의 강화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스나이더 교수는 “북러 동맹은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설 현실적 대안을 얻기 위한 초석이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북한이 러시아의 세계 패권 전쟁의 전위대가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이동훈 기자 ldh@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