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 시어터’ 구상의 그늘, 한국의 전략적 자율성은 어디에 있는가? -

신치범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지난 7월 11일 서울에서 열린 제22차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의 공식 성명은 대북 억제와 공조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행간에 숨은 진짜 의제는 댄 케인 미 합참의장의 발언에서 드러났다. 그는 “북한과 중국은 전례 없는 군사력 증강을 감행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3국 협력을 통한 “억지력의 재건”을 강조했다. 이는 한미일 협력이 단순한 대북 연대를 넘어, 대중국 견제를 포함하는 더 큰 전략적 틀로 진화하고 있음을 명백히 한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의 중심에는 일본이 제안한 ‘원 시어터(One Theater)’ 구상이 있다. 지난 3월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이 미국에 제안한 이 구상은 동중국해, 남중국해, 한반도를 하나의 통합된 작전 공간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며, 공식 명칭은 아니다. 일본은 이를 통해 자위대의 작전 반경을 대만과 한반도 주변까지 확대하고, 역내 안보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주변국의 반응이다. 필리핀은 이 구상에 일정 부분 호응하면서도, 자국의 작전 계획에 반영할 통합 전구의 범위에서 ‘한반도는 제외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이는 ‘원 시어터’가 일방적 지침이 아닌, 참여국의 국익에 따라 조건 설정과 협상이 가능한 유동적 개념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선례다.

반면, 한국은 이 흐름 속에서 전략적 변방으로 전락할 위험에 처해 있다. ‘원 시어터’ 구상은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의 개입 명분을 제공할 수 있으며, 이는 한국 사회에서 극히 민감한 사안이다.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결합된 자위대의 한반도 진입 가능성은 단순 군사 협력의 문제를 넘어, 국민 정체성과 안보 주권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 실제로 2015년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사전 협의 없는 자위대 진입’ 가능성에 대한 반발이 거세게 일어난 바 있다.

더 큰 문제는 미일 동맹의 지휘통제(C2) 체계가 현대화되면서 역내 분쟁 시 일본에 위치한 미일 C2 허브가 전체 작전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구도에서 한미연합사는 한반도 방어라는 개별 임무를 수행하는 하위 단위로 기능하며, 상위 전략 결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단순한 협력 참여를 넘어, 우리 중심의 전략 어젠다를 설정해야 할 때다. 필리핀의 사례처럼, 우리 역시 대만 유사시 자동 개입 문제, 자위대의 작전 권한 등에 대해 분명한 ‘레드라인’과 조건부 협력 원칙을 세워야 한다. 수동적 참여자가 아닌, 협력의 방향과 구조를 설계하는 주체로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한 선결 과제는 적의 전략적 급소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비대칭 역량의 확보다. 전작권 전환 이후 미래연합사 체계의 실질적 지휘권 확보, 독자적 정보·감시·정찰(ISR) 자산에 기반한 한국형 다영역작전(K-MDO)의 조기 구축, 그리고 사이버·우주 영역의 기술 자립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역량 없는 자율성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

한미일 안보 협력은 이제 대중국 전략 통합이라는 복합적 틀로 진화하고 있다. 이 구조 속에서 타자의 전략 언어에 종속되지 않고, 우리 스스로 전략을 정의하고 주도해 나가는 ‘전략적 중견국/강대국’으로서의 입지를 다져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안보 주권이며,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실질적으로 책임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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