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달러 환율 1400원 '뉴노멀' 되고, 이젠 1500원도 위협
- 성장률·환율 경로 이탈…1인당 GDP 대만에 '재역전' 조짐

심리적 마지노선이란 특정 수치나 상황이 시장에서 더 이상 용인하기 어려운 심리적 경계선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불안감이나 위기의식이 급격하게 커진다.
실제 심리적 마지노선이 무너지면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정책적 개입이나 소비자 행동 변화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원·달러 환율의 경우 심리적 마지노선은 1400원인데, 지난 10일과 13일 1430원을 연거푸 돌파했다.
환율은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 가격의 일종이지만 경제가 위기 징후를 보이면 국가 위험도를 나타내는 지표로서의 역할도 한다. 금리, 물가, 경제성장률은 물론 정치적 안정성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해 말 12.3 계엄으로 촉발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1400원을 훌쩍 넘어 한때 1472원까지 치솟았다. 이재명 정부가 들어선 올해 6월 이후 1350원대로 떨어졌지만 9월 26일 이후 1400원대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환율 상승은 원화값, 즉 원화가치의 하락을 의미한다. 원화가치 하락은 한국산 제품의 수출 가격을 낮추는 효과가 있어 수출 기업의 이익을 늘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처럼 원자재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에서는 부작용이 훨씬 크다. 당장 수입 물가가 오르면서 인플레이션 압력이 거세진다.
특히 국제 유가와 곡물 가격까지 오르는 상황에서의 환율 급등은 국민에게 이중의 고통을 안긴다. 가계의 실질소득은 줄어들고, 소비는 급감해 내수 침체를 불러온다. 또 내수 침체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뿐만이 아니다. 원화가치의 하락 속도가 가파르면 외국인 투자금의 주식·채권시장 이탈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금융시장 전반의 리스크 확대와 투자심리 냉각으로 연결된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모두에 '직격탄'이 되는 것이다. 더구나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 서로 간에 위기가 전염된다.
최근의 원·달러 환율 급등은 한미 관세협상의 불확실성에서 기인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 7월 말 한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는 내용의 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대미 투자 패키지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이행하느냐를 두고 후속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한국은 수출입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금융기관이 대출과 보증을 제공하되 직접 지분 투자는 전체의 5%로 제한하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은 대부분 지분 투자 방식으로 달러 현금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투자처를 정하고, 이익의 90%를 가져가는 '일본식 백지수표'를 요구하고 있다.
현재 한국은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외환시장에 심각한 충격이 발생하고, 원화가치가 급락해 국가 금융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반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할 경우 추가 관세 인상 등의 압박이 가중될 공산이 크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어느 쪽을 선택하든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관세협상이 언제, 어떻게 최종 합의될지 오리무중이다. 금융시장이 불안해하는 것도 바로 이 지점이다. 설상가상으로 미중 무역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자 미국이 100% 추가 관세 부과로 '맞불'을 놓은 것인데, 이는 증시는 물론 환율에도 악재로 작용한다.
일각에서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즉 펀더멘탈의 붕괴가 더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한국은 저출산·고령화 등의 영향으로 잠재성장률의 0%대 추락이 코앞이다. 저성장의 덫에 걸려 국가 경쟁력이 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환율의 우상향 곡선이 꺾일 가능성은 낮다. 원·달러 환율 1400원이 '뉴노멀'이 되고, 이젠 1500원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환율 급등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달러로 환산되는 과정에서 1인당 GDP가 대폭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8월 국회에 제출한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1인당 GDP 4만 달러 달성은 2027년 가능할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물가 변동을 반영한 명목 GDP 성장률인 경상성장률이 3.2~4.1%에 달하고, 환율은 지난해 평균 수준인 1364원을 유지한다는 가정에 기반한 것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경제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 수렴하고, 지난 12일까지 평균 환율은 1413.6원에 달한다. 이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의 1394.9원보다 높다. 이처럼 정부가 예상한 성장률과 환율이 경로에서 크게 벗어나면 1인당 GDP 4만 달러 시대는 더 멀어지게 된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대만 통계청 등에 따르면 올해 한국의 1인당 GDP는 3만7430달러에 머물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대만은 3만8066달러에 달하며 한국을 앞지를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국이 지난 2003년 1만5211달러로 대만의 1만4041달러를 넘어선 지 22년 만에 다시 역전되는 셈이다. 1인당 GDP 4만 달러도 대만은 내년에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대만은 과거 한국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정보기술(IT) 경쟁력까지 뒤처지면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최약체로 전락했다. 하지만 한국을 이기겠다는 절치부심이 성장 동력으로 작동하면서 '재역전 드라마'를 목전에 두게 됐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