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하지 않으면 다시 노예로"…6.25 北의 집단 트라우마 자극
- 러시아 눈치 살피며 온건한 美 비판… 국제외교 ‘줄타기’ 여전

한국전쟁 발발 75주년인 25일 북한은 다시 한번 ‘힘이 곧 생존’이라는 메시지를 꺼내 들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1면 기사를 통해 “우리가 믿을 것은 오직 자기 힘”이라며 전통의 자력갱생 노선을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수차례 강조해온 ‘강해지고 또 강해져야 한다’는 구호가 신문 메인 기사 제목으로 등장했다.
북한이 최근 중동 사태, 특히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보며 이 구호를 더욱 절실히 되새기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해지지 않으면, 스스로를 지킬 수 없다는 교훈을 다시금 내부 결속용 선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노동신문은 이날 1면 기사에서 “만약 우리가 그때 지금처럼 강했더라면 침략자들이 감히 전쟁의 불을 지를 수 있었겠는가”라며 75년 전의 한국전쟁을 반복해 언급했다. 북한은 자신들이 도발한 1950년 6.25 한국전쟁을 “미제의 침략전쟁”으로 규정하고 1953년 7.27 휴전을 ‘전승(戰勝)’으로 포장한다.
신문은 이어 “세월이 흐를수록 적대세력의 도발은 더 노골적이며 교활해졌다. 강해지지 않으면 다시 피바람이 분다”는 식의 메시지를 반복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이 내부 경제난과 주민 불만을 통제하기 위해 활용하는 전통적 방식으로 본다.
한 대북 소식통은 “대내적으로 경제 성과가 부족할 때마다 북한은 전통적 적대국인 미국을 상정해 긴장감을 끌어올린다”며 “이번에도 ‘6·25 트라우마’를 다시 꺼내 주민의 공포심을 자극하면서 체제 결속을 다지는 효과를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의 대외 메시지다. 최근 이스라엘의 이란 핵시설 폭격 이후 북한은 전통적으로 ‘중동 반미 연대’를 외쳤던 관례와 달리 이번엔 이란에 대한 직접적 지지는 피했다. 대신 ‘미국이 이란의 주권을 침해했다’는 원론적 비난만 내놓았다.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24일(현지시각) “북한이 이란과 이스라엘의 충돌을 러시아와 조율한 뒤 신중한 수위로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북한 외무성의 첫 공식 담화는 이스라엘 공격 후 6일이나 지나서 나왔고, 이는 김정은이 쇼이구 러시아 국가안보회의 서기와 평양에서 회담한 직후였다.
북한 외무성은 담화문에서 이스라엘을 “중동 평화의 암적 존재”라고 독설했지만 미국 비판은 과거에 비해 수위가 낮았다. 이란에 대한 ‘전폭 지지’ 같은 표현도 사라졌다. 대신 “국제법 위반” 정도로 비판을 자제했다.
북한이 이란에 대해 말을 아낀 것은 러시아와의 전략적 이해관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러시아는 최근 중동 분쟁에서 이란과의 밀착보다는 에너지·군사 패권 유지를 우선시한다. 북한도 러시아를 ‘최우선 후견국’으로 삼고 군사·경제 협력을 확대하고 있는 만큼 푸틴의 입장에 발맞춘 셈이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북한은 지금 ‘핵 무장’과 ‘러시아 밀착’을 양대 축으로 삼고 있다”며 “이란처럼 국제 제재로 고립된 국가에 공개적 연대를 선언하기보다는 러시아와 보조를 맞추는 편이 훨씬 실리적이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북한이 6·25 전쟁 75주년에 내놓은 결론은 ‘힘’이 답이다. 노동신문은 “군력이 강해야 국가 존엄과 안녕, 후손의 행복까지 담보할 수 있다”며 국방력 강화가 최고 애국이라고 강조했다.
대북소식통은 "경제난에도 군사력엔 ‘돈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과시한 것”이라며 “정권 유지를 위해 강해져야 산다는 북한식 ‘철리(철칙)’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