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회주의 복지국가라는 北, 재정난으로 ‘빛 좋은 개살구’
- 韓, 노후 소득 안전망 구축에도 여성과 초고령층 취약해

 

북한에도 공적연금 등 사회보장제도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연합
북한에도 공적연금 등 사회보장제도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연합

가난은 '잘못이 아니라 조금 불편한 것일 뿐'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난은 삶을 무척이나 힘들게 한다.

물론 가난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차이는 있다. 타인의 부(富)와 비교해 자신의 빈곤 상태를 인식하는 것이 상대적 빈곤이라면 절대적 빈곤은 인간적인 삶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소득도 얻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생존권과 직결된다.

생존권은 의식주에 있어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받아야 할 필수적 권리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를 헌법에 명시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실현하려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도 헌법 제72조에 '공민은 무상으로 치료받을 권리를 가지며, 노동 능력을 잃은 사람, 돌볼 사람이 없는 늙은이와 어린이는 물질적 방조(도움)를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연로연금, 폐질연금, 유가족연금 등 공적연금은 물론 고용보험 성격의 노동능력상실연금도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근속기간이 25년 이상인 사람 가운데 60세 이상의 남성과 55세 이상의 여성이 대상인 연로연금은 동사무소에서 현물과 현금 형태로 지급받는다.

지난 2017∼2019년 사이 매달 북한 돈 700∼800원 정도를 받았다거나 쌀 600g과 60원을 받았다는 탈북민들의 증언이 있다. 북한의 쌀값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개 kg당 4000~6000원인 만큼 탈북민들이 증언한 연로연금 수준으로는 쌀 1kg도 살 수 없다는 말이 된다.

북한은 지난 1994년부터 6년간 대기근을 겪은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배급제도가 붕괴됐다. 이 때문에 주민들은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데, 이 같은 수준의 연로연금으로는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다. 더구나 최근에는 이마저 연금이 아닌 일시적 보조금 형태로 지급되는 정황이 나오고 있다.

통일연구원이 2023년 내놓은 '북한의 사회보장법제 정비 배경 분석과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제정된 '사회보험 및 사회보장법'은 기존 사회보험법(1946년 제정)과 사회보장법(2008년 제정)을 통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법은 여러 형태의 일시적 보조금 지급은 명시하고 있지만 정작 연금 지급에 관한 내용은 없다. 기존 사회보험법에는 연로연금과 함께 질병에 걸려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지급되는 폐질연금, 국가 유공자 가족에게 지급되는 유가족연금 등이 명시돼 있었다.

아울러 사회주의노동법 제73조는 "국가는 노동 재해, 질병, 부상으로 노동 능력을 잃은 기간이 6개월을 넘으면 국가사회보장제에 의한 노동능력상실연금을 준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북한에서는 직장에 무단결근할 경우 노동교화형의 처벌을 받는다. 이로 인해 직장에 나갈 의무가 없어지는 것만으로도 “사회보장을 받았다”고 표현한다. 일부 주민들은 사회보장 판정을 받아 직장에 나가지 않기 위해 진료소 의사와 인민병원 과장에게 뇌물을 주고 진단서를 발급받는 일도 발생한다.

이처럼 공적연금을 포함한 북한의 사회보장제도가 현실과 큰 괴리를 보이는 것은 북한 당국의 의지 부족과 함께 열악한 재정 상황 때문이다. '빛 좋은 개살구'인 셈이다. 반면 한국의 경우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양대 축으로 하는 공적연금이 어느 정도 노후 소득의 안전망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국민연금연구원의 ’공적연금 소득분배구조 개선 효과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2022년까지 17년간 공적연금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상당히 강화됐다.

공적연금이 없다고 가정했을 때와 비교해 실제 빈곤율을 낮추는 빈곤 완화 효과는 2006년 2.4%포인트에서 2022년 14.9%포인트로 6배 이상 커졌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 개선 효과 역시 같은 기간 3.5%에서 27.0%로 8배 가까이 확대됐다.

하지만 '그림자' 역시 짙다. 2022년 남성의 국민연금 수급률은 56.9%이지만 여성은 32.4%에 그친다. 이는 과거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격차가 노후 소득의 불평등으로 이어진 결과다. 이 때문에 여성 노인의 빈곤율은 48.7%로 남성 노인 빈곤율 35.9%보다 1.3배 이상 높다.

75세 이상 초고령 노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의 빈곤율은 61.3%로 65∼74세 노인 빈곤율 30.8%의 두 배에 달한다. 국민연금 도입 당시 이미 중장년층이어서 가입 기간을 충분히 채우지 못한 세대가 현재의 75세 이상 노인층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북한은 막대한 자금을 핵과 미사일 개발에 쏟아붓고 있지만 '사회주의 복지국가'라고 주장하는 근거인 공적연금은 '유명무실'한 상태다. 현대국가에서의 가난함은 과거의 그것에 비해 더 많은 고통을 안겨준다. 일을 해서 돈을 구하고, 무엇인가 사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한국은 연금 없이 노후를 맞는 무연금 노인의 비중이 70%에 육박하던 수준에서 10% 미만으로 급감했다. 가족 부양에 의존하던 시대가 저물고 공적 부양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성과에도 노인 빈곤율이 40.4%로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갈 길이 멀다는 얘기다./정구영 기자 cgy@sand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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