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포와 분열의 시대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는 긴장감과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었다. 전두환이 이끄는 군사 독재 정권의 엄격한 통제 아래 놓인 이 나라에서 정부는 끊임없이 '질서'와 '안전'을 강조했지만, 이는 실제로는 국민들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규칙을 따르도록 하는 것을 의미했다. 의견을 표명하거나 다르게 행동하면 처벌받을 수 있었기에 대다수 사람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 침묵은 종종 정권에 의해 지지로 왜곡되곤 했다.
동시에 정부는 학생, 지식인, 민주화 운동가들을 ‘외부인’ 혹은 '외국 간첩'으로 낙인찍었다. 이는 사회에 강한 '우리 대 그들'의 감정을 조성했는데, 사회심리학자들이 사회정체성 이론에서 말하는 내집단 대 외집단 편향이다.
세계적으로 냉전이 격화되고 있었고, 그 어느 곳보다 한반도에서 그 영향이 극명하게 느껴졌다. 남북은 서로를 절대적 적으로 간주했다. 남한의 독재 정권은 이 적대감을 자국민 통제의 도구로 활용했다. 끊임없이 상기되는 '북한 위협'은 대중을 불안과 공포에 빠뜨렸다. 그 공포는 다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을 강화시켰다.
요컨대 남북 갈등은 단순한 군사적 대치 이상이었다. 이는 심리적 무기이기도 했다. 이 갈등은 사람들의 사고 방식, 행동 양식, 심지어 일상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시각까지 형성했다.
헌트(2022): 분단 한국을 배경으로 한 스파이 스릴러
2022년 개봉한 영화 <헌트>는 1980년대 초, 한국이 엄격한 군사 독재 체제 아래 있던 시기로 우리를 데려간다. 당시 국가안보기획부(현 국가정보원의 전신)는 해외의 적과 국내의 간첩을 모두 감시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긴장감은 실재했다—사람들은 조직의 심장부에 북한 간첩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기관의 두 부국장 박평호(이정재 분)와 김정도(정우성 분)가 있다. 같은 부서에 속해 있지만, 그들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일한다. 북한 스파이 '동림'이 기관에 잠입했다는 정보 보고가 들어오자, 두 사람은 각각 별도의 수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곧 의심이 내부로 향한다: 서로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 박평호는 냉철한 정보 전문가다. 성공은 보상받고 실수는 처벌받는 시스템에서 수년간 일하며 계산적인 전략가로 성장했다. 그의 차분하고 거의 무표정한 스타일은 단순히 성격이 아니라, 처벌을 피하는 것이 본능이 된 지속적인 조건화의 결과다.
● 반면 김정도는 강한 이상과 정의감에 이끌린다. 심리학적으로 그의 사고방식은 고전적 조건화를 반영한다: 과거 경험이 '조국을 위한 희생'의 가치를 강화시켰다. 이 때문에 현실이 달리 말해도 원칙을 고수한다.
이처럼 상반된 두 성격은 격렬한 논쟁은 물론 물리적 충돌로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그들의 대립은 단순한 개인적 갈등이 아니다. 가혹한 체제 속 생존과 정의 추구를 둘러싼 당시 한국의 거대한 투쟁을 반영하고 있다.
영화가 전개되면서 줄거리는 단순한 스파이 추적을 넘어 확장된다. 북한의 비밀 작전, 군사 정권 내부의 권력 다툼, 심지어 미국과의 외교적 이해관계까지 모두 얽히게 된다. 결국 '스파이 추적'은 이념과 권력, 운명이 얽힌 훨씬 더 거대한 정치적 게임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영화 <헌트>의 마지막 메시지는 강력하다: 이건 단순한 영웅과 악당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분열로 상처 입은 시대의 이야기다. 역사에 갇힌 개인들이 비극적인 선택에 직면하는 시대의 이야기다.
헌트와 1983년 아웅산 암살 사건의 유산
영화 <헌트>의 실화 배경은 1983년 미얀마(당시 버마)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인 아웅산 묘지 폭탄 테러에서 비롯된다. 그해 북한 요원들은 국빈 방문 중이던 한국 대통령을 암살하려 시도했다. 암살은 실패했지만 폭발로 17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한국인들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뉴스가 아닌 국가적 트라우마였다. 이 공격은 북한에 대한 공포와 적대감을 심화시켰고, 정부에 더 강력한 안보와 통제를 추진할 또 하나의 명분을 제공했다.
영화 <헌트>는 1980년대의 이런 분위기를 스릴러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이 영화가 던지는 진짜 질문은 단순히 “누가 스파이인가?”가 아니다. 그보다 더 깊은 질문을 던진다: 끊임없는 공포와 불신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하는가? 체제는 그 공포를 어떻게 이용해 개인을 조종하는가?
오늘날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에도, 이 영화는 분열과 의심, ‘우리 대 그들’ 사고방식의 패턴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상기시킨다. 단지 정치, 소셜미디어, 글로벌 갈등 등 새로운 형태로 나타날 뿐이다.
1980년대의 교훈은 여전히 분명하다: 권력은 언제든 공포와 불신을 이용해 사회를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부자'와 '외부자'로 분열될 때, 그 결과는 종종 갈등과 비극이다.
문화적 배경
전두환(1931–2021): 1979년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전직 장군. 그의 통치는 검열, 감시, 시위 폭력 진압으로 기억되며, 특히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수백 명의 민주화 시위대가 희생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냉전 배경: 미국인들이 소련을 경계했듯, 한국인들은 끊임없이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을 상기당했다. 이러한 공포 분위기는 언론, 학교 교육, 심지어 대중문화까지 영향을 미쳤다.
학생 운동: 한국의 대학생들은 특히 대담했다. 시위를 조직하고 지하 신문을 발행하며 민주화 운동의 주역이 되었고, 결국 1987년 성공을 거두었다.
아웅산 묘지 폭탄 테러 (1983): 미얀마 양곤에서 발생한 실제 테러 사건으로, 버마의 국민적 영웅 아웅산의 이름을 딴 묘지에서 발생했다. 북한이 저지른 이 폭탄 테러는 당시 한국 대통령 전두환을 겨냥했으나 그는 생존했다. /전병길 YES이노베이션 대표/국민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