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투자, 닷컴 열풍 넘어…회사채 찍어 군비 경쟁하듯 투자
- MIT "기업 95% AI로 돈 못 벌어"…제2의 닷컴 버블 논란

4200 고지까지 치솟았던 한국 증시의 코스피지수가 지난 5일 장중 한때 6% 폭락하며 3900선 아래로 떨어지는 ‘검은 수요일’을 연출했다. 간밤 뉴욕 증시에서 촉발된 인공지능(AI) 관련주의 버블(거품) 우려와 차익 실현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며 결국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85% 하락한 4004.42로 장을 마감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6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순매도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중 한때 6~7% 급락하면서 반도체 등 일부 대형주가 이끌어온 상승 랠리에도 브레이크가 걸렸다.
그동안 AI 서버와 데이터센터 투자의 폭발적 확대는 한국 반도체를 '슈퍼 사이클'로 접어들게 하는 동력이 됐고, 이는 실적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실제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역대 최대 분기 매출과 함께 영업이익 ‘10조 클럽’에 복귀했다. SK하이닉스도 사상 처음으로 분기 영업이익 10조 시대를 열었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K반도체의 전성기가 찾아왔다는 기대로 들떴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시가총액도 사상 처음 1000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검은 수요일은 코스피지수가 5000을 넘어 6000까지 넘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찬물을 끼얹었다. 주범은 ‘AI 버블론’이다.
AI 버블론은 챗GPT를 세상에 내놓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로부터 발화됐다. 그는 최근 인터뷰에서 “지금 투자자들이 AI에 지나치게 흥분하는 단계에 있다”고 말했다. AI 투자가 버블 수준이라는 판단인 것인데, 그의 언급 이후 미국 증시의 대표주인 M7의 주가가 폭락했다.
M7은 애플,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알파벳, 메타, 테슬라 등 7개 빅테크 기업을 말한다. 지난 1962년에 나온 영화 ‘황야의 7인’에서 따온 명칭으로 지난 8월 기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지수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무려 34.27%에 달한다.
“AI 기업 95%가 수익을 내지 못한다”는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진의 보고서 역시 증시 불안감을 키운 ‘트리거’가 됐다. 닷컴(.com) 버블의 악몽을 상기시키는 현재의 AI 붐이 과연 지속 가능한 기술 혁명인지 아니면 곧 터질 거품에 불과한지에 대한 논쟁을 본격 촉발시킨 것이다.
닷컴 버블은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붐과 맞물려 닷컴 관련주의 주가가 급등했다가 2002년 10월 나스닥지수가 고점 대비 78% 급락한 것을 말한다. 이로 인한 손실은 5조 달러(약 7257조원)에 달했다.
AI 버블을 우려하는 쪽은 현재의 AI 투자가 닷컴 열풍 때와 유사하다는 점을 근거로 삼는다. 높은 기업가치와 과대평가, 막대한 규모의 자금 투입과 투기적 투자, 정작 낮은 시장 수요 등 당시 닷컴 기업들이 보였던 양상과 닮았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AI 투자는 마치 군비 경쟁하듯 이뤄지고 있다.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2029년까지 데이터센터에 대한 누적 투자액이 미국에서만 3조 달러(약 435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3조 달러는 올해 2분기 기준 미국 국내총생산(GDP) 30조4857억 달러의 10분의 1에 육박하는 막대한 규모다.
문제는 이 같은 대규모 투자가 대부분 레버리지, 즉 부채를 일으키는 형태라는 점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테크 기업들이 투자를 위해 올해 들어 지난달 말까지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157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920억 달러 대비 70.7% 급증했다.
반면 AI의 실제 효용에 대해 내놓는 산업 현장의 의구심은 부채를 늘려가며 이뤄지고 있는 AI 투자가 그대로 거품이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MIT 연구진이 올해 1~6월 생성형 AI를 도입한 153개 기업의 CEO를 대상으로 한 인터뷰와 AI 도입 계획 보고서 등을 분석한 결과 대다수인 95%가 유의미한 매출 제고 효과를 보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AI가 아직 기업의 수익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단계에 미치지 못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로 인해 AI 버블은 닷컴 버블과 비슷하지만 붕괴에 따른 파괴력은 그보다 훨씬 클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 미국 시사잡지 디 애틀랜틱은 “AI 투자는 경제 규모 대비 비중 측면에서 닷컴 붐이 정점이었던 당시의 투자 규모를 초과했다”면서 “AI 버블이 붕괴되면 더 큰 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버블론은 지나친 우려, 즉 기우(杞憂)라는 시각도 있다. 현재 AI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산업 패러다임을 바꾸는 근본적인 기술 혁신이고, 실제로 돈을 벌어다 준다는 점에서 ‘아이디어’ 와 ‘약속’만 무성했던 닷컴 버블과 다르다는 것이다.
또 있다. 닷컴 버블은 검증되지 않은 벤처가 투자 과열을 주도해 상당수는 수익을 내지 못한 채 현금만 소진했다. 반면 AI 시대를 이끄는 M7은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면서도 막대한 현금 흐름과 수익을 만들어 내고 있다.
결국 AI 버블론을 소멸시킬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근거, 즉 수익성과 생산성 향상을 시장이 확인하는 시점까지 한국 증시와 반도체 업계는 불안한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형국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박동혁 기자 pdh@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