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병길 YES 이노베이션 대표/국민대 겸임교수 인터뷰
- 한국의 맛과 디자인, 북한 모방의 1순위... 명품으로 진화

최근 북한이 삼양식품의 대표 인기 제품인 '불닭볶음면'을 연상시키는 모방 라면을 생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가운데 북한 시장에서는 세계적 브랜드를 모방한 다양한 상품들이 활발히 유통되며 이는 단순한 ‘짝퉁’ 현상을 넘어 김정은 시대의 새로운 경제 정책과 맞물린 중요한 흐름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통일 브랜드 전문가이자 마케팅 전문가인 전병길 YES이노베이션 대표/국민대 겸임 교수는 지난 19일 샌드타임즈 인터뷰에서 북한의 '모방 경제'에 대해 "짝퉁을 넘어선 전략적 모방"이라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서 모방의 최대 목표는 다름 아닌 '남한의 식료품'이라고 지적했다. 분석 결과 북한의 상표 모방은 놀랍게도 남한의 식품, 과자, 음료 등 식료품 브랜드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같은 언어와 유사한 문화적 상징을 공유하기 때문에, 남한 브랜드가 모방하기에 가장 좋은 대상이 된 것이라고 전 대표는 분석했다.

Q: 북한의 브랜드 모방 현상을 단순히 ‘짝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하셨는데, 그 이유는?
A: 흔히 '짝퉁'은 원본을 불법적으로 똑같이 복제하는 위조품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북한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원본의 일부 속성만 차용해 비슷하게 만드는 ‘전략적 모방(imitation)’에 가깝습니다. 이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행위를 넘어, 국가가 주도하는 일종의 경쟁 전략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2014년 ‘사회주의 기업 책임 관리제’ 도입 이후 본격화됐습니다. 기업들에게 생산, 판매 등 실질적인 경영 권한이 주어지자,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되었죠.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 이미 성공이 검증된 해외 브랜드의 디자인과 마케팅 자산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생존 전략이었던 겁니다.
Q: 가장 많이 모방되는 브랜드는 어떤 것들인가요?
A: 놀랍게도 한국의 식료품 브랜드가 가장 많이 모방됩니다. 삼양의 불닭볶음면은 아시아 전역에서 히트한 것처럼 북한에서도 큰 인기를 얻었고, ‘매운닭고기맛볶음국수’라는 이름으로 복제되었죠. 오리온 초코파이 역시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통해 북한 전역으로 퍼지며 ‘쪽코레트 단설기’라는 자체 상품이 등장했습니다.
이 외에도 농심의 신라면, 새우깡, 양파링, 크라운의 죠리퐁 등 우리에게 친숙한 수많은 과자와 라면들이 북한에서 ‘카피캣’ 상품으로 재탄생했습니다. 이는 남북한이 언어와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남한 브랜드가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직관적으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은하수 제과공장은 일본 산리오의 ‘헬로키티’ 캐릭터를 활용해 리본을 하트 모양으로 바꾸고, 친구 캐릭터인 ‘캐시’를 토끼로 묘사한 크림사탕을 내놓았습니다. 경흥식료공장은 미국 디즈니의 ‘곰돌이 푸’를 연상케 하는 붉은 옷을 입은 곰 캐릭터를 사용한 바나나튀김과자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금컵체육인종합식료공장은 한국 오리온 ‘초코파이’의 붉은 포장과 흰 글씨, ‘정(情)’ 표기까지 재현한 ‘쵸콜레트단설기’를 내놓았습니다. 또 경흥의 ‘밀쌀튀기’는 한국 크라운 ‘죠리퐁’의 포장 형식을 본뜬 디자인을, 금컵체육인의 ‘양파맛튀김과자’는 농심 ‘양파링’의 녹색 배경과 제품명 디자인을 그대로 차용했습니다.
Q: 식료품 외에도 모방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A: 네, 그렇습니다. 초기에는 과자나 라면 같은 저관여 제품(구매 시 크게 고민하지 않는 제품) 위주였지만, 이제는 화장품, 가방 등 고관여 제품(구매 시 신중하게 고려하는 제품)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습니다.
북한 디자이너들은 해외에서 구한 패션 샘플북을 스캔하여 ‘중앙미술창작집단’ 서버에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 습작을 합니다. 직접 명품을 사용해 본 경험은 없지만, 반복된 모방 연습을 통해 체득한 감각으로 제품을 만듭니다. 실제로 버버리의 체크무늬, 샤넬의 로고, 디올 향수병 디자인 등을 모방한 상품들이 북한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수요 충족을 넘어, 모방을 통해 디자인 역량과 품질을 학습하려는 국가적 의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평양의 류원 신발공장 제품은 일본 아식스의 두 줄 로고 간격을 넓혀 변형하거나, 독일 아디다스의 삼선 로고 위에 얇은 검은 선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모방한 신발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또 미국 나이키의 상징인 ‘스우시’ 내부에 초승달 무늬를 더하거나, 리복 로고의 곡선을 직선으로 바꿔 유사성을 강조한 제품도 눈에 띕니다.
의류·가방 분야에서도 해외 명품의 변형이 활발한데요 별무리가방생산소는 영국 버버리의 대표적 체크무늬를 선 굵기와 색상만 살짝 바꿔 사용하고 있으며, 원동식료일용품생산소는 프랑스 샤넬의 더블 C 로고에 원형 테두리를 추가해 유통하고 있습니다.
Q: 포장은 그대로 베끼면서도 브랜드 이름은 외래어를 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아주 중요한 특징입니다. 대표적으로 코카콜라 모방 제품은 특유의 물결무늬 로고는 따라 하면서도, 제품명은 ‘코코아향 탄산단물’과 같이 우리말로 표기합니다. 이는 서구 제품의 시각적 매력과 시장성은 수용하되, 그 이름에 담긴 문화적 영향력은 거부하려는 경제적 실용주의와 이념적 민족주의의 긴장감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Q: 북한 브랜드가 글로벌 시장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A: 아직은 어렵다고 봅니다. 북한 기업들은 평양과 일부 상류층을 대상으로 한 내수 시장만 겨우 형성된 상태입니다. 한국의 경우 1980~90년대 일본과 미국 제품을 모방하며 기술과 디자인을 축적했고, 결국 자체 브랜드를 개발해 글로벌 시장을 석권했죠. 북한도 모방을 통해 품질과 기술을 학습하고 있지만, 시장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합니다.
Q: 북한의 ‘카피캣 경제’의 발전 전망은?
A: 당분간은 모방 중심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나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가 될 수 있습니다. 모방의 과정에서 쌓이는 경험과 역량은 언젠가 독자적인 브랜드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죠. 북한의 브랜드 모방은 지적재산권 문제를 야기할 수 있지만, 동시에 북한 내부의 시장경제 발전과 디자인 역량 강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입니다. 이 현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고, 또 통일 이후에 어떤 의미를 가질지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리 김명성 기자 kms@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