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국교정상화와 한국 외교: 현실적 선택과 미완의 해방
2025년은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51년 10월의 예비 회담으로 시작해서 1965년 6월의 최종 타결까지 한일 국교 교섭은 14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한일이 국교를 정상화하는데 14년이란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식민지 지배를 둘러싼 인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오랜 교섭 끝에 1965년의 한일 국교정상화는 과거사 문제를 봉인하면서 성립되었다. 한일기본관계조약의 제2조는 1910년의 한일합방조약이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이는 한국 측의 “당초부터 무효”와 일본 측의 “한국이 독립함으로써 무효” 주장을 절충한 것이었다.
또한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일본이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를 ‘경제협력’ 명목으로 제공하며, 이것으로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하였다. 청구권 협정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고 그 피해에 대한 배상이 아니라 경제협력방식으로 체결된 것이다.
이렇게 한국과 일본은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봉인하였고, 그 배경에는 냉전과 경제 협력의 논리가 있었다. 1965년 12월 18일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은 한일 국교정상화를 비준하면서 양국 관계 정상화의 관건은 “한일 양국 상호 협력체제와 반공태세의 강화에 있다”고 강조했다.
동아시아 냉전의 전초 국가였던 한국에게 일본과의 국교정상화는 안보와 경제 성장을 위해 택해야 할 현실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당시 한국의 선택은 국교 정상화 이후일본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고민거리를 남겼다. 1945년 8월 15일 분명 한국은 일제의 압제로부터 ‘해방’(liberation)되었지만, 그 실상은 일본의 전후 처리에 의한 ‘분리’(separation)가 아닌가? 즉, 과거사를 봉인하면서 한국의 해방은 미완에 그친 것이 아닌가?
2. 탈냉전기 한일 관계와 한국의 대일 외교: 과거사와 미래지향적 협력 사이에서
한일 과거사 문제는 1990년대에 들어와 다시 전면에 등장하였다. 소련의 해체로 냉전 구조가 무너지면서 한일을 밀착시켰던 반공 협력의 논리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고, 그 공백은 과거사 문제라는 원심력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한국이 민주화를 달성하면서 권위주의 정권 시대와는 다르게 여론이 국가 정책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 한국의 국민들은 정부가 소홀했던 과거사 문제의 해결에 적극 나서도록 촉구했다.
과거사 문제가 부상한 이후 한국의 대일 외교는 두 개의 정책 기조에 직면하게 되었다. 첫 번째, 한국과 일본의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위해서는 과거사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정책 기조이다. 이는 곧 미래지향적 관계의 사전 단계로서 과거사 문제의 원칙적인 해결이 필요하다는 정책 기조이다.
두 번째는 미래지향적 협력 관계를 구축해나가면서 과거사 문제를 서서히 해결해나간다는 정책 기조이다. 이는 과거사 갈등과 협력 사안을 분리 대응하고, 지속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점진적으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정책 기조라 할 수 있다.
2012년부터 2022년까지 한일 관계는 과거사 갈등으로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한일 양국은 일본군‘위안부’문제, 강제동원문제 등 과거사 문제를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였고, 그 결과 과거사 갈등이 협력의 필요성을 압도하였기 때문이다.
2018년 한국의 대법원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불법적인 강점으로 규정하고 청구권 협정에도 불구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위자료 청구권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리고 피고 일본 기업의 한국내 자산을 매각하여 현금화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반면에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 판결에 대해 청구권 협정이라는 양국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러한 갈등은 일본의 수출규제조치, 한일 GSOMIA 종료 조치로 확대되며 한일 관계는 과거사 갈등이 경제 및 안보 분야와 연계되는 복합위기에 빠지게 되었다.
복합위기 속에서 일본 정부는 피고 일본 기업 자산의 현금화 문제를 한국 정부가 해결하지 않는다면, 한국과는 그 어떤 협력도 하지 않겠다고 나왔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입장은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사 문제가 이미 해결된 바, 한국이 일본을 역사적 가해국이 아니라 과거사 책임에서 벗어난 보통 국가로 대하라는 요구였다. 즉, 일본 정부는 한국에게 과거사 망각에 의한 협력을 양국 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3. 2025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과 한국 신정부가 직면할 질문들
2023년 3월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현금화 문제의 해결방안으로 제3자 변제를 제시했다. 한국 정부가 현금화 문제에서 움직임을 취하자 일본 정부는 수출규제를 해제했고, 한일 GSOMIA 또한 정상화되었다. 윤석열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서 선제적으로 이니시어티브를 취한 이유는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한미일 협력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긴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 기조는 한국 국민들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한국 국민들은 안보, 경제, 기타 현안에서 일본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보지만, 윤석열 정부가 과거사 문제에 대해 소극적이고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한국 국민들의 입장은 일본 정부의 소극적 대응과 동전의 양면 관계에 있다.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라는 과감한 조치를 취한 반면 일본이 그에 걸맞은 수준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즉, 윤석열 정부 시기의 한일 관계에서도 청구권 협정으로 과거사 문제가 모두 끝났다는 일본의 입장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다면 윤석열 정부의 대일 외교는 과거사 망각에 의한 협력이라는 일본이 제시한 방향성에 매몰된 것인가? 아니면 윤석열 정부 시기의 한일 관계는 미래지향적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해나간다는 정책 기조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말해주는 것인가?
그렇다면 한국에게는 미래지향적 관계를 향한 조정기로서 갈등을 감수하고서라도 과거사 문제의 우선적 해결에 나서는 것밖에 남지 않은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중 경쟁의 격화 및 미국 우선주의 2.0 시대에 한일이 갈등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도움이 되는가?
2025년 한일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지금 이 시점에 한국은 새로운 정부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롭게 출범한 한국 정부는 위의 질문들에 대해 어떠한 답을 내놓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