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밤, 평양 김일성 광장을 가득 메운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은 북한이 사실상 핵무력 노선을 비가역적 단계로 밀어 올렸음을 시사했다. 이 행사는 2018년 열병식 당시 ICBM을 제외하며 평화와 경제를 전면에 내세웠던 전술적 유연성을 완전히 폐기했음을 의미한다. 북한은 이제 핵무력 완성을 “당이 이룩한 업적 중의 가장 큰 업적”으로 자찬하며, 김정은이 연설에서 강조한 ‘강력한 힘’을 무한대로 끌어올리겠다는 구조적 변화를 공식화했다.
‘공세적 억제력’의 완성: 화성-20형의 전략적 함의
이번 열병식의 가장 위험한 군사적 성과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20형’이 공개된 점이다. 비록 화성-20형은 아직 비행시험 전 단계지만, 북한 핵전력의 질적 고도화 정점을 상징한다.

가장 주목할 점은 고체 연료 추진 체계로의 전환이다. 북한은 지난 9월 8일 김정은 참관하에 지상 시험에서 최대 추력 약 1,971 kN을 공개했다. 이는 ‘화성-20형’에 적용되어 발사 준비 시간을 비약적으로 단축할 것이다. 이는 한미의 감시 및 선제타격 능력(Kill Chain)을 무력화하여, 북한 핵 전력의 생존성과 신속성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킨다. 고체연료·대추력 엔진은 ‘발사준비-탐지-결심’의 시간을 압축해 결국 선견(先見)-선결(先決)-선타(先打) 주기(OODA 루프)를 단축하고 방어망을 포화 상태로 몰아넣을 위험을 키운다. 나아가 ‘화성-20형’이 복수탄두(MIRV) 적용 가능성까지 열리면, 요격 포화·분리체 추적 난도가 커져 확장억제 신뢰성은 더 높은 시험대에 오른다.
이러한 기술적 진화는 북한의 핵 교리와 직결된다. 북한의 2022년 ‘핵무력정책 법령’은 “억제 실패 시 전쟁에서의 결정적 승리 달성을 둘째 임무로, 국가의 존재·인민의 생명·권익이 파국적 위기인 경우 등의 핵 사용 조건”을 열거한다. 고체 ICBM의 실전 배치 임박은 이러한 핵 사용 문턱의 하향 조정 의도를 실전적 위협으로 격상시키는 결정적 동인이다.
신냉전 전선 구축: 북중러 연대의 시각화
군사력 과시와 동시에 북한은 ‘신냉전 삼각 구도’를 외교적으로 시각화했다. 열병식에 중국과 러시아의 서열 2위인 리창 중국 국무원 총리,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회의 부의장(전 대통령), 베트남의 서열 1위인 또 람 베트남 공산당 서기 등이 참석했다. 이는 북한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고 미국 주도의 서방 질서에 대항하는 ‘반미 연대’를 공식 선언하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이러한 북중러 협력 구도의 전면화는 국제 제재의 실효성을 약화시키는 동시에, 한반도 문제의 프레임을 ‘비핵화’에서 ‘대결 구도’로 영구히 전환하려는 북한의 전략적 포석이다. 북한은 이 연대를 방패 삼아 핵 보유국 지위를 국제 관계 속에서 기정사실화하려 한다.
다만, 중국은 이 연대가 한미일 안보 협력을 더욱 가속화하고 대중 압박을 키울 위험성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이러한 중국의 신중론과는 별개로, 중러 고위급 인사를 무대에 세움으로써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을 자신의 핵 개발 정당화의 명분으로 활용하고 있다. 다만 중국은 이 연대가 한미일 3국의 결속 가속이라는 전략적 비용을 수반함을 의식해 ‘가시적 과시’는 허용하되 직접 군사 공조의 선은 넘지 않으려는 신중론을 유지한다.
한미일 안보 협력의 구조적 대응
북한의 화성-20형 공개와 핵 교리 공세화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단순한 임시 공조가 아닌 구조적 협력으로 제도화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가장 실질적인 성과는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 체계가 2023년 12월 19일부로 정상 가동된 이후 현재는 상시 운용 중이다. 이 체계는 고체 연료 미사일처럼 신속한 도발에 대한 3국의 연합 방어 태세를 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3국은 다년간의 훈련 계획을 공동 수립하고 공중, 수중, 해상, 사이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시한 ‘프리덤 엣지(Freedom Edge)’와 같은 연합 훈련을 포함하여 상호 운용성을 극대화하고 억제력의 신뢰성을 높이고 있다. 지난 9월 15일에서 19일 사이, 제주 남방 공해상·인근 공역에서 한미일 다영역(해·공·사이버) ‘Freedom Edge 25’를 시행했다.
필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미일 연대는 북중러 연대의 가장 약한 고리를 공략하고 미국의 대선 결과 등 외부 변동성과 관계없이 안보 협력의 연속성을 확보함으로써 북중러 구도에 대해 ‘우세한 회복 탄력성(Superior Resilience)’을 확보한다.
정책 제언: ‘억제력의 가시화’와 전략적 소통 채널 재가동
북한의 위협 고도화에 맞서 우리는 억제력을 ‘가시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첫째, 확장억제의 ‘작전계획화’를 가속화해야 한다. 한미 핵 협의 그룹(NCG)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 유형별 대응 계획을 구체적인 작전계획으로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는 북한의 핵 사용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고, 한국 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해소하는 핵심 방안이다.
둘째, 중국・러시아와의 전략적 소통 채널을 재가동해야 한다. 북중러 연대가 신냉전 구도로 고착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한국은 중국과 러시아에게 한미일 협력이 특정 국가를 겨냥하지 않고 동아시아 안전보장과 글로벌 공급망 안정을 위한 노력임을 강조해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신중론을 역내 안정화에 활용하여 북한과의 연대를 심화하는 전략적 유인을 차단하는 균형 잡힌 외교적 압박이 요구된다.
화성-20형과 공세적 핵 교리는 북한이 더 이상 협상용 지렛대가 아닌 실전적 공격 자산을 갖췄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미일 협력의 제도화만이 북한의 오판을 막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탱할 유일한 길이다.
* 필자 소개 *
신치범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서, 사단법인 미래학회 기획이사와 미래군사학회 사이버/네트워크 상임이사를 겸하고 있다. 『비대칭성 기반의 한국형 군사혁신』, 『한미일 안보 협력 메커니즘 중층적 구조의 기원』 등 저술. 『국방환경과 군사혁신의 미래』 공저. 한미일 안보 협력,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RMA), 미래 전쟁과 대한민국의 미래 담론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와 정책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