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韓 달러 박스였던 中과의 무역…이젠 위험한 '경쟁자' 돼
- 경제 활로 찾기 위해선 '리쇼어링' 나선 美와의 협력 중요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과거에 한국은 안미경중의 태도를 취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게티이미지뱅크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과거에 한국은 안미경중의 태도를 취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제 과거와 같은 태도를 취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고 말했다./게티이미지뱅크

안미경중(安美經中)은 한국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과 협력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뿌리는 한국이 동북아시아에서 ‘균형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노무현 정부 때의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북아 균형자론의 골자는 한국이 미일과 중러의 대결에 종속변수가 되지 않고, 자주적 외교 노선을 개척해 나가는 독립변수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적대적으로 보거나 잠재적 위협 요인으로 보는 기존의 냉전적 시각과 편견은 버려야 한다는 주문도 하고 있다. 당시 운동권 학자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미래”라는 말까지 나왔다.

동북아 균형자론은 이명박 정부가 집권하면서 사라진 듯 보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안미경중이라는 ‘문패’로 부활했다.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북핵 위기를 해결하고, 통일도 앞당기자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14년 7월 방한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화답하듯 2015년 9월 중국 전승절에 참석했다. 하지만 북한의 ‘뒷배’인 중국은 도움을 주지 않았고, 중국의 속내를 알게 된 박근혜 정부는 2016년 7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통해 친미 기조로 돌아서게 된다.

문재인 정부는 사드 추가 배치 불가,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 불참, 한미일 군사동맹 불가의 3불(不)과 이미 배치된 사드 운용 제한의 1한(限)을 제시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안미경중의 퇴조 흐름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이는 경제 분야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내수 비중이 작은 반면 대외의존도는 매우 높은 나라다. 대외의존도는 한 나라 경제가 외국과의 무역, 즉 수출입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한국은 2023년 기준 약 80%에 달할 만큼 수출입, 특히 수출 주도형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 경제에 있어 1992년 8월 24일 이뤄진 한중 수교는 북방외교의 최대 성과이자 지속적인 성장의 동력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중국이라는 ‘거인의 등’에 올라탄 덕분에 한국이 ‘중진국 함정’에서 벗어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 한중 수교 30주년인 지난 2021년 한국의 대중 수출액은 1629억1300만 달러로 수교 직전 해인 1991년의 10억300만 달러 대비 162.4배 늘었다. 수출 규모 순위에서도 2003년 1위를 차지한 이후 2023년까지 근 20년 동안 그 자리를 지켜왔다.

중국이 한국의 ‘달러 박스’가 된 것은 무역수지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1992~2024년 한국의 대중국 무역흑자는 6817억 달러를 기록했는데, 이는 전체 무역흑자 8103억 달러의 84% 수준이다.

하지만 지난 2023년 31년 만에 무역적자를 기록하면서 이 같은 흐름에 큰 변화가 생겼다. 2023년 181억 달러, 2024년 69억 달러 등 2년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상반기에만 69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내고 있다. 이는 지난해 기록한 전체 대중 무역적자와 같은 수준이다. 지금 같은 추세가 이어진다면 지난 30여년간 중국으로부터 벌어들인 외화를 향후 수십 년간 고스란히 중국에 토해내야 할 판이다.

특히 중국에 대한 중간재 수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한국이 높은 기술 수준의 중간재를 공급하면 중국은 이를 조립해 완성품으로 만들어 파는 상호보완 구조가 깨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한국의 대중 수출품은 반도체, 화학제품, 무선통신기기 부품, 액정표시장치(LCD) 등 중간재가 많다. 중국의 기술력이 취약했던 과거에는 이들 중간재 상당수를 수입해 썼다. 하지만 현재는 자체 기술 개발과 관련 산업 육성으로 '내재화'하고 있다. 외부에서 조달하던 중간재를 자체적으로 생산해 내부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 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전체 수입에서 한국산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7.1%, 2017년 6.9%, 2019년 6.2%, 2022년 5.8% 등으로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무역협회 분석에 따르면 한국과 중국의 수출경합도는 2011년 0.347에서 2023년 0.390으로 상승하는 등 무역시장에서 양국 간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 더구나 중국은 국가 주도 경제 성장 모델을 기반으로 주요 산업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한 후 저가 제품을 앞세워 다른 국가의 시장점유율을 빼앗아 가는 방식으로 덩치를 키우고 있다. 중국은 이제 협력 파트너가 아닌 경계 영순위 경쟁자인 것이다. 

이 같은 구도 속에서 한국 제조업과 수출 등 경제의 활로를 찾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협력이 전략적으로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은 제조업 부흥(리쇼어링)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기반이 취약해 중간재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한국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이 필요한 상태다.

한때 ‘친중반미’ 논란을 낳았던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기간 밝힌 탈(脫) 안미경중 기조는 의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국 외교 무대에서 나온 수사적 발언이라고 해도 동북아 균형자론으로 시작해 한동안 담론으로 위세를 떨치던 안미경중이 이제는 시나브로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

저작권자 © 샌드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