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약진운동 등 ‘암흑기’ 거친 中에 1989년 1인당 GNI 역전당해
- 김일성 시대가 남긴 것은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세습 독재체제

1960년까지만 해도 한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특히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은 자신의 힘으로 국민의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고, 정부 예산도 대부분을 미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북한은 상황이 괜찮았다. 김일성 주석은 1953년 9월과 11월에 구(舊)소련 및 중공을 방문해 원조를 얻어 냈고, 1956년 8월에는 공산권 국가들을 순방해 몽골로부터도 원조를 받았다. 동시에 중공업 우선 정책을 천명하면서 의욕적으로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해 외견상 상당한 성장을 이뤘다.
기세가 등등해진 김일성 주석은 1961년 ‘세상에 부럼 없어라’라는 가요를 보급했다. 이 가요의 문구는 지금도 북한의 모든 탁아소나 유치원 건물에 걸려있다.
부럼은 부러움을 말한다. 한마디로 북한은 세상에 부러워할 것이 없는 나라가 됐다는 '프로파간다'다. 반면 한국은 미제(美帝)의 식민지배 아래 온 인민이 굶주림과 헐벗음에 시달리는 지옥으로 묘사하면서 ‘잘 사는’ 북(北)이 ‘못 사는’ 남(南)을 원조하겠다는 제의를 반복했다.
하지만 70여 년이 흐른 지금 한국과 북한은 비교가 무의미할 만큼 경제력의 격차가 벌어졌다. 경제력은 개인이나 기업, 국가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고 분배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경제력이 높을수록 당연히 국민의 삶은 윤택해진다.
지난 2023년 북한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6조2000억원, 한국은 2161조8000억원으로 남북한의 경제 규모는 59.7배 차이가 난다. 대외교역 분야는 격차가 더 크다. 2023년 북한의 무역총액은 15억9000만 달러, 한국은 1조4000억 달러로 격차가 무려 880.5배에 달한다.
또 있다. 국민총소득(GNI)은 한 나라의 경제력과 국민의 생활 수준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인데, 지난해 북한의 1인당 GNI는 171만9000원으로 한국의 5012만원 대비 3.4%에 불과하다.
한국에서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1961년만 하더라도 한국의 1인당 GNI는 89달러로 세계 125개국 가운데 101위를 기록했다. 북한은 320달러로 50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이 같은 상황은 역전됐다.
한국은행이 2020년 7월 발표한 ‘북한의 장기 경제성장률 추정:1956~1989년’에 따르면 이 기간 동안 북한 경제는 연평균 4.7% 성장했다. 하지만 전고후저(前高後低)가 뚜렷하다.
1950년대 중후반에는 연간 13.7%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1960년대 들어 4%대로 떨어진 데 이어 1970~1980년대에는 2%대의 저성장을 지속했다. 김일성 시대의 북한 경제는 초기 ‘반짝’ 성과를 냈지만 자력갱생으로 대표되는 폐쇄성 등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북한의 경제적 추락은 오랫동안 '암흑기'를 거친 중국과의 1인당 GNI 역전에서도 극명하게 나타난다. 전문가들은 북한의 1인당 GNI가 1989년을 기점으로 중국에 추월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기 5년 전이다.
북한이 잘 나가던 1958년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은 몇 년 내로 영국을 따라잡겠다며 대약진운동이라는 거대한 경제 실험을 밀어붙였다. 당시 그는 참새가 곡식을 쪼아먹어 농업 생산량을 줄인다고 판단, 참새를 인민의 적(敵)으로 규정했다. 이에 따라 전국에 동원령이 내려지고, 수억 명의 중국인들은 냄비와 꽹과리를 쳐대며 참새 쫓기에 나섰다.
하지만 참새는 해충의 천적이기도 하다. 참새가 사라지면서 메뚜기 등 해충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중국 전역의 벼농사는 초토화됐다. 1959년부터 1961년까지 3년 동안 대기근으로 최소 2000만명에서 많게는 4500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말이 있다.
중국을 이 같은 도탄에서 벗어나도록 한 것이 덩샤오핑(鄧小平)이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계급투쟁 노선을 폐기하고, 경제 건설과 생산력 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농촌에서는 집단농업 대신 농가별 생산책임제를 도입해 생산성과 농민 소득을 높였고, 도시에서는 기업 개혁과 개체호(개인사업자) 허용 등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했다.
1980년에는 선전(深圳), 주하이(珠海) 등 4개 경제특구를 시작으로 연해 도시와 내륙까지 개방이 확대됐고, 외국 자본과 기술을 적극 유치해 경제 성장을 가속화했다. 세계은행(WB)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1인당 GNI는 1만3660달러다. 북한은 1228달러로 중국 대비 11분의 1에 불과하다.
최근 중국인 대상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북한 관광 목적은 주민들의 일상과 실제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이 가장 큰 동기로 꼽혔다. 북한의 초라한 풍경이 과거 못살던 시절에 대한 향수와 연민, 그리고 상대적 우월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가난’이 중국인에게 관광상품이 된 셈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수출주도형 경제 전략 등 탁월한 경제발전 철학과 리더십으로 세계 최빈국 수준의 한국 경제를 도약시켰다. 흑묘백묘론으로 중국 경제를 살린 덩샤오핑은 “박정희는 나의 멘토”라고 말했다.
반면 50년 가까이 북한을 지배한 김일성 주석이 남긴 것은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 그리고 3대 세습의 독재체제다. '나쁜 지도자'가 불러온 비극인데, 그의 손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이끄는 북한은 여전히 자력갱생이라는 '궁핍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