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대한민국 지우기’, ‘한미일 3각 연대’로 돌파한다-

지난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던진 메시지는 대한민국을 향한 노골적인 핵 위협과 미국을 향한 유화적 제스처라는 극명한 대비를 보여주었다. 특히, 2023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처음 공식화했던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되돌릴 수 없는 노선으로 재천명하며 한반도 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재확인했다. 이는 한미동맹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견고한 축을 흔들어 대한민국을 고립시키려는 고도의 심리전이자, 기존의 강경 노선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선언이다.
대한민국을 향한 ‘전략적 분리’와 노골적 위협
김정은의 대남 정책은 대한민국을 민족 공동체가 아닌 ‘가장 위해로운 제1의 적대 국가’로 완전히 분리하여 규정하는 데 핵심이 있다. 과거 ‘우리 민족끼리’를 외치며 남남갈등을 유발하던 전략에서 벗어나, 이제는 대한민국을 타도해야 할 외세의 앞잡이이자 별개의 ‘적국’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이를 통해 북한은 내부적으로 주민들의 대남 동경을 차단하고, 외부적으로는 대한민국에 대한 핵 공격의 명분을 쌓으려는 다목적 포석을 두고 있다.
반면 미국을 향해서는 ‘비핵화 집념만 털면’ 만날 수 있다는 식의 조건을 달며 관계 개선의 여지를 남겼다. 이는 이미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대북 정책 변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미 사이의 정책적 틈을 파고들려는 전형적인 ‘쐐기 박기’ 전략이다. 대한민국을 안보 논의에서 배제하는 이른바 ‘코리아 패싱’을 유도하고, 한미일 안보협력의 가장 강력한 연결고리인 한미동맹을 이완시키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비욘드 캠프 데이비드’: 중층적·입체적 안보 공동체로의 도약
이처럼 복합적이고 교묘해진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는 기존의 안보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창의적이고 실효적인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역사적인 한미일 ‘캠프 데이비드 합의’가 3국 협력의 제도적 틀을 마련한 중요한 첫걸음이었다면, 이제는 이를 뛰어넘는 ‘비욘드 캠프 데이비드(Beyond Camp David)’ 솔루션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이는 전통적 군사 안보를 넘어 경제, 기술, 사이버, 공급망까지 아우르는 ‘포괄안보(Comprehensive Security)’ 개념을 적용하여, 3국이 중층적 안보 공동체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째, ‘한미일 통합 확장억제 시스템’을 완성해야 한다. 군사적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경보 정보 실시간 공유를 넘어, 3국의 탐지·추적·요격 자산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는 통합 방어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특히 미국의 핵 자산 운용에 대한 정보 공유와 공동 기획을 핵심으로 하는 핵 협의그룹(NCG)에 일본이 옵서버로 참여하는 방안을 점진적으로 추진하여, 3국이 북한의 어떠한 핵 위협에도 단일체처럼 대응할 수 있다는 강력하고 일치된 신호를 보내야 한다. 최근 실시된 한미일 3국 연합훈련인 ‘프리덤 에지(Freedom Edge)’와 같은 정례적 훈련을 북한의 핵·WMD 사용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기반한 실전적 훈련으로 심화·발전시켜야 한다. 이는 북한이 오판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가장 효과적인 군사 전략이다.
둘째, ‘경제·기술 안보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지금의 안보는 총성 없는 전쟁터인 경제와 기술 분야에서 판가름 난다. 한미일 3국은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다.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필자가 주장해온 한미일 ‘공급망 조기경보체제(Supply Chain Early Warning System, SCEWS)’를 구축하여 공급망 교란, 핵심 기술 유출 등의 위협을 사전에 탐지하고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 또한, 핵심 광물과 방산 부품의 공급망을 공동으로 관리하고 회복력을 강화함으로써,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안보의 자율성을 확보하는 ‘경제 안보 블록’을 형성해야 한다. 이는 북한뿐만 아니라 그 배후 세력까지 압박하는 강력한 레버리지가 될 것이다.
셋째, ‘전략적 소통 및 가치 연대’를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분리 대응 전략에 맞서 한미일은 통일된 목소리를 내는 ‘전략적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이나 대화 제의에 대해 3국이 사전에 긴밀히 조율하여 일관되고 단호한 메시지를 발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치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연대’를 인도-태평양 지역의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로 확장해 나가야 한다. 이는 북한의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지속적으로 공론화하고, 북한 정권의 부당성을 알리는 강력한 심리적 압박 수단이 될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새로운 대남 전략은 우리에게 실체적 위협인 동시에, 한미일 협력을 전례 없는 수준으로 격상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캠프 데이비드의 정신을 계승하되, 군사, 경제, 기술, 가치를 아우르는 중층적이고 입체적인 ‘안보 공동체’로 진화하는 ‘비욘드 캠프 데이비드’ 전략이야말로, 김정은의 셈법을 바꾸고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주도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이제는 선언을 넘어 행동으로, 틀을 넘어 실체로 나아갈 때다.
* 필자 소개 *
신치범
건양대학교 군사학과 교수로서, 사단법인 미래학회 기획이사와 미래군사학회 사이버/네트워크 상임이사를 겸하고 있다. 『비대칭성 기반의 한국형 군사혁신』, 『한미일 안보협력 메커니즘 중층적 구조의 기원』 등 저술. 『국방환경과 군사혁신의 미래』 공저. 한미일 안보협력,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 RMA), 미래 전쟁과 대한민국의 미래 담론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와 정책 자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