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성택 숙청의 이면…“총살 아닌 화형이었다”
- 김정은, 간부들에 "주애는 나에게 포도당이야"

“36국이 한 번 움직이면 수백억 원이 오갑니다. 그 자금은 누구도 건들 수 없습니다. 건드리는 순간 죽습니다.”

2019년 한국으로 망명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은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의 증언록이 출간됐다. 노동당 39호실장을 지낸 전일춘의 사위로 김씨 일가의 ‘금고지기’ 곁에서 17년간 생활한 그는 김정은의 비자금이 어떻게 조달되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구조를 처음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류 전 대사대리가 밝힌 핵심은 국무위원회 산하 ‘36국’이다. 기존의 노동당 39호실이 ‘공적 비자금’을 관리한다면, 36국은 김정은 개인의 생활과 권력 유지에 쓰이는 ‘사적 비자금’을 전담한다. 공식 예산의 통제선 바깥에서 작동하는 이 조직은 해외 사치품 조달부터 방탄차·요트·고가 식재료, 심지어 제비집과 고베산 와규까지 총괄한다.

학계와 정보당국이 주목한 대목은 ‘조달·집행·보위’로 이어지는 비자금 구조다. 류 전 대사대리의 설명에 따르면 36국은 본부서기실 36과에서 출발해 2016년 국무위원회 신설과 함께 조직 명칭이 바뀌었을 뿐, 기능은 변함없이 유지됐다.

실무는 노동당 39호실 소속 파견원들을 통해 이뤄진다. 자금 인출과 계정 관리, 물품 운송은 최우선 순위로 처리되며, 북한 내부 다른 어떤 기관도 감사를 시도할 수 없다. “비자금 회계는 공포정치의 안전판이자 1인 독재의 연료”라는 것이 류 전 대사대리의 분석이다.

증언록은 장성택 숙청의 진행 과정도 재구성한다. 39호실과 외화 라인을 장악하며 ‘권력 2인자’로 급부상한 장성택은 2013년 겨울 특별군사재판 직후 사형됐다. 류 전 대사대리는 “김정은이 직접 ‘총알도 아깝다, 화형으로 집행하라’고 지시했다”는 장인의 증언을 인용하며 충격적인 후일담을 전했다.

숙청 직후 북한 전역에서는 ‘반종파 투쟁’과 ‘비판서 쓰기’ 캠페인이 벌어졌고 수천 명에 달하는 인물이 좌천·처형·수용소 이송을 당했다고 한다. 개인의 일탈이 아닌 “돈의 통로를 재정비한 정치적 숙청”이었다는 해석도 제기된다.

책에는 예상치 못한 일화들도 담겨 있다. 김정은 친형 김정철의 아편 중독, 남한 인사의 자발적 정보 제공, 그리고 KBS ‘한국인의 밥상’ 애청자였던 김정일·김정은 부자. 특히 영광굴비를 남한에서 공수해 먹어본 뒤 ‘매주 조리 영상을 간부들에게 배포했다’는 내용은 아이러니를 넘어선다.

그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딸 김주애에 대한 발언이다. 

김정은은 자신의 생일 30주년인 2014년 1월8일 전일춘을 포함해 황병서·김양건·김원홍 등 간부 4명만 초대소로 초청해 사우나에서 땀을 빼고 식사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정은은 “국정 운영을 혼자 맡아 하자니 정말 힘에 부친다”며 “모든걸 다 집어치우고 싶을 때도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고 한다.

김정은은 “집에 들어가면 우리 주애가 막 기어 나와 내 품에 안기는데 내가 포기하면 앞으로 저 아이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나 싶어 온 정신을 가다듬지”라며 “저 애의 미래를 위해서도 내가 나약해지면 안되겠구나 하는 자각으로 나를 다잡는다. 주애는 나에게 포도당이야”라고 했다.

김정은이 류 전 대사대리의 장인과 함께 한국 영화 ‘명량’을 본 일화도 소개됐다. 김정은은 전일춘과 함께 ‘명량’을 함께 보고 당 간부들에게 “우리는 왜 이런 영화를 못 만드나”라고 질책하며 선전선동부 산하에 무역회사를 조직해 영화제작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김정은이 만취 상태에서 즉흥적 결정을 내린 뒤 자신의 결정을 번복한 사례도 있다. 2016년 노동신문 책임주필과 조선중앙통신사 사장을 지낸 김병호 당 선전선동부 부부장을 술에 취해 “반당 분자”라며 “감방에 처넣어”라고 했다가 며칠 뒤 다른 간부에게 “김병호 불러. 스키 타러 같이 가게”라고 했다는 것이다.

김병호는 김정은의 투옥 지시에 따라 연행된 상태에서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고 있다 풀려났다고 한다. 김정은이 김병호에게 화가 난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전화로 “왜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에 아직도 ‘김정은 동지’라는 내 이름을 싣느냐”고 꾸짖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김정은은 “인민이 ‘당중앙’이라는 표현만 써도 나를 가리키는 줄 안다”며 “내가 모든 일을 다 책임질 수는 없지 않으냐. 내 이름 대신 ‘당중앙’을 쓰라고 한 지가 언젠데 아직도 시정하지 않느냐”며 욕설을 퍼부었다고 한다. 

2015년 평양 대동강 자라공장 지배인이 김정은에게 뺨을 맞고 총살당한 과정도 자세히 소개됐다. 2015년 5월 불시에 대동강 자라공장을 방문한 김정은이 지배인에게 자라 생산을 정상화하지 못한 이유를 물었는데 지배인은 “전력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펌프를 돌리지 못했고 수족관에 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자라들이 폐사했다”고 답했다가 그 자리에서 뺨을 맞았다고 한다.

김정은은 “야, 이 새끼야 전기가 없어 펌프를 못 돌리면 공장 종업원들이 모두 달라붙어 물을 퍼서라도 자라를 살려야 할거 아니야. 이 새끼 뭘 잘했다고 아직도 대답질이야”라며 자라공장 지배인의 뺨을 세게 후려쳤고 며칠 뒤 ‘김정일 장군님의 영도 업적이 깃든 공장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반당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사형당했다.

당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매체는 김정은이 자라공장을 방문해 공장 지배인 등을 질책한 사실과 발언을 여과 없이 공개했었다.김정은은 “위대한 장군님(김정일)의 업적을 말아먹고 있다”며 “어떻게 이런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는지 억이 막혀(기가 막혀) 말이 나가지 않는다”고 했었다. 김정은은 전력 부족 등 어려운 여건을 언급한 간부들의 해명에 대해서는 “말도 되지 않는 넋두리”라고 했었다. 

류현우 전 대사대리가 2019년 9월 쿠웨이트 북한대사관에서 탈출한 이유는 의외로 단순했다. 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김정일 초상화’를 분실했기 때문이다.

“그림 한 장 때문에 딸이 평생 노예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민 끝에 탈북을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한국 정착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부부는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사과정을 함께 마쳤고, 아내는 이화여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현재는 방송 출연과 강연을 통해 정착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증언록을 완성하고도 2년간 출간을 주저했던 이유는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 때문이다. 연좌제가 살아 있는 북한에서 그들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채널A ‘이제 만나러 갑니다’ 출연 후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어요. 북한 주민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황시완 기자 hsw@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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