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율에서 관세로 수단만 바뀌었을 뿐 '제2의 플라자 합의'
- 美 관세 수입 3000억 달러…저항보다 후속 대책이 중요

플라자 합의는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에 있는 플라자 호텔에서 미국과 일본, 독일(서독), 영국, 프랑스 등 주요 5개국(G5) 재무장관들이 모여 각국 환율에 관해 이룬 합의를 말한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달러가치를 절하하는 대신 여타국 통화가치를 절상해 미국을 제외한 4개국의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것이 주요 골자다.
당시 미국에 대해 상당한 규모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던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의 통화가치는 플라자 합의 이후 2년 동안 달러 대비 각각 66%와 57%가량 절상됐다. 아울러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1973년=100)도 플라자 합의 이전 160을 넘다가 1987년 말에는 85 수준으로 급락하며 달러가치가 40% 넘게 떨어졌다.
미국 입장에서 플라자 합의는 일종의 ‘극약 처방’이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전쟁으로 엄청난 재정적자가 쌓인 가운데 산업 경쟁력 약화로 무역적자까지 급증했다. 한마디로 플라자 합의는 미국 경제의 총체적 난국을 일본과 독일에 떠넘긴 것이다. 글로벌 초강대국이라는 지위가 없었다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실제 플라자 합의에 따른 엔화가치 급등은 일본에 ‘잃어버린 30년’이란 상흔을 남겼다. 엔고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지자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계속 내렸고, 이는 부동산 버블을 불러왔다. 이를 막기 위해 금리 인상에 나서면서 거품은 꺼졌지만 일본은 장기침체에 접어들게 됐다.
최근 한 증권사 보고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는 '제2의 플라자 합의'와 같다고 분석했다. 환율에서 관세로 수단만 바뀌었을 뿐 미국에 유리한 조건을 일방적으로 들고 나와 합의하도록 강요한다는 점에서 상호관세와 플라자 합의는 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영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일본, 유럽연합(EU) 등 미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한 나라들의 합의 내용을 보면 대미 수출품에 10∼20%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 뿐만 아니라 시장 개방, 대미투자 확대, 미국 제품 구매 확대 등을 담고 있다.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내용의 일방적인 승리다.
한국은 상호관세 부과 유예 시한 막판인 30일(현지시간) 미국과 합의를 이뤘다. 한국이 미국에 3500억 달러(약 487조원)를 투자하고,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에너지를 구매하는 대신 미국이 한국 수출품에 물리는 상호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했다.
한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44%를 넘는다. 한국 경제의 보루인 셈이다. 한국이 미국 시장에서 경쟁하는 일본 등과 같은 관세율을 적용받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그 대가로 큰 액수를 투자하고, 농산물 등의 시장도 열어야 한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에 여전히 저항하는 나라도 있다. 미국으로부터 50%의 관세 부과 예고장을 받은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은 "사안이 심각하다고 해서 끌려다니지는 않을 것"이라며 협상이 불발될 경우 미국에 보복관세 부과를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룰라 대통령은 미국이 브라질산 제품에 50%의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이 브라질에서 대거 수입하는 커피, 소고기, 오렌지주스 등의 제품 가격 상승 부담은 고스란히 미국인들에게 전가될 것"이라며 "미국 국민도, 브라질 국민도 이것을 감내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성토했다. 뉴욕타임스(NYT)가 전 세계 주요 국가 지도자 중 트럼프 대통령과 강하게 맞서는 사람은 '미스터(Mr.) 룰라' 밖에 없다고 논평한 이유다. 하지만 결과에 대해선 책임이 따른다.
여전히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인도가 대표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1일을 관세협상의 ‘데드라인’이라고 못 박으며, 내달 1일부터 25%의 관세에 더해 '추가 페널티'까지 물리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 “인도는 항상 러시아로부터 군사장비의 대부분을 구매해 왔으며, 모두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살육을 멈추기를 원하는 시기에 중국과 함께 러시아의 최대 에너지 수입국이었다”고 비판했다. 관세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내기 위한 '전방위 압박'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들어 지난 6월까지 미국의 관세 수입은 총 1133억 달러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올해 관세 수입이 무려 30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역 상대국의 시장 개방과 막대한 대미투자로 미국은 무역적자를 줄일 수 있고, 자국 내 일자리 창출 효과도 크다. 그동안 관세 정책의 역효과로 우려됐던 경기 침체나 물가 상승도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아울러 2분기 성장률은 예상보다 높은 연율 3.0%에 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만족스러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무역 상대국의 입장은 정반대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는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의 경제를 희생시키는 대표적 근린궁핍화정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는 미국 중심의 중앙허브 체계다. 브라질처럼 경제적 보복은 정치적으로 만족스러울지 몰라도 대부분의 국가에는 바람직하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부담이라면 피해를 줄일 후속 대책에 집중하는 것이 합리적 대응일 것이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