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종료 사실상 불가능… 현실적 해법 ‘예외 규정’ 활용”
“북·중·러 국경 인프라 개발… 韓 참여 여지도 마련해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국면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운영하는 ‘면제·유예’ 제도를 적극 활용해 남북 경제협력의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2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통일부 주최 ‘한반도 평화경제 미래비전 국제세미나’ 제1세션에서 발제에 나선 임수호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제재의 전면적인 중단이나 종료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며 “현 제재 틀 안에서 예외적 협력이 가능한 제도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연구위원은 이날 유엔 및 각국의 독자 대북제재 구조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인도적 목적을 근거로 제재를 일정 기간 면제하거나 유예할 수 있는 제도가 남북 경협 추진의 주요 창구가 될 수 있다고 제시했다.
그는 “유엔 차원의 제재가 중단되거나 종료되기 위한 조건은 북한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이며, 특히 미국의 독자제재는 ‘비핵화 완성’과 ‘북한 체제 변화’가 있어야만 종료된다”며 “현실적으로 제재의 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다만 미국의 독자제재를 규정하는 14개 법률 가운데 하나인 ‘대북제재강화법’에는 대북 개발협력을 위한 ‘중요한 열쇠’가 담겨 있다고 설명했다.
이 법은 인도적 목적이 있는 경우, 1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제재 유예를 허용하고 있는데, 주목할 점은 이 중 ‘한반도의 민주·평화적 통일 촉진’이 인도적 목적의 하나로 명시돼 있다는 부분이다. 임 연구위원은 “이는 곧 남북 간 양자 또는 다자 경제협력의 명분으로 활용될 수 있는 조항”이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해당 조항은 한미·남북·북미 관계 모두와 연동되는 포괄적 해석이 가능해 낮은 단계의 개발협력에도 적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임 연구위원은 “현재로선 남북 경협을 직접 추진하기 어렵지만, 미국·중국·러시아가 주도하는 대북 양자·다자 경제협력, 특히 인프라 개발 중심의 협력 구도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북한·중국·러시아는 접경지역 인프라 개발에서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있다”며,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이 국제기구화될 경우 “북·중·러 주도의 국경지역 개발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한국도 정세 변화에 따라 해당 사업에 참여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고 덧붙였다.
토론에 나선 전문가들도 ‘제재 장기화’를 전제로 한 새로운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종규 한국개발연구원(KDI) 글로벌·북한경제연구실장은 “북미관계의 정상화 정도에 따라 대북 경협과 북한 경제가 단계별로 반응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에 맞춘 단계별 경협 사업을 미리 설계해 혼선을 막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은주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북한의 협상 개시 요구 수준이 크게 높아졌고, 한미 입장에선 회담 개시 자체에 상당한 정치·외교적 비용이 따르는 상황”이라며 “명확한 보상과 행동 연계 로드맵, 유의미한 제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북제재의 ‘장기전’이 기정사실이 된 가운데, 제재의 ‘틈새’를 파고드는 전략적 남북 경제협력 모델이 본격적으로 논의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