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초 채집부터 국가 지원품까지…각종 건설에 돌격대로 차출
- 고달픈 가두생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나이를 먹는 것 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2일 ‘애국과 평양녀성들’이라는 제목의 축하공연 소식을 전하며 “평양 여성들의 값높은 삶”을 치켜세웠다. 하지만 무대 뒤 현실은 달랐다. 바로 이 축하무대가 ‘수도여맹원’들의 사업 보고 성격을 띠고 있으며, 평양의 주부들이 이미 다양한 동원 업무에 투입돼 있음을 당국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평양에서는 동(洞)·리 단위 사무소가 직장에 다니지 않는 55세 미만 여성들을 모두 ‘가두생활’에 편입시키고 있다. 북한에서는 이를 ‘녀맹생활’이라 부르며, 여성 조직을 지역 단위로 관리하며 각종 과업 수행을 지시한다. 일종의 “주부 조직 통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가두에 소속된 여성들에겐 해마다 약초·약재류 수집 (살구씨·복숭아씨 등), 파철·유리·파지 등 수매 물자 납부, 국가 건설사업 지원품 제공 (장갑·의류·식료품·생활용품 등 '과제’가 주어진다.
이 과제는 세대별로 내려오지만, 가두에 속하지 않은 주민들은 미이행 시 어느 정도 ‘눈감아’ 줄 수 있는 반면, 가두여성들은 매주 열리는 생활총화에서 공개 비판을 받아야 한다.
한 주민은 “과제를 한 주라도 못 하면 전원 앞에서 비판을 듣는다”며 “사실상 정치적 통제 수단”이라고 전했다.
최근에는 ‘여맹돌격대’라는 이름의 조직까지 만들어져, 평양 여성들이 수개월씩 건설현장에 동원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또 4·25 인민군 창건절 전후에는 ‘원군사업’이라는 명목으로 학습장·원주필 등 학용품, 비누·치약·칫솔 등 생활용품, 밥·반찬거리·토끼고기 등 물품 제출 과제가 떨어진다.
농번기에는 당연하다는 듯 모내기·김매기·추수작업 등 농촌지원이 이어지고, 철길·도로 보수 역시 가두 여성들의 몫이다.
이 같은 동원을 피하려면 결국 ‘돈’이 필요하다. 일각에선 “기피하려면 건당 돈을 내라”는 식의 공식·비공식 ‘동원 회피 비용’이 존재한다는 증언도 나온다. 하지만 가두 여성 대부분은 장사나 개인사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면서도 모든 과업을 수행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시달리고 있다.
평양시 소식통은 “가두생활은 집에서 쉬는 게 아니라, 직장보다 더 바쁘다"며 "가두생활은 집안 일도, 돈벌이도, 동원 과제도 모두 떠안고, 매주 비판대회에 시달리는 고달픈 생활"이라고 말했다.
평양 주민들 사이에서는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나이가 들면 젊어지고 싶어 하지만, 북한 여성들은 55세가 빨리 되기를 바란다”며 “가두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나이를 먹는 것뿐”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온다.
55세에 가두를 졸업해도 편안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북한당국이 최근에는 노인들도 집에만 있지 말고 애국활동을 해야 한다며 각종 에 동원시키기 때문이다. /장신영 기자 jsy@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