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미디어는 이념과 사상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중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에 깊은 비중을 두고 있다. 실제로 김정일 집권 당시 “김정일 유일사상”이 도입 되면서 북한 애니메이션은 많은 변화를 맞이했으며, 세계에서 유일하게 ‘주체적 아동영화’로 불리게 되었다고 선전했다. 북한 당국이 스스로 그들의 애니메이션을 ‘우리식 아동영화’ 또는 ‘주체적아동영화’라고 선전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는 의미로, 그 중심에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대한 숭배 사상이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은 인류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위대한 수령인 김일성’과 그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계승한 ‘현명한 지도 자인 김정일’이 애니메이션을 지도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가장 훌륭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다는것이다.
김정일에 이어 김정은도 여러 차례 조선 4.26만화영화촬영소를 방문하여 애니메이션의 혁신을 강조하고 애니메이션의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바 있다. 그렇다면 북한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어떤 사상과 애국심을 주입하고자 하는지, 특히 전쟁 이야기를 주제로 한 많은 아동영화에서 과시하고 싶은 지배 이데올로기는 무엇인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위 장면은 북한 애니메이션 “연필포탄” 중 한 장면으로, 주인공 석팔이와 친구가 평범하게 숙제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숙제는 수업시간에 배운분도기(각도기)에 대한 내용이었지만 석팔이는 수업 시간에 딴짓을 했기 때문에 문제를 풀 수 없었고 그렇게 잠에 들게 된다. 꿈속에서 미군 부대와 전투를 벌이게 된 석팔이네 부대는 연필로 된 포탄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포탄은 분도기(각도기)를 사용해 발사할 수 있었기에 사용법을 몰랐던 석팔이는 공격 한번 제대로해보지 못한 채 적의 포탄에 맞아 쓰러진다. 깜짝 놀라 잠에서 깬 석팔이는 꿈이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만, 곧바로 자신이 게을리 했던 숙제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석팔이는 “ 공부시간에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훌륭한 인민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어!”라는 대사를 남기고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처음엔 평범한 학생의 이야기에서 훌륭한 인민군대라는 메시지로 끝을 맺은 이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산수 교육을 넘어 어린시절부터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심어주고, 체제에 대한 복종과 군사적 충성심을 강조하는 교육의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위 사진은 1977년부터 방영되고 있는 “다람이와 고슴도치”의 한 장면이다.. 주인공 “금색이”라는 다람쥐가 고슴도치, 물오리들과 함께 족제비, 승냥이들로부터 보금자리인 꽃동산을 지키는 내용이다. 등장 캐릭터들은 대부분 군인이며, 선망의 대상으로 그려진다. 작중 ‘고슴도치 정찰병’은 족제비 군단의특수무기를 없애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고, ‘물오리 정찰병’은 백조로 변장한 후 적군에 스파이로 침투해 계획을 알아낸 후 폭탄이 있는 헬리콥터를 타고 적군에 돌진한다. 적과 대치하는 에피소드에서는 잔혹한 장면을 다루기도 했다. 3화에서 족제비 군단의 수색대장은 목과 가슴에 꼬챙이가 관통해 목숨을 잃었고, 낙하산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족제비와 쥐들은 바닥에 설치된 커다란 가시에 찔려 끔찍한 최후를 맞이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북한 주민들에게‘적들은 반드시 소멸해야 하는 존재”라는 적개심과, ‘조국을 위한 희생’은 최고의 애국심임을 각인 시키기 위한 선전 도구로 보여진다.
또한 작중 등장인물들은 모두 동물이지만 캐릭터마다 각자 내포된 의미가 다르다. 다람쥐, 고슴도치, 물오리는 북한 주민을, 생쥐들은 남한 주민을, 생쥐들의우두머리인 족제비는 남한의 지도층 혹은 일본을 나타내며 족제비 군단을 조종하는 승냥이는 미국을 나타낸다.

다음 작품은 다이어트를 권장하는 장면이 포함된 애니메이션이다. 작중 등장인물인 진옥과, 보미는 줄타기 대회 연습을 하는 소녀들이며 순이는 이들의 친구이다. 보미와 진옥은 늦은 밤까지 각자 줄타기 연습을 계속하는 모습인 반면, 순이는 내내 먹고, 자고 노는 모습으로만 그려졌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작품이“교통질서를 잘 지키자요”라는 교통안전 교육 시리즈물 23화 내용이라는 점이다.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다이어트를 교훈처럼 주입하는 장면은 북한 당국의 선전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애니메이션은 '즐거움' 대신 '복종'을, '상상력' 대신 '체제에 대한 순응'을 요구하는 교육적 수단이다. 이는 어린이의 감정과 상상력을 억누르고, 어린 시절부터 체제에 대한 충성을 심어주는 잔인한 방법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의 어린이 애니메이션은 단순한 문화적 산물이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이념적 규제의 파생물이라 할 수 있다./최민지(서울시립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