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기술은 에너지, 경제, 안보를 통합하는 국가 자산...신이 준 생존 수단
북·중·러·일 실질적 핵 보유국 ...한국 자체 핵 무장 하려면 미국 설득해야

한국형 원자력 발전소 개발과 수출을 이끈 이병령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본부장(76)이 “한국의 첫 원전 수출지는 사실상 북한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1990년대 한국·미국·일본이 공동으로 참여했던 대북 경수로 사업(KEDO)에서 원래 미국형 원전을 공급하려던 계획을 외교적 설득으로 뒤집고 한국형 원전을 관철시킨 장본인이다.
충남 출신인 그는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원자력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 한국원자력연구원 대북한 원전지원팀 팀장, 한국원자력연구원 한국형경수로 개발책임자,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전사업본부 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이 박사는 지난 2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샌드타임즈 회의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처음에는 미국이 자국 원전 기술을 북한에 넣으려 했으나 국무부 인사들과 수차례 만나며 논리적으로 설득했고 언론과 정치권의 도움을 받아 결국 한국형으로 결정됐다”며 “기술 외교의 현장에서 이뤄낸 상징적인 승리”라고 회고했다.
당시 북한은 러시아형 원전을 선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박사는 “북한은 기술 의존도가 낮은 러시아 쪽을 선호했기 때문에 한국형 원전 채택 이후 제가 현장에 들어가는 것도 거부당했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1994년 10월21일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통해 북한에 ‘비핵화’의 대가로 경수로형 핵발전소 2기를 지어주겠다고 공식 약속했다. 이를 근거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북한 함경남도 신포지구에 한국형 경수로를 지었다.
이 사업은 이후 정치·외교적 상황 변화로 인해 중단됐지만 그는 “정식 계약을 맺고 물자가 투입됐다는 점에서 사실상 대한민국의 첫 원전 수출은 북한이었다”고 강조했다. “아랍에미리트(UAE)나 체코보다 먼저 한국형 원전이 국제적으로 채택된 첫 사례였다는 것"이 이 박사의 주장이다.
이 박사는 또 UAE·체코 원전 수출 실무를 총괄한 인물로 원전 기술의 상업화와 수출 성공을 대한민국 원자력 산업의 분기점으로 평가했다. 그는 “한 나라에 원전을 수출하면 그 나라의 에너지 주권 일부를 우리가 책임지는 것이며 이는 단순한 기술 거래를 넘어선 외교·안보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형 원전 개발과 수출을 주도한 실무 총책임자다. 그가 주도한 APR-1400은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최근 체코 수출에도 성공했다.
체코 대통령이 프랑스보다 한국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모든 면에서 한국이 앞섰다”고 답한 일화를 전하며 "감격해 차 안에서 엉엉 울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 박사는 “프랑스는 원전 강국이고 체코와도 이웃"이라며 "그런데 아시아의 한국 기술을 선택한 것은 기술·가격·안전성 모든 면에서 우리가 앞선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체코 법원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26조원 규모 두코바니 원전 신규 건설을 위한 최종 계약서 서명을 하루 앞둔 지난 6일(현지시각) 계약에 제동을 걸었다. 한수원의 경쟁사였던 프랑스 전력공사(EDF)가 체코 지방법원에 최종 서명을 중단하는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체코 정부가 현지 업체의 참여 비율 등과 관련해 한국의 차기 정부로부터 보다 좋은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 계약을 늦춘 것이란 분석 등 다소 지연은 되겠지만 계약 체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 시절 추진된 탈원전 정책에 대해 그는 단호했다. “세계 최초로 원전을 상업화한 기술을 스스로 거둬들인 것”이라며 “국가 기반 기술을 무너뜨린 국기문란 행위”라고 규정했다.
그는 문재인 정부 시절 영국 원전 관계자들이 한국형 원전을 수입하려고 방문했지만 당시 탈원전 분위기 때문에 성사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 박사는 "탈원전 분위기에서 공직자들이 눈치를 보며 움직이지 않더라"며 "영국 원전 관계자들이 '한국은 원전을 수출하려는 나라 같지 않다'는 분위기를 감지하고 돌아갔다"고 말했다. "국가의 명운이 달린 사업인데 참담했다"며 그는 가슴을 쳤다.
현재 한국이 놓인 안보 환경을 “기형적”이라며 자체 핵무장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우리를 둘러싼 북한·중국·러시아·일본은 모두 사실상 핵보유국”이라며 “그중 셋은 과거 우리를 침략했던 국가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공약을 믿고만 있기엔 현실이 너무 위험하다"며 "핵무장은 생존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기술적으로 6개월이면 핵무장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에 대해 “이미 원전 기술 대부분을 확보하고 있고 고속 원심분리기나 폭발 원리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정책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자체 핵무장을 위해 그는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했다.
안보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문제인데 정부가 설득 시도조차 안 하는 게 더 문제라고 했다. 그는 "저는 일개 기술자로서 과거 미국 외교관들을 설득했는데 정부가 하면 왜 못하겠냐"며 "정부의 적극적 의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정치인이 용기를 내서 국민의 생명을 우리의 기술과 결단으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인터뷰 말미에 “한국은 이미 세계 최고의 원전 기술을 보유한 나라”라며 “이 기술은 에너지, 경제, 안보를 통합하는 국가 자산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생존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