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권 국가안보재난연구원장 심층 인터뷰
- 군사 안보와 재난 안보의 결합, 선택 아닌 필수
- 전작권 전환, 원론적으로 찬성 ... 문제는 ‘돈’
- 기후변화 이슈, 남북 간, 국제사회와 협력 가능성

“전통적인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지만, 재난은 상대가 없는 위기입니다. 지금은 이 두 세계가 만나는 과도기죠.”
정찬권 국가안보재난연구원장은 4일 서울 강남구 샌드타임즈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포괄 안보(Comprehensive Security) 개념이 더 이상 군사·외교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가위기관리학회장을 지낸 그는 “재난, 기후, 전염병 등 비군사적 요소 역시 국가 안보의 핵심 위기 요인으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원장은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를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구분해야 한다고 했다. 또 기후변화가 체제를 넘어선 생존 이슈라며 남북 간 국제 협력의 가능성을 전망했다.
- 인터뷰 전문 -
Q. 원장님께서 말씀하신 ‘포괄 안보(Comprehensive Security)’는 어떤 개념입니까?
A. 포괄 안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도 학문적 정의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가치관이 변하듯, 안보의 개념도 진화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군사·외교 중심의 전통 안보가 핵심이었지만, 이제는 재난·기후·전염병 같은 비군사적 요소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Q. 재난을 안보의 영역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A. 그렇습니다. 전통적인 정치학·외교학 관점에서는 재난을 단순한 ‘사고’로만 봅니다. 하지만 재난은 국가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사회적 불안을 초래하는 안보 위기입니다. 저는 이런 문제의식을 느끼고 재난 분야로 연구를 확장했습니다. 그만큼 지금은 군사 안보와 사회적 위기의 경계가 무너지는 과도기입니다.
Q. 실제로 전통 안보학자들과 재난 분야 연구자 사이에 견해 차이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A. 맞습니다. 지난해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위기관리와 재난’ 토론회에서도 그 차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전통적인 위기관리학자들은 ‘재난은 사고이지 위기가 아니다’라고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군사·외교 분야의 위기는 상대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있으니 게임이론이 작동하지요. 예를 들어 미국과의 협상처럼, 서로 주고받고 계산하는 관계입니다.
그런데 재난에는 상대가 없습니다. 지진, 팬데믹, 사이버 사고 같은 재난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죠. 이것이 두 학문 간의 가장 큰 간극입니다.
Q. 그렇다면 이런 인식의 간극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요?
A. 두 분야가 서로를 배척하기보다는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저는 재난학과 위기관리학이 ‘융합적 안보학’으로 발전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비판은 반드시 ‘대안’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대안 없이 상대를 비난하는 것은 학문적 태도가 아닙니다. 저는 학회에서도 늘 ‘균형 감각’을 강조합니다.
Q. 원장님께서는 이미 2012년에 포괄안보 개념을 책으로 정리하셨다고요.
A. 네, 당시 대학원 교재로 쓸 수 있게 책을 냈습니다. 그때도 기후, 질병, 환경 재난 등을 ‘국가 위기관리의 핵심 요소’로 포함시켰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약간은 억지춘향식으로 집어넣은 부분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그 필요성이 명확해졌습니다. 데이터센터 화재나 통신망 장애 같은 사건도 단순한 재난이 아닙니다. 에너지와 통신이 끊기면 국가 기능 자체가 마비됩니다. 이제 사이버·정보·인프라의 안전이 곧 안보입니다.
Q. 전통적 안보 영역, 예컨대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는 어떻게 보십니까?
A. 전작권 전환 그 자체에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는 돈입니다. 미국이 보유한 ISR(정보·감시·정찰) 자산과 각종 장비의 유지비용까지 고려하면 단순히 ‘전환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분석에서는 21조 원이면 된다고 하지만, 그건 유지비를 뺀 계산입니다. 단기간 방위비를 GDP의 3.5%로 끌어올리자는 주장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대기업들이 부담을 감당하지 못하고 법인 이전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국가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봐야 합니다.
Q. 남북관계와 통일 문제도 위기관리의 관점에서 다르게 보셔야겠네요.
A. 그렇습니다. 대북 위기관리는 ‘현상 유지’가 기본입니다. 반면 통일은 위기관리의 목표가 아니라 국가 전략의 완성, 즉 엔드스테이트(End-state)입니다. 지금 젊은 세대는 통일에 대한 열망이 약하고, 남북 간 인식도 단절돼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무시한 감정적 통일론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Q. 한미일 공조 강화는 어떤 배경에서 보십니까?
A. 한미일 공조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압박의 결과입니다. 한미, 미일 관계는 이미 안정돼 있었습니다. 문제는 한일 관계였죠. 미국은 이 틈을 메우려 했고, 한국은 그 대가로 NCG(핵협의그룹)를 얻었습니다. 다시 말해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과 교환한 셈입니다.
Q. 남북관계는 미중관계의 영향을 얼마나 받는다고 보십니까?
A. 매우 큽니다. 역사를 보면 미중 관계가 좋을 때 남북 관계도 개선됐습니다. 반대로 미중이 대립하면 한반도는 얼어붙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Q. 김정은 위원장의 외교 행보는 어떻게 해석하십니까?
A. 김 위원장의 대중·대러 외교는 체제 보장을 위한 카드입니다. 중국은 북한을 완충지대로, 러시아는 전시 동맹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둘 다 ‘보험’이죠.
Q.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북정책이 초기화되는 구조도 문제로 지적하셨습니다.
A. 맞습니다. 보수든 진보든 안보 문제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정권 교체 때마다 정책이 리셋되면 안 됩니다. 국가 전략은 연속성과 일관성이 핵심입니다.
Q. 현재 한국의 동원 체계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A. 유사시 민방위가 제대로 작동할지 걱정입니다. 과거에는 비상기획위원장이 장관급이었는데, 지금은 차관급으로 격하돼 안보 결정구조에서 배제됐습니다. 국방 예산이 60조 원인데 동원 예산은 2400억 원, 전차 다섯 대 값에도 못 미칩니다. 국가 동원력의 복원이 진짜 안보의 출발점입니다.
Q. 기후변화 문제를 한반도 차원의 안보 위기로도 보시나요?
A. 그렇습니다. 기후변화는 체제를 넘어선 생존의 이슈입니다. 자연재해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지면서 기존의 예·경보 체계로는 대응이 어렵습니다. 북한은 이런 문제에 더 취약합니다. 재난 대응 시설이 낙후되고, 물자와 장비가 부족해 피해가 주민 생명과 체제 안정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Q. 김정은 위원장도 기후문제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죠?
A. 맞습니다. 김 위원장은 기후변화를 식량난 해결과 체제 생존의 과제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 ‘재해방지·구조 및 복구법’을 제정했고, 올해 7월에는 ‘재해방지성’을 신설했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과 파리협정에도 가입했고, 2019년에는 ‘국가기후변화대응전략’을 발표했습니다. 형식상 제도는 갖췄지만, 중앙집권적 통제와 재정난 탓에 실제 대응력은 낮습니다.
Q. 실제 피해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A. 대표적으로 지난해 7월 신의주 홍수를 들 수 있습니다. 당시 4,100여 채 주택과 3,000만㎡ 농경지가 침수되고 5천 명 이상이 평양으로 이주했습니다. 북한이 러시아 비상사태부와 협력을 강화하는 것도 이런 대응력 보완을 위한 것입니다.
Q. 남북 간 또는 국제사회와의 협력 가능성은 어떻게 보십니까?
A. 충분히 가능합니다. 기후변화 대응은 이념을 초월한 인류 공동의 과제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남북은 여러 차례 재난 협력을 해왔습니다. 2004년 룡천역 폭발 사고 때 100만 달러 규모의 구호물자를 보냈고, 2006년 폭우 때는 쌀 19만 톤과 의약품을 지원했습니다.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 확산 때는 치료제 50만 명분을 제공했죠.
Q. 앞으로 추진할 수 있는 남북 협력 과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A. 네 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산림 공동복원사업입니다. 남한과 국제사회가 자본과 기술을, 북한이 인력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둘째, 남북 공동 재난훈련입니다. 압록강 범람이나 백두산 화산 분출 같은 가상 재난을 상정해 공동 대응을 하면 효과가 큽니다.
셋째, 수자원 공동 관리체계입니다. 황강댐 방류 시기와 규모를 사전 공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한반도 기후변화연구소’ 설립입니다. 남북이 공동으로 연구와 정책을 추진할 전초기지가 될 수 있습니다.
Q. 현실적인 제약도 적지 않겠네요.
A. 맞습니다. 대북제재, 남북관계 경색, 북한의 정보 비공개 관행이 모두 걸림돌입니다. 하지만 UN 산하 기구나 녹색기후기금(GCF) 같은 다자 협력 채널을 활용하면 투명성과 실효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향후 남북 기후협력의 전망을 어떻게 보십니까?
A. 지금은 폐쇄성과 불신이 여전히 큽니다. 그러나 북한이 전향적으로 나온다면 협력의 문은 열릴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 대응은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입니다. 서로의 의지와 신뢰를 조금씩 쌓아간다면, 언 땅에서도 새싹이 트듯 협력의 싹이 자랄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 = 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