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협상 초점 ‘핵보유국간 관계 정상화’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
- 트럼프에 '맞춤형 대화' 신호 보내며 대화 주도권 쥐려는 정황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9일 담화를 통해 “비핵화를 내건 조미(북미) 접촉은 미국의 희망일 뿐”이라고 일축하며, 북한을 '불가역적 핵보유국'으로 재차 선언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언급하며, 기존의 비핵화 중심 협상 대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북미 협상 구도를 제안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 대외 선전매체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이날 담화에서 김여정 부부장은 “그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은 2025년”이라며 2018~2019년 북미 정상회담 시기의 ‘비핵화 프레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 국가 수반과 현 미국 대통령(트럼프) 사이의 개인적 관계는 나쁘지 않다”고 언급하며 여지를 남겼지만, 실질적인 협상의 초점은 ‘핵보유국 간 관계 정상화’로 옮겨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불가역적 핵보유국이며, 이 지위는 최고 법으로 고착되었다”고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유세 등에서 “북한은 핵보유국이며, 김정은과 좋은 관계를 바탕으로 다시 협상할 수 있다”고 밝힌 데 대한 사실상 화답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메시지는 이중적이다. 같은 날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미국은 창피와 치욕을 느껴야 한다”며 서방의 대러 제재를 강하게 비난하고 반미 정서를 부추겼다. 반면 대외용 채널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문은 열려 있다”는 식의 유화적 시그널을 보냈다. 김여정의 이번 담화는 대내적으로는 내부 결속, 대외적으로는 협상 여지라는 ‘북한식 이중 전략’의 전형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배경에는 북중러 협력 심화로 자신들의 협상력이 유리해졌다는 판단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러 밀착과 중국의 대북 경제 지원 확대 등으로 북한은 더 이상 미국의 조건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배짱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백악관은 여전히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대북 정책의 공식 입장으로 유지하고 있지만, 대북 성과가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 유화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은 이를 기회로 활용해 '트럼프 카드'를 조기에 띄우며 대화 주도권을 쥐려는 정황이 뚜렷하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북한은 더 이상 비핵화를 전제로 한 협상에는 응할 생각이 없지만,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대화에만 나오겠다는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라며 "협상의 성격과 표현을 두고 북미 간 치열한 기싸움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은 이날 김여정 부부장이 북미 정상 관계가 나쁘지 않다면서도 비핵화 협상엔 선을 긋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한 것과 관련해 "한미는 향후 북미 대화를 포함해 대북정책 전반에 관해 긴밀한 소통과 공조를 지속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