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미경중 노선 조정, 韓 경제와 민생에 심각한 충격 줄 것”
- 전랑외교는 中 현대판 복수문화…이젠 관영매체까지 나서

이재명 대통령 특사단이 지난달 24일 중국을 찾았다. 하지만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물론 서열 2위인 리창(李强) 총리도 만나지 못했다. 대신 서열 24위의 왕이(王毅) 외교부장에게 이재명 대통령의 친서를 전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2013년 1월 특사로 중국에 간 김무성 새누리당 대선총괄본부장은 시진핑 주석에게 당선인의 친서를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특사로 베이징에 보냈을 때도 시진핑 주석과 만나 환담했다. 이 같은 전례와 비교하면 이번 이재명 대통령 특사단은 '홀대'받은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친서는 국가 정상의 뜻을 상대국 최고지도자에게 전하는 고도의 외교 행위다. 이를 고려하면 이재명 대통령이 특사단을 통해 친서를 보냈다는 것은 각별히 챙긴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홀대 논란을 빚은 것은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를 강조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맞춰 중국에는 특사단만 보냈다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이자 ‘눈에 띄지 않는’ 복수(復讐)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중국의 행태는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은 아니다. 실제 복수는 중국인의 뼛속 깊숙이 새겨진 DNA라는 시각도 있다. 춘추전국시대 오나라 왕 부차(夫差)와 월나라 왕 구천(句踐)이 서로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땔감 나무인 섶에서 자고, 쓸개를 씹으면서 고통을 참았던 고사가 대표적이다.
중국의 복수는 뿌리 깊은 문화로 공자(孔子)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관측도 있다. 공자는 “원한에는 직(直)으로, 은덕에는 은덕으로 갚으라"고 말한다. 이는 상대방이 납득할 수 있도록 복수해야 또 다른 복수를 불러오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돼 왔다.
중국인 사이에서 ”장부(丈夫)의 복수는 10년이라도 늦지 않다“는 말이 회자되고, 수많은 문화콘텐츠의 단골 메뉴가 복수인 것도 이 때문으로 보인다. 전랑(戰狼)이라는 중국의 액션 영화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5년 개봉한 이 영화는 별반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2017년에 나온 속편은 관람객 1억5000만명을 동원하는 ‘대박’을 쳤다.
전랑은 ‘늑대 전사’를 의미한다. 전편은 인민무장경찰부대 출신의 주인공이 미국 네이비실 출신의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속편은 유엔이 포기하고, 미군도 철수한 아프리카에서 납치범을 물리치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포스터 문구는 ‘중국을 범하는 자는 아무리 멀리 있어도 반드시 멸한다’는 것이다.
전랑외교는 이 영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중국 외교관들이 상대국을 향해 늑대처럼 힘을 과시하며 공격적인 외교를 펼친다는 뜻이다. 따지고 보면 중국이 내세우는 중국몽, 대국굴기도 결국은 ‘굴욕의 세기’에 복수하려는 차원에서 출발했다는 의혹이 나온다.
굴욕의 세기는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된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으로 받은 중국의 민족적 치욕감을 말한다. 이는 보상을 원하는 기제로 작용하는데, 문제는 이것이 복수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베이징에서 개최된 제25차 한중고위지도자포럼의 정치·외교 세션에서 싱하이밍(邢海明) 전 주한 중국대사는 “한국의 반중 여론은 극우 세력이 조성하고 있다”며 “이들을 정부가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내정 간섭 발언을 통해 전랑외교에 나선 것이다.
한국은 이미 중국의 전랑외교를 혹독하게 경험한 바 있다. 중국은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가 경북 성주군에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하자 한한령(限韓令)을 내렸다. 한한령은 한류를 비롯한 한국 상품에 대한 불매 운동을 유도한다거나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금한령(禁韓令)이라고도 한다.
갑작스러운 한한령으로 한국의 문화콘텐츠산업은 직격탄을 맞았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한한령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지만 여전히 사전 심의와 수입 쿼터제 등을 활용해 문화콘텐츠 교류 채널과 통로를 철저하게 막고 있다. 정치적 목적의 ‘비관세 장벽’인데, 여행·유통·화장품업계 등은 아직도 타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의 관영매체까지 나서 지면(紙面)의 활자를 통해 전랑외교를 펼치고 있다. 한때 '친중' 논란을 겪었던 이재명 대통령이 탈(脫) 안미경중 기조 입장을 밝히자 일제히 경고와 위협을 가하고 나선 것이다.
환구시보는 “중국은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이자 최대 수출 시장, 최대 수입 원천국”이라며 “안미경중 노선 조정이 중국과의 거리를 두게 한다면 이는 한국 경제와 민생에 심각한 충격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2의 한한령’을 위협하는 뉘앙스다.
중국은 그동안 평화적 발전, 조화 세계, 인류 운명공동체 같은 현란한 수사들을 발신해 왔다. 하지만 이런 수사들은 실제 행동과 부합하지 않는다. 남중국해 문제에서 보듯 상대적으로 약한 국가들에 대해선 자신의 ‘근육’을 과시하며 전랑외교를 펼친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은 ‘말과 행동이 다른 위험한 국가’라는 인식이 이웃 나라에 확산하고 있는 이유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