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석 후보자 “간첩죄, 적국 아닌 외국에도 적용해야"
- 국회에 발의된 간첩죄 개정안 논의에 국정원 의견 적극 제시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간첩 행위를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릴까. 이종석 국가정보원장 후보자가 간첩죄 적용 대상을 ‘적국’에서 모든 ‘외국’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잇따르는 중국인의 불법 촬영과 기밀 유출에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던 허점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이 후보자는 17일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서면답변서에서 “현행 형법 제98조는 북한 등 적국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하도록 돼 있어 외국 정보기관이나 산업스파이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관련 법령 정비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에 발의된 간첩죄 개정안 논의에 국정원 의견을 적극 제시하겠다”고도 했다.
현행 간첩죄는 대법원 판례상 ‘적국’을 북한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제주공항 등 국가 중요시설을 무단 촬영하다 적발된 중국인들 다수가 벌금 혹은 과태료만 내고 본국으로 돌아갔다. 지난해 12월 제주국제공항에서 드론을 띄워 활주로를 촬영한 중국인 A씨는 고작 320만원의 과태료만 부과받고 3개월 만에 출국했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제주공항 등에서 적발된 중국인 무단 촬영은 11건에 달한다. 공군기지, 발전소, 국정원 청사까지 대상도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하지만 ‘적국’을 위한 간첩죄만 처벌할 수 있어 모두 ‘호기심’이나 ‘경치 촬영’ 정도로 처리됐다. 경찰 관계자는 “중국 드론 서버와 자동 연동돼 현장에서 촬영된 영상이 실시간으로 중국으로 전송된다”며 “국가안보 공백이 우려된다”고 했다.
같은 상황에서 미국은 훨씬 강력하다. 지난해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드론으로 군사시설을 촬영한 중국인 유학생을 체포해 징역형에 처하고 본국으로 추방했다. 미 당국은 이를 두고 “국민 보호와 국가안보 수호 조치”라고 발표했다. 일본도 2013년 아베 정부 때 ‘특정비밀보호법’을 제정해 군사·외교 기밀 누설자를 강력히 처벌한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간첩죄 개정안’을 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에서 ‘적국 외 외국까지 간첩죄 적용’을 포함한 형법 개정안이 의결됐지만 이후 계엄 사태 등 정치 현안에 밀려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당시 여당이던 국민의힘은 즉각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야당이던 민주당과 일부 시민단체는 “과잉 처벌과 인권 침해가 우려된다”며 제동을 걸었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 집권 후 첫 국정원장 후보자의 '간첩법 관련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발언이 나오면서 여권 전체의 전향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질지 관심사다.
전직 안보부서 관계자는 “간첩법 관련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면 언제든 큰 안보 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