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진무 전 국방연구원 박사 인터뷰… 통일 감성 아닌 냉정한 '선택의 문제'"
- 북한 붕괴론은 검증되지 않은 낡은 프레임…사회 이미 제도적으로 굳어져
- 北시장은 정권을 위협하지 않는다… 정권을 지탱하는 피라미드의 한 부분
-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의 배경은 장마당 세대를 통제하기 어렵기 때문

“제가 2년 전 ‘북한과 헤어질 결심을 해야 평화가 온다’는 내용의 책을 냈는데, 몇 달 뒤 북한이 ‘두 국가론’을 발표하는 바람에 난처했습니다”
평생을 북한 문제 연구에 헌신해온 김진무 박사는 21일 서울 강남구 샌드타임즈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의 저서와 북한의 '두 국가론' 공식화 사이의 아이러니한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김 박사는 “제 의도와는 달리 북한이 ‘두 국가론’을 공식화하면서 제 책이 마치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듯 비쳐 책 소개도 못 하고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김 박사의 저서 <통일이 묻고 평화가 답하다>(2023년 7월 출간)는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 간 특수관계 자체가 적대의 근본 원인"이라며 "평화를 위해선 남북이 분리 독립 전략, 즉 '두 국가 체제론'을 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 출간 5개월 뒤인 같은 해 12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하며 ‘두 국가론’을 공식화하면서 김 박사의 주장은 북한의 선전 논리와 혼동되는 상황에 처했다.
김 박사는 자신의 '두 국가 체제론'이 "통일을 포기하자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전략적 선택을 검토하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늘 통일을 희망의 언어로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검증하지 않았다"며 "통일은 목표이기 전에 과정이며 평화와 분단 체제의 구조, 북한 사회의 변화를 모두 고려하는 전략적 선택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성적 통일론을 넘어 평화를 위해 냉정한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박사는 현재 북한 체제와 사회의 현실을 근거로 "현재 통일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북한 체제를 '제도화된 빈곤'이 일상화 된 '부패한 초기 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했다. “북한은 이미 생존을 위해 거짓말, 뇌물, 매점매석이 일상화된 사회"라며 "나쁜 의미의 부패가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 됐다"고 말했다.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권을 강제로 통합할 경우 ‘사회적 충돌’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다.
또한, 그는 북한의 인프라 문제를 지적하며 현 단계에서 통일에 반대 입장을 보였다. 그는 “북한이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력의 절반은 송전 과정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북한의 잙은 송전망에 남한 전기를 그대로 연결하면 우리도 같이 죽는다"고 했다. 북한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휴전선에 초대형 변전소를 새로 세우고 새 송전선을 깔아야 하는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김 박사는 독일 통일과의 비교에도 선을 그었다. “동독은 서독 인구의 4분의 1에 불과했지만, 북한은 인구 절반에 달한다"며 "북한은 조선시대 왕조 체제가 그대로 이어진 현대판 왕정이며, 우리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이 둘을 합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도 했다.
이어 현재의 통일 담론 자체가 전쟁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지적했다. 1991년 채택된 남북기본합의서의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는 “결국 한쪽 체제가 사라지는 걸 전제로 한다”며 "제로섬 통일이자 전쟁을 전제로 한 합의서”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지금 헤어져야만 나중에 진짜 통일이 가능하다"며 " 지금처럼 서로 다른 체제가 통일을 지향하면 결국 제로섬이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일을 위한 헤어짐이야말로 평화로 가는 제3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적대 종식 뒤에는 새로운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며 "북한 붕괴 이후에도 남북이 서로 윈윈할 수 있는 조건이 성숙할 때까지 지금은 참을 때"라고 강조했다. 기다림이 전략이고, 인내가 평화라는 것이 김 박사의 주장이다.
이어 그는 "남북 관계로 인해 우리 내부의 극우·극좌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며 "이는 경제적 불평등보다 더 심각한 사회 분열 요인"이라고 우려했다. 통일을 지향하는 적대적 남북 관계가 국내 정치와 사회 균열의 뇌관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통일 문제에 대해서는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통일을 성급히 추진하면 ‘같이 가난해지는 통일’이 될 수 있습니다. 통일은 반드시 장기적 관점에서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두 국가 체제’를 전제로 한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우선 제안합니다.”
이를 통해 통일 논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줄이고, 현실적 합의를 모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통일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입니다. 국민적 공감대를 토대로 단계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북한 붕괴론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북한 사회는 이미 제도적으로 굳어져 있다”
그는 과거 국책연구소 근무 시절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하면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 주장했던 대표적 북한 붕괴론자였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 체제를 심층 연구하면서 자신의 판단이 현실을 과소평가한 부분이 있었음을 반성했다고 밝혔다. 최근 펴낸 저서 ‘독재자 딜레마와 취약국가 북한에 다가오는 6대위기’는 이러한 반성의 산물로, 북한 내부의 사회·경제·환경적 위기와 김정은 체제의 장기 생존 전략을 다층적으로 분석한다.
김 박사는 북한 붕괴론에 대해 “너무 단순하고, 이미 낡은 프레임”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김정일이 죽으면 붕괴할 거라고, 리더십이 무너지면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70~80년이 지난 지금까지 체제는 오히려 더 견고해졌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사회가 정치와 분리돼 돌아가기 때문이죠. 정치가 붕괴해도 사회는 그대로 유지되는 구조가 돼버린 겁니다.”
그는 “탈북민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사회 내부의 구속과 규율이 너무나 깊이 제도화돼 있어서 정권이 무너져도 주민 생활은 계속될 것”이라며 “따라서 ‘붕괴=통일’이라는 등식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북한의 정치 체제가 “변화 불가능한 수준으로 제도화됐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은 ‘백두혈통’을 10대 원칙에 명문화했습니다. 원래는 3대 세습이 아니라, 단순한 혁명 계승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혈통 그 자체가 정통성의 근거가 됐어요. 김정은이 죽어도 김주애든, 누가 오든 상관없습니다. ‘백두혈통’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는 “이런 체제에서는 민중 봉기나 쿠데타 가능성도 낮다”며 “정치 체제 자체가 완전히 관습화돼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갑자기 죽는다고 해서 체제가 무너질까요? 아닙니다. 이미 ‘백두혈통 정통성’이 법적·사상적으로 제도화돼 있어서, 권력의 연속성은 보장됩니다.”
“시장은 정권을 위협하지 않는다… 정권을 지탱하는 피라미드의 한 부분”
김진무 박사는 그동안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요인으로 주목 받아온 장마당에 대해서도 체제를 바꾸는 힘이 아니라 정권을 떠받치는 피라미드의 한 부분이 됐다고 분석했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생겨난 장마당은 북한 주민의 생존을 가능케 했고, 외부에서는 북한 변화의 촉매제로 평가받았지만 한계가 너무 크다는 것이 김 박사의 분석이다.
그는 “시장은 이제 김정은 정권 유지의 도구가 됐다”며 “정권이 시장을 이용해 엘리트를 관리하고, 돈주의 충성을 보장받는 구조가 완성됐다”고 말했다. 김 박사에 따르면, 시장경제가 확산되면서 북한 내부의 자본이 커졌지만 그 자본의 흐름은 철저히 엘리트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북한의 시장 구조를 피라미드로 본다면, 맨 꼭대기에는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후보위원 등 수천 명의 핵심 엘리트가 있습니다. 이들이 탄광, 수산, 광산, 수출입 사업의 이권을 모두 틀어쥐고 있죠. 그 밑에 돈주들이 있습니다. 이 돈주들도 이제는 엘리트예요. 김정은의 공동 운명체가 돼버렸습니다.”
그는 “돈주(전주)는 정권과의 이권 관계를 통해만 살아남을 수 있다”며 “결국 시장은 정권이 장악한 이익 네트워크의 일부로 기능한다”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이 같은 구조가 김정일 시대의 ‘와쿠(무역허가권) 시스템’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김정일은 당·정·군 기관에 ‘살림을 각자 알아서 하라’며 외화벌이 권한을 줬습니다. 대신 수익의 30%를 상납하게 했죠. 이때부터 핵심 엘리트들이 탄광이나 수산사업, 광산 이권을 차지했습니다. 김정은 시대에도 이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김 박사는 2000년대 이후 북한 시장화의 전개 과정을 짚으며 “2009년 화폐개혁 당시만 해도 당국은 돈주(신흥 부유층)를 위험세력으로 보고 돈을 빼앗으려 했다”며 “하지만 김정은이 집권한 뒤 계산이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김정은은 곧 깨달았죠. 돈을 쥔 건 시장 상인이 아니라 외화벌이 엘리트들이라는 걸요. 결국 그들을 통제하면 돈의 흐름도, 시장도 통제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시장을 억누르기보다 풀었어요. 시장이 커도, 정권이 틀어쥐고 있으면 위협이 안 된다는 계산이죠.”
결국 외화벌이 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평양 핵심층으로 집중된다. 지방의 돈주는 몇만 달러 단위지만, 평양 엘리트는 수백만 달러를 굴린다. 김 박사는 “그 돈이 모두 뇌물과 상납 구조로 연결돼 있다”며 “시장 돈은 위로 흘러가 평양에 쌓인다”고 했다.
그는 "돈주들이 김정은의 한마디에 날아갈 수 있기 때문에 절대 복종한다"며 "북한의 시장은 자율경제가 아니라 ‘이권 피라미드 경제’”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보는 시장은 장마당에 앉아 생필품 팔고 사는 모습이지만, 그건 겉껍질입니다. 진짜 돈이 도는 곳은 권력의 정점이에요. 돈주가 벌어들이는 수익의 절반 이상이 상납으로 빠져나가고, 그 과정에서 뇌물이 시스템화돼 있습니다. 북한 시장이 체제를 변화시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정권이 시장을 장악했다기보다 시장이 이미 정권의 일부가 됐다”며 "북한 체제는 변화가 아니라, 적응을 통해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은 분명 북한 주민의 삶을 바꿨습니다. 하지만 체제를 바꾸지는 못했어요. 김정은은 시장을 통제하면서도 필요할 땐 활용합니다. 그게 바로 북한식 생존 전략입니다. 시장이 자유를 키운 게 아니라, 독재를 정교하게 만든 겁니다.”
그는 “북한을 ‘변화할 사회’로 보는 시각 자체가 낭만적"이라며 "김정은 정권은 시장과 엘리트를 통합한 통치 시스템을 이미 완성했기 때문에 오히려 시장이 체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고 지적했다.
최근 북한은 시장에서의 식량 판매를 제한하고, 국영 판매소를 통해 더 싼 값에 쌀을 공급하는 ‘이원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시장 억제 조치로 해석하지만, 김 박사의 시각은 다르다.
“북한은 원래 쌀 같은 생필품을 시장에서 팔지 못하게 했습니다. 통제 가능한 품목으로 본 거죠. 지금 식량 판매소를 다시 만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식량은 항상 부족하니까, 통제의 수단으로 삼는 겁니다.”
그는 “북한의 쌀 문제는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통제의 문제”라며 “식량이 곧 권력이라는 사실을 김정은은 누구보다 잘 안다”고 했다.
김 박사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때와 지금 북한 사회를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당시엔 배급이 끊기자 그대로 굶어죽었죠. 집에 쌀을 쟁여놓을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시장이 있으니까, 자원이 있으니까.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습니다. 개인이 생존 자원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가 생긴 겁니다.”
그는 “국경 봉쇄로 자원이 줄어들면서 일시적으로 시장이 위축된 건 사실이지만, 국경이 다시 열리면 거래는 곧 회복된다”며 “지금 북한 경제가 어렵긴 해도 체제의 뿌리까지 흔들릴 정도는 아니다”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북한 체제의 가장 큰 변화는 배급제 붕괴 이후 나타난 주민 의식의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엔 배급이 주민을 묶는 끈이었습니다. 먹고사는 걸 국가가 책임졌으니까, 수령에게 충성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지금은 각자도생이에요. 돈이 충성의 기준을 대체했죠. 김정은도 이걸 압니다. 그래서 돈의 흐름을 통제하려는 겁니다.”
그는 “북한 주민들에게 시장은 단순한 거래 공간이 아니라, 생존의 기반이자 사회적 네트워크”라며 “이런 구조가 있는 한 북한 사회는 과거처럼 붕괴하지도, 급격히 변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북한은 시장을 없앨 수 없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자유롭게 둘 수도 없죠. 김정은은 그 중간 지점을 택했습니다. 통제 가능한 시장, 통제 가능한 자본, 그리고 통제 가능한 생존. 이것이 북한식 시장경제의 현실입니다.”
그는 “결국 김정은의 시장정책은 생존의 경제학이자 통제의 정치학”이라며 “그 계산이 무너지지 않는 한, 북한 체제의 근간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의 배경과 북한 체제의 딜레마
“김정은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든 건 단순한 사상 통제가 아닙니다. 그건 체제 내부에서 이미 변화가 시작됐다는 신호예요. 장마당 세대가 자라서 더 이상 통제가 안 되는 겁니다.”
김진무 박사는 한류 통제법으로 불리는 북한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제정 배경에 대해 “북한의 젊은 세대는 더 이상 ‘혁명 1세대’가 아니며, 김정은 정권은 이들을 억압하기 위해 사상법을 제정했다"며 “이 법은 통제의 강화이자 체제의 불안감이 드러난 증거”라고 진단했다. 북한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한 배경에는 ‘한류 공포’가 있다고 했다.
“북한은 남한 드라마나 음악, 심지어 패션과 말투까지 들어오는 걸 체제 위협으로 봅니다. 김정은은 남한 문화가 주민들의 가치관을 무너뜨리고, 집단주의 대신 개인주의를 심어준다고 판단했어요.”
그는 “북한이 3대 세습을 유지하는 동안 가장 큰 변화는 ‘문화의 역류’였다”며 “김정은은 이를 막지 않으면 체제가 위험해진다고 느낀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 법이 등장한 핵심 배경은 바로 ‘장마당 세대’”라고 강조했다.
“장마당 세대의 가장 나이 많은 층은 지금 40대입니다. 1985년생이면 1995년에 10살, 고난의 행군 시기를 기억하는 세대죠. 시장에서 생존을 배운 세대입니다. 이들은 당과 배급이 아닌 돈과 교환으로 살아남았어요.”
그는 이어 “현재 북한 인구의 40% 이상이 이런 세대”라며 “이들의 사고방식은 국가 통제와 이념 세뇌로는 다스릴 수 없다. 김정은도 그걸 보고 놀랐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 보고서에도 인구 구조 변화가 올라갔을 겁니다. 그래서 나온 게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이에요. 이제 이들은 당의 구호보다 스마트폰과 남한 영상에 익숙한 세대입니다.”
김 박사는 최근 북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집단주의의 붕괴’로 규정했다.
“요즘 북한 젊은이들, 대부분 외아들입니다. 집단보다 자기 이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집단주의가 사라진 사회예요. 국가가 요구하는 ‘희생’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런 세대에게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더 이상 경고가 아니라, 체제의 ‘절박한 방어선’”이라며 “사상 통제를 강화할수록 주민의 내면적 반발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취약국가’… 균열은 서서히 진행 중”
김 박사는 자신의 신간에서 북한을 ‘취약국가(Fragile State)’로 규정했다. 그는 “북한 체제는 겉보기에는 견고하지만, 내부적 균열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을 단순히 ‘약한 나라’로 보면 안 됩니다. 국제정치학에서 ‘취약국가’는 시스템 붕괴 직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아직 무너지진 않았지만, 구조적으로 깨지기 쉬운 나라죠.”
그는 “김정일이 고난의 행군 시기 위기를 넘길 수 있었던 건, 김일성 시대의 통제 구조가 여전히 견고했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김정은은 그 기반이 약화된 상태에서 통치를 이어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박사는 “김정은 정권은 시장을 열지 않을 수도, 완전히 통제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통치는 일종의 모순 위에 서 있습니다. 시장을 막으면 경제가 무너지고, 열면 사상이 흔들립니다. 그래서 반동사상문화배격법 같은 걸 만들어 ‘문화’라도 틀어막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오래 못 갑니다.”
그는 “북한은 이미 ‘닫힌 사회’가 아니라 ‘균열된 사회’”라며 “이 균열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지, 새로운 통제 체계로 재편될지는 앞으로 5년이 결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박사는 “북한 연구는 여전히 ‘붕괴론’과 ‘체제불변론’ 사이에 갇혀 있다”며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쉽게 무너지지도, 완전히 버티지도 않습니다. 김정은의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은 그 중간 어딘가에서 체제를 붙들려는 몸부림이에요. 그 속에서 변화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 전염병·원자력 안전 등 북한 내부 위기
“김정은 정권이 지금 갖고 있는 과거의 조건들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이제 과거 김정일이 했던 방식으로 위기를 관리할 수 있을까요? 저는 거기에 의문을 던진 겁니다.”
김 박사는 “김정은 체제는 과거의 정치적 기반과 외부 보호, 사회 통제 수단 대부분을 상실했다”며 “이런 상태에서 위기가 오면 김정은도 살아남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정일 정권 시기, 고난의 행군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체제가 본질적으로 건재했기 때문”이라며 "김정일은 후계 정당성 확보, 선군정치, 반대파 제거, 외부 군사 위협 차단, 강성대국 비전 제시, 경제 관리 개선 등 단계별 위기 관리 전략을 구사했지만, 그 기반 자체가 튼튼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김정은 체제는 그 기반이 약화된 상태에서 출발했다. 즉, 과거와 달리 북한 체제는 이제 외부 환경 변화와 내부 사회 구조 약화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그는 북한 정권의 6대 위기 가운데 하나로 기후 변화 대응 능력을 꼽았다. “올여름 강릉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국적으로 가뭄이 들었고, 북한은 우리와 달리 수리 인프라가 거의 없습니다. 댐은 토사로 막혀 있고, 수력 발전과 식수 모두 심각하게 제한돼 있습니다.”
김 박사는 “가뭄, 홍수, 산림 황폐화가 결합되면 식량 생산은 급격히 악화된다"며 "지난해 신의주와 자강도 지역 홍수 피해만 해도 군수 공장과 민간 지역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했지만 인프라와 장비가 부족해 복구가 더디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은 북한 주민의 생존과 내부 민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며, 장마당 세대가 주류로 성장하는 가운데 생기는 사회적 긴장을 지적했다.
북한의 열악한 보건시스템으로 인한 전염병 발생도 위기로 거론됐다. 그는 “코로나보다 더 심각한 전염병이 향후 10년 내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은 국경 봉쇄 외에는 대응 수단이 거의 없고, 대규모 사망과 민심 동요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혔다.
장마당 세대의 가치관과 경험이 이전 세대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며, 전염병과 식량 위기가 내부 불만과 탈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 박사는 북한 원자력 발전소의 안전 문제도 지적했다. “영변 원자력 발전소는 1980년대 중반 완공된 흑연 감속로로, 30년 주기로 안전 점검이 필요합니다. 홍수로 인한 침수 위험, 국제 기준 미준수, 경수로 신설 시 안전성 불확실성 등이 모두 폭발 위험을 높입니다.”
그는 또한 “우라늄 광산과 핵폐기물 처리 문제도 예성강과 주변 지역으로 오염을 유발할 수 있으며, 내부 민심과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박사는 난카이 대지진과 후지산 폭발 예측을 예로 들며, 백두산 폭발 가능성과 한반도·동북아 지역에 미칠 파급력을 설명했다. “백두산은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은 살아있는 화산입니다. 6차 핵실험 당시 발생한 6도급 지진만 보더라도 주변 지역에 직접적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김 박사는 북한 내부의 기후·재난·환경 리스크가 체제 안정성에 직접적인 변수라고 분석하며, “한반도 평화 전략과 사회 안정 정책은 이러한 리스크를 고려해 설계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 변화, 전염병, 원자력 안전, 화산과 지진 등 북한 내부 위기는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정치·사회적 변수로 직결됩니다. 전략적 대응이 없으면 내부 혼란과 국제적 위험이 동시에 발생할 수 있습니다.”
장마당 세대·저출산…김정은 20년 통치, 내부 위기 변수로 작용
“김정은이 이제 40살이니까, 앞으로 20년 더 통치한다고 봐도 그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자연적 요인, 사회적 요인, 인구 구조 모든 것이 맞물려 딜레마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김 박사는 이어 북한의 세대 교체, 인구 구조 변화, 사회적 압력, 경제적 한계 등 김정은 체제의 내부 위기 요인을 분석하며 향후 전략적 파급을 전망했다.
그는 북한 내부를 세대별로 분석하며 장마당 세대가 주류로 부상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북한은 혁명 1세대부터 4세대까지 구분합니다. 1970년대생까지가 혁명 4세대입니다. 이후 세대는 고난의 행군과 인구 감소로 단절됐고, 김정은이 만든 새로운 신세대가 등장했습니다. 결국 이 신세대가 체제 안정성을 시험할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
장마당 세대는 과거 혁명 세대와 달리 시장 경험과 외부 정보에 익숙하고, 체제 내부의 억압에 민감해 내부 불만이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합계출산율은 2015년 조사 기준 1.3 수준이었습니다. 현재는 0.78 정도로 급격히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북한 인구 2,500만 명 중 매년 15만 명 정도만 태어나면, 군사력 유지와 경제 활동에 필요한 인구 확보가 어려워집니다.”
김 박사는 여성의 군 복무 비중 증가와 노동력 감소 문제를 지적하며, “경제와 군사력 유지가 어려워지면 체제 내부 경쟁과 분열이 심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기계화가 거의 없는 경제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재해 복구나 기반 시설 유지도 전부 인력으로 수행해야 합니다. 인구 감소가 계속되면 경제 자체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과거 장마당과 시장 활동이 주민들의 생존과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준 점을 언급하며, “젊은 인구가 부족하고 고령화가 심화되는 가운데 복지 정책 부재는 체제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 박사는 “김정은 체제가 직면한 위기는 단일 요인이 아니라, 자연적 요인(기후·재난), 사회적 요인(세대 교체), 인구 요인(저출산·노령화)이 맞물린 복합적 문제”라고 분석했다.
“이러한 내부 위기가 심화되면, 엘리트 간 경쟁과 분열이 발생하고, 통치의 딜레마가 심화될 수 있습니다. 통일이나 외부 개입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는 이어 “통일은 정치 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이며, 적대 종식 뒤에는 새로운 갈등이 시작된다"며 "통일은 불확실성이 본질”이라고 덧붙였다.
“북한 내부의 임계점과 위기를 이해하고, 장기적 관점에서 전략과 대응을 설계해야 합니다. 단순한 붕괴론이나 정치적 관점만으로는 상황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김 박사는 북한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지만 내부 사회 구조와 인구 변화가 김정은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라고 강조했다.
김진무 박사는 강릉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앙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고, 미국 조지메이슨 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 피츠버그 대학교에서 정책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숙명여자대학교 글로벌서비스학부 초빙교수,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 YTN 객원해설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국방부와 통일부 정책자문, 국무총리실 정부업무평가 전문위원, 육군·해군 발전자문위원 등 다양한 공적 역할을 수행했다. /정리 = 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