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7 대책은 시장 한 번 식히는 정도 효과…방법론 문제
- 수요 억제에도 신고가 경신 이어져…공급절벽 학습효과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6·27 부동산 대책 이후 한 달 동안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거래 급감 속에서도 일부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신고가 경신이 이어지고 있다./연합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는 6·27 부동산 대책 이후 한 달 동안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거래 급감 속에서도 일부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신고가 경신이 이어지고 있다./연합 

1870년대 프랑스 혁명 이후 '공포 정치'의 대명사 로베스피에르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급진적인 조치를 내놓는다. 이른바 반값 우유 정책이다. 그는 우유 가격의 최고 한도를 설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단두대에 보내 목을 자를 만큼 가혹하게 처벌했다.

시민들은 환호했다. 하지만 고시된 가격에 우유를 팔면 젖소를 키우는 건초 비용도 건지지 못한다는 문제가 드러났다. 목축업자들은 젖소를 도살해 소고기로 팔았다.

로베스피에르는 당황한 나머지 이번엔 건초값을 낮추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사료업자들 역시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건초 생산을 포기했다. “모든 프랑스 어린이는 값싼 우유를 마실 권리가 있다”며 시작한 반값 우유 정책으로 오히려 갓난아기조차 우유를 구경하기 힘들게 됐다.

선의(善意)가 부른 시장의 비극인데, 이재명 정부의 부동산 수요 억제 정책도 자칫 이 같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방법론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이재명 정부가 내놓은 6.27 부동산 대책은 수도권 주택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하고, 대출을 활용해 주택을 매수할 경우 6개월 내 실입주(전입)를 의무화하는 것이 골자다. 주택 매수의 상당 부분은 대출을 활용한 상급지 갈아타기ㆍ갭투자ㆍ똘똘한 한 채 전략에서 비롯됐고, 이것이 집값 불안의 트리거가 됐다는 인식이다.

현재까지는 ‘약발’이 먹히는 분위기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7월 셋째 주(21일 기준) 전국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4% 상승했다. 이는 직전 주의 0.07%보다 0.03%포인트 낮아진 것이다.

집값 불안의 진원지인 서울의 아파트 매매가격도 0.16% 올라 직전 주의 0.19% 대비 상승 폭이 0.03%포인트 축소됐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 둔화는 6.27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인 6월 다섯째 주(30일 기준) 이후 4주째다.

집값 상승 기대감 역시 하락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7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택가격전망지수는 6월보다 11포인트 급락한 109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 4월의 106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또한 한 달 낙폭은 2022년 7월 16포인트 떨어진 이후 3년 만에 가장 컸다.

이는 정부 정책으로 주택에 대한 수요가 줄고, 가격이 조정을 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살펴보면 수요 억제 정책의 효과는 짧으면 3개월, 길면 6개월에 그쳤다. 2019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15억원 이상 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한 바 있다. 지금보다 강력한 규제였지만 잠시 숨을 고르던 주택가격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이는 주택 공급이 뒷받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급이 확대되지 않은 채 수요만 억제하는 것으로는 지속적인 집값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억눌렸던 수요가 분출하고, 공급 물량 부족이 심화하면 가격은 겉잡을 수 없게 될 가능성이 있다.

서울의 연간 주택 수요는 4만9000가구에서 5만4000가구 수준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가구 수 증가, 노후주택 대체, 청년과 신혼부부 등의 수요를 감안한 것이다. 여기에 재개발ㆍ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위해 매년 멸실되는 주택에 대한 이주 수요도 발생한다.

하지만 현실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하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2025년 3만7681가구, 2026년 9640가구, 2027년 9573가구로 급감할 전망이다. 특히 2026년과 2027년의 입주 물량은 연간 필요 공급량의 15%에도 미치지 못한다. ‘공급절벽’인 것이다.

이는 착공 자체가 급감한 구조적 결과다. 국토교통부의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주택 착공 물량은 2022년 4560가구, 2023년 2172가구, 2024년 1306가구로 3년 연속 감소 중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온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 관계자의 주택 공급 관련 언급에는 방향성만 있을 뿐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대선 공약으로도 구체안을 내놓은 적이 없는 사실상의 공백 상태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6.27 부동산 대책 이후 한 달 동안 수도권 아파트 시장은 거래 급감 속에서도 일부 고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신고가 경신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7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14억원을 넘어섰다. 이는 공급 없는 수요 억제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시장 참여자들이 학습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집값을 잡겠다며 각종 거래 규제, 가격 규제, 세금 강화 등 수요 억제에 나서면 공급 위축과 풍선효과로 집값이 더 오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6.27 부동산 대책은 급등 조짐을 보이던 서울 아파트 시장을 한 번 식히는 정도의 효과를 내고 있을 뿐 오름세 자체가 꺾인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언 발의 오줌누기’ 식으로 시장을 찍어 누르면 로베스피에르의 우유가 재현될 수밖에 없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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