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치범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 (사)미래학회 기획이사

조선노동당 80주년 열병식과 북한군의 현대화

지난 10월 10일 거행된 북한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은 단순한 체제 과시를 넘어, 북한군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얻은 실전 경험을 토대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메시지였다. 이날 공개된 신형 무기들은 한미 동맹의 군사적 약점을 정밀하게 겨냥하고 있었다.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로 공개된 ‘화성-20형’은 고체연료를 사용하고 다탄두(MIRV) 탑재가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며, 11축 22륜 이동식발사차량(TEL)에 실려 등장했다. 이는 기습 발사 능력과 생존성을 극대화하여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MD)을 무력화하려는 명확한 의도를 담고 있다. 또한 함께 등장한 ‘화성-11마형’은 기존의 단거리 탄도미사일(KN-23)에 극초음속 활공체(HGV)를 탑재한 신형 무기다. 낮은 고도에서 변칙 기동을 하기에 사드(THAAD)나 패트리엇(PAC-3)과 같은 기존 요격체계로는 대응이 극히 어렵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군이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최신 전투 기술과 실전 데이터를 획득하며, 과거 재래식 ‘양적 군대’에서 전자전·사이버전·드론전을 결합한 ‘질적 비대칭 군대’로의 변신을 가속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위협이다.

북한이 10일 저녁 노동당 창건80주년 기념 열병식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한 가운데 러-우 전장에 파병된 북한 특수작전군 대열이 주석단을 지나고 있다. /조선중앙TV SBS
북한이 10일 저녁 노동당 창건80주년 기념 열병식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진행한 가운데 러-우 전장에 파병된 북한 특수작전군 대열이 주석단을 지나고 있다. /조선중앙TV SBS

베트남전의 교훈: 한국군 현대화의 원형

역사는 반복되는가. 1960~70년대 한국군의 베트남전 참전 경험은 우리 군을 선진형 현대군으로 탈바꿈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미군과의 연합작전을 통해 전투 지휘체계, 병참·통신, 훈련 교리 전반을 혁신했다. 최근 한 권위 있는 안보 분야 학술 서적에서도 “베트남전은 한국군이 ‘전술 종속군’에서 ‘자율적 작전군’으로 진화하는 계기였다”라고 평가한다. 실전 데이터를 기반으로 교리를 표준화하고 국산 무기 개발을 추진한 것이 오늘날 K-방산의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오늘의 북한이 처한 상황은 과거 우리의 ‘학습’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과거 한국이 베트남에서 동맹과의 ‘통합(Integration)’을 배웠다면, 현재 북한은 우크라이나에서 동맹의 ‘파괴(Disintegration)’를 배우고 있다. 그들은 한미 연합군의 첨단 고가 자산을 무력화할 수 있는 저비용 비대칭 수단을 개발하고, 동맹의 결속력을 약화하는 전략을 추구한다. 역사의 거울처럼, 과거 한국군이 걸었던 길이 오늘의 북한군에 의해 ‘다른 목표’를 위해 복제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식 실전 학습: 북한군의 가속화된 전환

북한은 러시아와의 군사협력을 통해 단순한 군수지원 이상의 것을 얻고 있다. 2024년 6월에 체결된 ‘포괄적 전략적 동반자 관계 조약’ 제4조는 “어느 일방이...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라고 명시했다. 이는 사실상의 자동 군사개입 조항으로, 냉전 시절 군사동맹의 부활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유엔헌장 제51조와 양국의 법에 준하여”라는 단서 조항은 향후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만, 양국 협력의 위험성을 경감시키지는 못한다.

실제로 북한은 2024년 8월 파병을 결정하고, 약 1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병력을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했다. 그 대가로 북한이 얻는 것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다. 2025년 5월 발표된 다국적 제재 감시팀(MSMT)의 첫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는 북한에 판치르(Pantsir)급 이동식 방공시스템, 전자전 장비, 위성 기술 지원은 물론,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사용된 북한산 미사일의 성능 데이터 피드백까지 제공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는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장을 자국 무기체계의 ‘실시간 베타 테스트’ 장소로 활용하며 군사 R&D의 학습 곡선을 극적으로 단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십 년간의 시험발사로도 얻기 힘든 실전 검증 데이터를 통해 미사일의 정확도와 생존성을 비약적으로 향상하고 있는 것이다.

균형의 이동: ‘저비용 고효율’ 비대칭 전력의 위협

러시아의 실전 경험에 기반한 북한의 전력 강화는 한반도의 군사 균형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이는 ‘포화 및 파산(Saturation and Bankruptcy)’ 전략으로 구체화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수백 기의 이란제 샤헤드 드론을 동시에 발진시켜 우크라이나의 값비싼 방공망을 고갈시킨 전술을 북한이 그대로 한반도에 적용하려 하고 있다.

수백, 수천 기의 자폭 드론과 순항미사일, 방사포탄을 동시에 발사하여 우리 군의 정교한 다층방어체계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이 전략의 핵심이다. 이는 단순히 목표물 타격을 넘어, 우리 방어 자산을 소모해 방공망 전체를 ‘파산’ 상태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제 한반도의 군사 대결은 ‘비용 효율성’과 ‘대응 자산의 소모율’이라는 새로운 변수가 핵심이 되는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K-2 전차, F-35A 전투기 등 최첨단 자산의 질적 우위만으로는 이러한 대량 소모형 비대칭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한국군의 3대 대응 축

① 비대칭 억제체계의 상시화: 드론·전자전·사이버전에 대비한 “다층 통합 억제 네트워크”를 평시에 구축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드론 탐지망과 요격망을 통합하는 것을 넘어, 위협의 탐지-식별-결심-타격 전 과정을 AI가 지원하여 인간의 의사결정 속도를 초월하는 ‘하이퍼워(Hyper-war)’ 개념으로 발전해야 한다. 레이저나 고출력 마이크로웨이브(HPM) 무기처럼 값싼 드론을 효과적으로 무력화할 수 있는 ‘비용 효율적 요격 수단’ 확보가 시급하다.

② 합동·다영역 작전태세의 현실화: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은 북한의 복합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필수 요소다. 이 협력의 본질은 단순한 정보공유를 넘어, 세 나라의 탐지 자산(Sensor)과 타격 자산(Shooter)을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하는 ‘통합된 센서-슈터망(Integrated Sensor-to-Shooter Network)’을 구축하는 데 있다. 캠프 데이비드 합의 이후 가동된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 시스템은 그 첫 단추이며, 이를 통해 조기 경보 능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이는 한미일이 각자의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작전하는 것을 넘어, 위협에 대해 동시적·통합적으로 대응하는 진정한 다영역작전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될 것이다.  

③ 인지전(認知戰) 대응력의 강화: 북한의 위협은 물리적 영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NATO가 최근 정립한 ‘인지전 개념(Cognitive Warfare Concept)’에 따르면, 인지전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히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뇌 자체를 전장(battlefield)으로 삼는 것이다. 허위정보, 감정적 선동, 사회 갈등 조장을 통해 공동체 내부의 신뢰를 파괴하고 스스로 붕괴하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따라서 우리의 대응은 단순한 ‘팩트 체크’를 넘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을 강화하고, 민주적 제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여 ‘사회적 인지 회복력(Societal Cognitive Resilience)’을 구축하는 국가적 차원의 전략으로 나아가야 한다.

전쟁을 억제하는 지혜

과거 베트남전의 경험이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강한 군대'를 만드는 자양분이었다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교훈은 21세기 지능화 시대의 ‘스마트한 군대’와 ‘회복력 있는 국가’를 건설하라는 시대적 요구이다. 북한이 러시아의 실전 경험을 복제하여 비대칭적 위협을 고도화하는 지금, 우리의 과제는 단순히 더 나은 무기를 만드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기술과 교리, 동맹의 네트워크, K-방산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보이지 않는 인지 영역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사회의 정신적 방어선을 지켜내는 총체적인 비대칭성 기반 한국형 군사혁신(Asymmetric K-RMA)이어야 한다. 이렇게 비대칭성 기반 억제의 총합을 재설계할 때, 속도보다 방향·기술보다 전략이 힘을 가진다. 전쟁을 억제하는 지혜는 이제 전장을 넘어, 우리 사회와 개개인의 인식 속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 필자 소개 *

신치범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서, 사단법인 미래학회 기획이사와 미래군사학회 사이버/네트워크 상임이사를 겸하고 있다. 『비대칭성 기반의 한국형 군사혁신』, 『한미일 안보협력 메커니즘 중층적 구조의 기원』 등 저술. 『국방환경과 군사혁신의 미래』 공저. 한미일 안보협력,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RMA), 미래 전쟁과 대한민국의 미래 담론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와 정책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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